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의 현실(2)
우수인재 외면에… 교수 못뽑은 서울대공대
7명 공채에 25명 지원… “기대에 미흡” 전원 탈락
실력있는 해외공학자는 1명도 지원 안해 ‘충격’
일부 “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라’식 채용에 문제”
최재혁 기자 jhchoi@chosun.com
원정환 기자 won@chosun.com
입력 : 2007.08.22 00:33
서울대 공대가 교수 7명을 새로 임용하려다 ‘학문적 성취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원자 전원을 탈락시키고 채용을 미룬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서울대 공대는 9월 1일자로 발령 예정이었던 올 2학기 신임교수 공채를 실시한 결과, 지원자 25명 모두 학부·학과 인사위원회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21일 밝혔다. 서울대는 전에도 학부·학과 별로 교수 1~2명을 임용하려다 적격자가 없어 미룬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많은 규모의 교수를 뽑으려다 단 한 명도 임용하지 않은 경우는 처음이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공학자들에게 연락을 취해 신규 임용이 있으니 지원하라고 알렸으나 지원한 이가 없었다”며 “국제적으로 연구능력을 검증 받은 실력자들이 서울대 공대를 외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서울대 공대는 기계항공공학부 1명, 전기·컴퓨터공학부 1명, 에너지시스템공학부 3명, 재료공학부 1명, 조선해양공학과 1명을 뽑을 참이었다. 기계항공공학부에는 3명이 지원했다가 모두 서류 심사에 탈락했다. 이우일 학부장은 “논문 수와 논문 내용 등 연구 업적을 검토한 결과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전기·컴퓨터공학부 이재홍 학부장은 “전공 교수 7~8명이 모인 학부 인사소위원회가 심사를 했지만 지원자 3명 모두 기대에 미진했다”고 했다.
‘서울대’라는 간판 하나로 교수 채용에서 최고의 인재를 독점해 왔던 서울대의 위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실력을 닦은 이공계 우수 인력들에게 더 이상 ‘서울대 교수’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울대 자연대는 지난 2002년 초 생물물리학 분야의 교수 1명을 물리·천문학부에 충원하려다 실패했다. 서울대는 공개 채용 모집공고를 낼 무렵 해외에서 연구 중인 서울대 출신 생물물리학 전문가들을 추려낸 뒤 일제히 이메일을 보냈다. 거기엔 ‘교수채용 공고가 나가니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선배 서울대 교수들이 따로 전화하고, 직접 만나 설득하기도 했지만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등에서 이미 교수로 재직 중이던 ‘후보’들은 “서울대에 갈 이유가 없다”며 고사했다. 결국 ‘모시고’ 싶었던 교수임용 후보자 3명이 모두 지원하지 않았고, 다른 적임자도 없어 채용 자체를 미뤘다.
이 일은 2004년에도 똑같이 반복됐다. 서울대 자연대는 결국 2006년 9월 미국에 있던 홍성철 교수를 공채가 아닌 특채 형식으로 채용했다. 홍 교수도 “조지아텍 등 몇몇 미국 대학으로부터 교수 영입제안을 받고 있었던 터라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물리학과 선생님들에 대한 인간적인 정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서울대로 왔다”고 말했다.
김도연 공대 학장은 “해외 대학에 자리잡으면 자녀교육 문제도 해결되고 대우도 더 좋기 때문에 서울대 인기가 갈수록 떨어진다”고 했다. 첨단 분야의 조교수급의 연봉만 봐도 미국의 경우 15만달러(약 1억4100만원)인데 비해 서울대는 4000만~5000만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오세정 자연대 학장은 “1990년대 후반 들어 교수 채용에 실패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져 지금에는 50% 수준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수한 이공계열 학자가 서울대를 외면하는 것은 서울대의 ‘거만한’ 자세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서울대 농대의 한 교수는 “외국 유명 대학은 영입할 교수가 정해지면 총장이 직접 만나서 설득하고 구체적인 연봉 협상까지 진행한다”면서 “그러나 서울대는 조건을 미리 정해놓고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말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의 다른 교수는 “‘서울대가 부르면 와야 한다’는 기본적인 마인드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재 서울대 학생처장은 “국립대 교수는 공무원 신분으로 묶여 있어 일률적인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는 서울대의 인재 유치 시스템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정말 우수한 인재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데려올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