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서울대 공대의현실(1)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7. 8. 23. 17:26

해외서 서울대로 옮기니 연봉 반토막

이정훈·홍성욱 교수가 겪은 여건 변화
강의부담 늘고 연구이외 업무에 시간 뺏겨
인재들 유학 가버려 우수한 연구인력 부족

손진석 기자 aura@chosun.com
원정환 기자 won@chosun.com
입력 : 2007.08.23 01:17 / 수정 : 2007.08.23 09:23

 

서울대 공대가 7명의 신임교수를 뽑으려다 지원한 25명이 모두 기대에 못 미쳐 채용 자체를 미룬 사실이 알려지자, 이공계 교수들은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대마저 외면하고 있음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한다. 서울대와 외국 유명대학의 인재 대우와 근무 여건이 어떻게 다르기에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대 교수로 오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미국과 캐나다의 명문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서울대로 옮겨온 이정훈(41·기계항공공학부), 홍성욱(46·생명과학부) 두 교수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서울대의 문제를 짚어보았다.

 

◆능력에 따른 인센티브가 없어

이정훈 교수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기계공학과에서 3년6개월간 재직하다 2004년 봄학기부터 서울대로 옮겼다. 그는 학교를 옮기면서 연봉이 반토막 났다. 1억2000만원을 받다가 6000만원으로 줄었다. 서울대에서는 그가 정년 퇴직할 때까지 근무해도 연봉이 1억원을 약간 넘길 뿐이다. 미국 대학에서의 연봉 수준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노스웨스턴대에는 연봉이 10억원에 이르는 교수도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1995년부터 2003년 봄학기까지 근무했던 홍성욱 교수도 “8500만원 가량을 받다가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하니까 학과장이 2000만원 가량을 더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는데, 서울대로 와서 받은 연봉은 6000만원 정도였다”고 말했다. 교수로 재직할 때의 연봉만 차이 나는 게 아니다. 홍 교수는 “서울대 교수들은 정년퇴임 후 받는 연금이 매월 250만~300만원 정도이지만, 토론토대학은 연봉의 80% 정도까지 연금으로 보장해준다”고 말했다.

◆연구·강의 외에 잡무 너무 많아

교수들이 서울대의 문제로 지적한 것은 정작 ‘돈’보다는 연구와 강의에 매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근무 여건이었다. 이정훈 교수는 “노스웨스턴대에서는 연구 외의 일이라곤 한 달에 한 번 있는 학과 교수회의에 참석하는 것뿐이고 그마저도 필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에서는 상황이 완전 바뀌었다. 회의도 매월 세차례쯤 열리는 데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빠질 수도 없다. 이 교수는 “기계항공공학부 안에만 해도 시설담당위원회, 학사담당위원회, 과목조정위원회 등 각종 소그룹이 있고, 교수들이 그와 관련된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서울대에 와서 처음으로 학생 선발과 교수 채용업무를 해봤다. 매년 신입생 면접 날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를 전부 면접에 할애했다. 노스웨스턴대에서는 학부생 선발은 물론 신임교수 채용도 학과장 등 1~2명의 교수만 관여할 뿐 다른 교수들은 그 업무로 시간을 뺏기지 않는다고 했다. 과학사·과학철학 협동 과정 주임교수를 맡고 있는 홍성욱 교수는 보직 교수이기 때문에 행정 업무에 뺏기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 교수들의 수업 부담도 서울대가 훨씬 많다. 홍 교수는 “토론토대에서 교수 1명당 학생 5명이 배정되지만, 서울대는 15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또 토론토대에서 주당 4시간만 가르치면 됐지만 서울대에서는 6시간을 강의한다. 학기도 토론토대학은 13주, 서울대는 15주이기 때문에 개인연구시간도 토론토대가 더 많다.

◆서울대 학생 수준도 갈수록 저하

이 교수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문제”라며 “고급 두뇌들이 모두 유학을 가기 때문에 수준급 대학원생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우수한 대학원생들이 부족한 것은 연구의 질 저하로 직결된다는 것. 이 교수는 “최근 지방대 학부 졸업생이 석사과정에 지원하기에 박사까지 서울대에서 하면 뽑아주겠다고 제안했는데 ‘박사는 유학 가야 한다’며 거절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가 뽑을 수 있는 박사과정 신입생은 1년에 40~50명 정도로 제한돼 있다. 47명의 교수가 1명 정도만 선발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노스웨스턴대에서는 교수가 프로젝트만 많이 끌어올 수 있다면 10명도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서울대는 중간보고, 지출내용 보고 등 행정적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며 “토론토 대학은 1~2번만 보고하면 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국내 대학의 연구환경이 척박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조국이 부르면 간다’는 애국심을 발휘할 과학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