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잡기
정말 영어만 문제일까?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1. 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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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희 파리특파원
한국 사람들이 시험 점수만 잘 받고 영어 의사소통은 제대로 못하는 것, 정말로 영어만 부족해서일까? 두 가지 경험담을 풀어놓겠다.
여수 엑스포 유치를 앞두고, 지난해 6월과 11월 두 차례의 BIE(세계박람회기구) 총회에서 한국, 모로코, 폴란드 3개국의 프레젠테이션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외국인 음성을 넣은 세련된 영상자료를 선보였고, 무대 위에는 영어가 유창한 진행자를 내세웠다. 필요하면 영어도 그렇게 '아웃소싱'하면 된다.
문제는 의사소통 방식, 그러니까 프레젠테이션 그 자체다. 딱 꼬집어 흠잡을 데 없는 매끈한 발표였지만, 딱 꼬집기 힘든 아쉬움이 남았다. 뭐랄까, 하나라도 틀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답안지 100점 받으려는 한국 아이들을 보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보다는 지난해 6월 있었던 폴란드 순서가 인상적이었다. 즉석에서 폴란드의 후보 도시를 현장 생중계해 화면 속 시민들과 무대 위 출연자들이 함께 노래하고 박수 치는 기발한 진행으로, 객석에 앉아 있던 각국 BIE 대표들까지 덩달아 흥겹게 만들었다.
11월 총회 때는 모로코에 허를 찔리기도 했다. 케냐의 여성 지도자가 나와, 발음은 그리 유창하지 않지만 또박또박한 영어로 "아프리카는 준비돼 있다. 잠재력 있다. 모로코도 아프리카"라며 설득력 있고 감동적인 지지연설을 한 것이 하이라이트였다. 순간 한국 응원단 대기실에서는 "한 방 먹었다"는 긴장감이 흘렀다.
우리를 쭉 지켜본 외국 외교관이 한국 대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왜 그리 심각하기만 한가?" 틀에 갇힌 무거운 레퍼토리에, 우리 스스로 여유나 재미(fun)를 느끼는 '플러스 알파'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여수 엑스포는 총회장의 프레젠테이션으로 결정난 게 아니라, 막후 외교력을 총동원해 따낸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파리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온 한국 여중생 얘기다. 어릴 적부터 열심히 영어학원을 다닌 덕에 기성세대보다 발음도 근사하고 영어 말문도 트인 세대다. 그런데도 파리의 미국 학교에 입학해 몇 달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자신이 자료를 만들어 와 발표하는 수업방식 때문이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남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발표하는 교육 대신 시험지 답을 잘 맞히는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탓이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는 밖과의 소통에 필요한 유용한 '도구'다. 똑같은 실력이라도 영어를 잘 구사하면 기회가 더 주어진다.
그렇지만 영어교육에만 '올인'한다고 기대만큼의 효과가 나는 것도 아니다. 시험 방식을 바꾸고, "언제부터 교실에서 영어로만 수업하라"고 밀어붙이면 사교육이 더 극성일 것이라는 학부모나 아이들의 걱정도 일리 있다. 여건이 미흡할뿐더러 우리 교육에서 부족한 것은 영어 자체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팝송 가사를 찾아오고, 영어 농담으로 친구들도 웃겨 보고, 서투른 영어로도 내가 가진 꿈을 발표하게 하는 등 영어 수업은 생각도 입도 열어 '떠들고 노는' 시간부터 많이 만들겠다는 엉뚱한 발상을 했더라면…. 영어에 앞서 국어와 역사 수업부터 책 많이 읽히고, 글로도 말로도 많이 표현할 줄 아는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역공격을 했더라면…. 의욕은 넘치나 아쉬움이 많은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