마음 다잡기

아이 미래 결정지을 당신… 지금 모습은?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7. 4. 23. 14:14
아이 미래 결정지을 당신… 지금 모습은?

정신과 의사 한스 요아힘 마츠 박사가 조언하는 육아법
아이에 모든것을 건 엄마… 모성애 거부하는 엄마

“현대 여성들은 모두 자신이 ‘이브’인지, ‘릴리스’인지 모른 채 엄마가 돼 아이를 키웁니다. 이 두 가지 성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모성애가 과다(이브적 성향이 과다한 것)하거나 모성애가 결핍(릴리스 성향이 과다한 것)돼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갑니다.”

독일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한스 요아힘 마츠 박사가 오랜 연구 끝에 내놓은 결과다. 개인의 행·불행이나 사회적 갈등 등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모성애’에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모성애로 인해 부모-자식 관계가 왜곡되면 그 파급은 개인,가정 뿐 아니라 사회에까지 미친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브’와 ‘릴리스’를 등장시켰다. 이브는 잘 알려진 대로 아담의 부인이자 현모양처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유대교에 따르면 이브는 아담의 첫 번째 부인이 아니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아담과 릴리스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었으며, 릴리스는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남녀동등권을 요구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아 결국엔 에덴동산에서 도망치게 된다.

마츠 박사는 여성들이 ‘이브’처럼 모성애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거나, ‘릴리스’처럼 모성애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 그 피해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고 주장했다. 이 두 성향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지난 18일 방한한 마츠 박사로부터 들어봤다.


◆ 3세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적어도 출생 후 3년간 아이는 엄마 품에서 자라야 한다. 이 시기 아이는 엄마 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처음으로 맺는다. 또한 최초의 확신과 의심, 자기신뢰와 자기불신, 자의식과 열등감도 이 시기에 처음 싹튼다. 마츠 박사는 “ ‘태어난 후 3년’이 아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현실적인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조부모에게 맡기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츠 박사는 동독의 예를 들었다.

동독에서는 젊은 부모들이 직장을 찾아 도시로 나오면서 아이를 조부모에게 맡겼다. 조부모가 키운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지내는 아이에 비해 언어나 인간관계 등에서 발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대신 3세~6세 사이의 아이는 유치원 등에 보내 사회성을 키워주는 게 좋다. 마츠 박사는 “독일에서는 출산 후 3년까지 급여나 보조금을 받으며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한국도 육아에 대한 모든 부담을 여성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직장맘, 아이가 죄책감 갖지 않도록

해야 할 일도 많고 업무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들은 자신만의 여유를 누릴 기회도 없다. 지친 엄마는 아이에게 에너지원이 되지 못하고 모유는 일찍 고갈된다. 아이가 잠이 들거나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면 내심 마음이 가벼워지는 게 맞벌이 엄마들의 심정이다.

그러나 그런 심정은 절대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게 사회적인 분위기다. 일과 육아, 가사의 삼중고를 겪는 현대 여성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엄마이기 때문에’ 참고 견딘다. 이런 엄마들일수록 자식사랑이나 헌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마츠 박사는 “엄마가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갈등하면 아이는 본능적으로 이를 알아차리고 큰 상처를 받는다”고 말한다. 심할 경우 아이는 ‘나는 엄마에게 짐이 돼. 나는 아무 것도 요구해서는 안 돼. 나는 가치가 없어’라는 생각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직장을 가진 엄마들은 자신의 마음자세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자신이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마츠 박사의 조언이다.

엄마의 부재(不在)를 각종 육아상식으로 메꾸려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마츠 박사는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욕구에 따르지 않고 아이를 책이나 인터넷에서 본 지식에 끼워 맞추려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의 요구 뿐 아니라 감정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마들이 범하는 실수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울고 소리 지르는 아이를 빨리 달래거나 위로하려고 드는 것이다. 이는 아이가 하는 말을 가로막고, 아이가 나름대로 힘든 상황을 소화시키고 있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다. 마츠 박사는 “우는 아이를 달랠 때는 아이를 ‘뚝! 그쳐’ ‘하나도 안 아파’ ‘큰 소리로 울면 챙피하잖아, 제발 그만해’ 등으로 억압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 지나친 교육열은 ‘모성애 장애’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보건진흥원 조사 결과 서울의 초·중·고 학생 4명 중 1명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 최근 벌어지는 학교폭력과 교내 집단 성폭행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학교보건진흥원 조사 결과 학업문제가 청소년 스트레스 원인 중 1위였다.

마츠 박사는 한국의 과열된 교육열을 ‘모성애 장애’라고 진단했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모든 시간과 비용을 바쳐 최선을 다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엄마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마츠 박사는 “자신의 자존심을 위한 속죄양으로 아이를 필요로 하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내가 없으면 너는 아무 것도 아니야’ ‘너 때문에 분통이 터져’ ‘너는 내 전부야’ ‘네가 없었다면 난 벌써 네 아빠랑 헤어졌어’ ‘널 위해 난 직장을 포기했어’ ‘너 때문에 안 죽고(자살하지 않고) 산다’ 이런 말은 모두 거짓 모성애다.

그는 “어머니의 거짓 모성애에 중독된 아이들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고 필요 이상으로 성과를 많이 내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는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다 채워주기에만 급급할 뿐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고 성인이 되어서도 혼란을 겪게 된다. 마츠 박사는 “진정한 모성애는 아이가 무얼 원하는지 파악해 채워주고, 아이와 자신의 다른 점을 존중하는 것, 아이의 독립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한스 요아힘 마츠는 누구?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분석가. 현재 할레 시(市) 기독병원에서 정신과 수석의사로 일하고 있다. 1990년, 통일독일에서 동독 출신들이 겪는 심리상태를 파헤친 ‘감정의 정체상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2003년 펴낸 ‘릴리스 컴플렉스’(한국에서는 ‘엄마의 마음자세가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로 번역)는 60주 이상 독일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3개국에서 번역·출간됐다.

조선일보
글=김남인 기자
kni@chosun.com
사진=김보배 객원기자 iperr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