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아이들의 과학교육 현실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7. 6. 14. 11:36
  • 물리실 전기시설 엉망… 화학실은 물도 잘 안나와
  • 학교 실험실이 가난하다

    세계적 과학자 오세정 교수와 살펴본 실태

    환기장치 없는 약품장엔 독한 냄새
    필요기자재 2763점의 56%만 갖춰
    예산은 시약 구입비 年 300만원뿐
  • 입력 : 2007.06.14 01:23 / 수정 : 2007.06.14 03:00
    • “결국, 과학실에서 실험은 못하는 거네요….”

      고체물리학 분야의 세계적 학자인 오세정(吳世正·54) 서울대 자연대 학장은 11일 오후 경기도에 있는 한 중학교의 과학실을 둘러보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오 학장은 “우리 과학교육의 현실을 너무 몰랐다. 이대로 가면 우리 과학의 미래는 캄캄하다”며 큰 한숨을 쉬었다.

      가난한 학교의 초라한 실험실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오 학장이 찾은 학교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에 있는 광동중학교. 전교생이 1127명인 전형적인 지방 소도시 학교이다. 정성열(과학부장) 교사가 3층짜리 별관 건물로 오 학장을 안내했다. 건물 1층에 생물·화학 실험실과 물리·지구과학 실험실이 있다.

      먼저 생물·화학 실험실에 들어섰다. 정 교사가 과학실 복도 한쪽에 플라스틱 가리개로 가려져 있는 약품장을 열었다. 오 학장이 코를 쥐었다. 순식간에 복도에 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임시방편으로 약품장 위에 갖다 놓은 가정용 습기 제거제가 보였다.

    • ▲오세정 서울대 자연대학장(사진 가운데)이 11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광동중학교의 과학실을 둘러보고 있다. 교체가 시급한 낡은 실험 도구들이 과학실 안에 지저분하게 널려있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 교육인적자원부가 2003년부터 ‘실험실 현대화 사업’을 시작하면서 제시한 ‘좋은 실험실’의 기준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첫 번째 기준이 밀폐시약장과 후드(공기배출장치)를 갖춘 ‘냄새 나지 않는 실험실’인데도 그런 장비는 이곳 어디에도 없었다.

      “(이 약품들) 몇 년 된 거죠?”(오 학장)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요.”(정 교사)

      “이런 건 버리셔야죠. 위험하니까….”(오 학장)

      본지가 취재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바인(Irvine) 공립고교의 화학실험실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커다란 공기청정기는 물론 화학물질이 쏟아졌을 때 사용하는 비상용 구급상자까지 구비돼 있었다.

      “물은 나오나요?” 오 학장은 책상마다 설치된 실험용 싱크대를 가리켰다. 싱크대 하나는 약품이 눌어붙어 배수구가 막혀 있었다. 정 교사는 “멀리 떨어진 본관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데 수압이 약해 물이 잘 안 나온다”고 말했다.

      1992년 과학실을 만든 이래 한 번도 보수공사를 못해 배수시설도 엉망이었다. 정 교사는 “실험대의 수도를 한꺼번에 쓰면 과학실 바닥이 흥건히 젖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축축한 바닥을 보며 오 학장은 “거, 참…”을 되풀이했다.

      2003년부터 4년간 경기도 지역에서 ‘실험실 현대화’ 지원을 받은 학교는 727개교(190억원)였다. 하지만 사립인 이 학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이어 물리·지구과학 실험실. 오 학장은 전기배선부터 살폈다. 바닥에 몇 가닥 전기선이 굴러다닐 뿐, 배선이랄 게 없었다. 현대화된 과학실에는 안전을 위해 전기선이 책상 밑에 붙어 있거나 천장에서 도르래를 통해 내려오는 형태로 되어 있다. 오 학장은 “전기가 없는 이 실험실에서는 물리의 기본인 ‘속력과 힘’, ‘빛의 파장’, ‘전자기장’ 실험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 학장이 이어 들른 장소는 실험 준비실. 오 학장은 도구 정리함의 실험도구들을 하나씩 꺼내 봤다. 실험기구 고정기, 역학실험 저울, 메스실린더, 현미경….

      “이거 고물 모아둔 거 아닙니까?” 오 학장이 만지고 나면 뽀얀 먼지가 뒤덮인 기구 위에 어김없이 손자국이 남았다.

      “한 학기에 실험을 몇 번 정도 합니까.”(오 학장)

      “꼭 필요한 실험 아니면 학생들을 여기에 안 부릅니다.”(정 교사)

      65㎡ 크기의 교실에 책상 6개가 들어차 학생들이 앉으면 서로 등이 닿을 만큼 좁고, 냉·난방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우리와 비슷한 일본 도쿄의 쓰쿠바(筑波)대학 부속 고교 실험실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언제나 실험실이 개방돼 있었고, 방과 후에도 학생들이 요청하면 교사가 실험을 도와줬다.

      정상적인 실험을 위해 이 학교가 갖추어야 할 과학 실험기자재는 2763점이지만, 56.6%에 불과한 1568점만 구비돼 있다. 그것도 낡고 부서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정 교사는 “매년 1500만원 정도의 예산을 학교 운영위원회에 신청하지만, 당장 실험에 쓸 시약 구입비로 300만원 정도만 나온다”고 했다. 지난 2003년에 산 천체망원경 한 대가 이 학교가 구입한 마지막 과학 기자재라고 했다.

      이학송 교장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에게 이런 과학실을 보여 드리게 돼서 부끄럽고, 학생들에게는 늘 미안하다”고 말했다. 오 학장은 “교사와 학교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예산문제뿐만 아니라 과학 교육에 대한 우리의 인식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남양주시 광동중학교의 과학실험실, 물이 나오지 않거나 지저분한 채로 방치되어 있다. /주완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