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광

밀양을 보고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7. 7. 4. 11:10

비가 오감을 자극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기사 내용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았지만 대강 이러했던 것 같군요.

 

눈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고 귀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코로 내리는 비에 땅이 촉촉해지며 나는 흙냄새, 그리고 비가 오면 먹고 싶은 커피, 해물파전과 막걸리 등등의 먹거리....   촉각은 뭐였더라?

 

어제 밀양을 보았습니다.

 

개봉되기 전에 너무 보고 싶어 안달났었지만  막상 개봉을 하니 보고 싶은 마음이 좀 사라지더군요. 무슨 조화인지.... 아마 주변의 영화평이 너무 신랄해서 보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평일 오전 영화라서 그런지 영화관에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옆사람과 얘기도 나누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여자 혼자 아이 키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했습니다. 주변의 관심에서 벗어 날 수 없고 가쉽거리는 반찬으로 매일 상에 오르겠지요. 사람들에게 혼자 사는 여자라는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무언가 과장하고 살아야 하는 그 현실이 서글펐습니다. 땅 보러 다니며 돈 많은 여자 행세... 그 탓에 억울하게 아들을 잃었네요.  자기 자신이 너무 미웠을 것 같습니다. 죽으려고 손목을 그엇으면서도 밖에 나가 살려달라고 외치는 그 나약함...

죽지 못해 살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도 없고 결국 미치더군요.

 

죄책감을 벗어나려고 찾아 간 교회에서 하나님에게 의지했건만 살인자도 구원을 받았다며 안식을 찾은 모습에 미움의 대상자가 하나님으로 바뀌었어요. 타락한 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이들도 파탄에 이르게 하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잘 되지 않네요.

 

우연히 고장난 차 때문에 인연의 끈을 엮게 된 노총각 카센터 사장님. 오랜만에 경상도 남자를 보았습니다. 언제나 함께하고 그러나 드러날 정도로 친한 척하지도 않고 마음은 언제나 그곳에 머무는 그런 남자 말입니다.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 주지 않아도 누구나 보면 사랑이구나 느낄 수 있는 그런 태도 말입니다.

 

볕(햇빛)이 그런 것 아니가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 여자 주인공이 새로운 다짐을 하듯 살인자의 딸이 자르던 머리를 집 마당에서 다시 자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끊어지지 �는 죄책감과 자신을 대신해 비난하던 하나님에 대한 분노도 잘라 버리겠다는 주인공의 의지를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클로즈 업되는 그냥 아무 의미없을 것 같은 지저분한 구석에 비치는 '볕'....

 

사니 죽니 하는 복잡한 세상사가 펼쳐지는데도 아무 감정없이 자연은 어디에서나 조용히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는 아니구나하는 마음.. 상처 난 영혼을 굳이 사람에게 위로 받아야 하나하는 생각... 그냥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 그래도 살아가게 되는 시간의 연속성.... 아둥바둥하는 인간에게 자연이 보내는 메시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

 

하나님을 믿는 분들은 그 '볕'을 하나님의 역사라고 보시겠군요. 인간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생각하고 역사하시고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겠군요.

 

왜 '밀양'을 '비밀스러운 볕'이라고 칭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일상에 찌든 인간에게 마음의 고향이 되는 자연이 주는 선물...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는....   

 

한 달동안 말을 좀 아꼈더니 마음의 안식을 얻었나 봅니다. 기쁩니다.

 

밀양.... 메시지를 전하느라 호들갑스럽지 않아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