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학계도 "서구 중심주의 벗어나야"
서양사학계도 "서구 중심주의 벗어나야"
한국서양사학회, 학술지 '서양사론'통해
"유럽역사, 우리의 눈으로 해석할 수도"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8.01.22 01:09 / 수정 : 2008.01.22 04:28
"이제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서양 근대화(近代化)의 목표 설정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서양사(西洋史) 학계가 '탈(脫) 서구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한국서양사학회(회장 조승래)는 학회지 '서양사론' 제95호 특집 '서양사 연구 60년, 학회 창립(1957년) 50주년'을 통해 한국 서양사 연구를 회고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근대화'에서 '세계화'로
논문 '한국의 서양사 연구'를 쓴 김영한 서강대 교수는, 광복 이후 출범한 한국의 서양사학이 지난 60여 년 동안 '탄생기'(1945~59)와 '형성기'(1960~79)를 거쳐 왔다고 지적했다. 특이한 것은 '형성기'의 연구 주제 대부분이 근대화와 관련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연구자들은 한국 근대화의 모델을 서양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에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시대의 서양사에 관심이 집중됐다는 것이다. '성장기'(1980~94)에선 그때까지 주류를 이루던 정치·경제·사상사에서 벗어나 산업화와 민중 문제에 역점을 둔 사회사와 노동사가 비중 있게 다뤄졌으며 연구 중심도 19세기 이후의 근·현대사로 이동했다. '도약기'(1995~현재)에선 미시사·일상사, 서구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 같은 새로운 담론들이 일어났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계급사관이 쇠퇴했고, 민족과 국가를 단위로 한 역사관도 퇴색했으므로 이제 유럽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할 필요성이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 그래픽=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서유럽은 이제 가치의 기준이 아니다
'서구 중심주의에서의 탈피' 문제는 많은 연구자들의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이성에 의한 합리적 진보'를 추구했던 서구의 근대화가 절대적 진리라는 신화가 무너지면서 '우리 자신에 의한 서양사 연구'라는 새로운 과제가 출현한 것이다. 박용희 서울대 교수는 유럽 중심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문명 사이의 역사적 비교 연구 ▲문명 사이의 관계사 ▲문화의 전이(轉移)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서구의 역사를 이상화하는 대신 한국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비판적 비교의 대상으로 삼은 최근의 '과거사 청산'(안병직) '대중독재'(임지현) 같은 연구는 의미 있는 시도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 성과는 제한적이라고 박 교수는 평가했다.
대중과 소통하고 시야를 넓혀야
서양 고대사에선 오리엔트사와 그리스·로마사의 비교 연구와 헬레니즘 시대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중세사는 근세의 전사(前史)라는 위치는 탈피했지만 대중화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또한 ▲독일 나치 시대의 연구 부진 해소 ▲프랑스 현대사의 이민 노동자와 과거 청산 연구 등 한국사와의 소통 ▲영국 18세기와 20세기에 대한 관심 증대 ▲'있는 그대로의 미국'을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 ▲러시아·동유럽사에선 '경원'과 '부정'을 넘어선 '상호이해'의 방향 ▲스페인·라틴아메리카사에선 '유럽 중심주의' 극복의 대안 찾기 ▲이탈리아·지중해사에선 지리적인 경계와 개념을 뛰어넘기 등이 향후 과제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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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서양사론' 제95호 '한국서양사학회 창립 50주년 기념특집호'에 논문 '한국의 서양사 연구-경향과 평가'를 쓴 김영한 서강대 사학과 교수 인터뷰(1): 한국 서양사학 60년의 발자취는?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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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한 교수 인터뷰(2): 한국 서양사학의 존재 의의는? /유석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