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이 국가 생존과 직결" 사회적 합의 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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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는 나라들로 꼽히는 핀란드, 터키, 이스라엘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국어가 영어를 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아님에도 '생존'을 위해 영어교육을 강화해 영어강국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국어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일부 우려도 제기됐으나 사회 문제로 등장할 만큼의 저항은 없었다. 이 나라들은 영어교육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 냈을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핀란드에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핀란드어는 한국어와 비슷한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해 영어와는 문장구조도 달랐다. 그러나 인구 520만의 소국(小國) 핀란드는 '생존'을 위해 영어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국민들은 그 점을 강조하는 정부의 말에 귀 기울였다. 주한 핀란드 대사관 리쿠 바르요바라 일등 서기관은 "1970년대부터 영어가 비즈니스와 외교에 필수라는 공감 아래 영어교육과 교사 재교육이 강화됐다"며 "그 과정에서 별다른 반대는 없었다"고 말했다.
공병호 박사는 "핀란드는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에 대외 개방을 통한 성장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노키아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키워내면서 국가와 국민 모두 국제 교류가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초·중·고 기간 내내 영어로 영어 과목을 배우며 수업 뿐 아니라 평가 역시 말하기와 쓰기가 중심이 된다. 또 핀란드 어린이들은 모국어를 배우기 전부터 영어로 된 TV 드라마나 영화를 핀란드어 더빙없이 시청한다. 또 1960~1970년대에 걸쳐 캐나다와 미국으로 이민 간 핀란드인들이 모국과의 교류를 확대한 것도 핀란드인들이 영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나라 중 영어소통이 가장 뛰어난 나라로 핀란드를 꼽았다.
- ▲ 핀란드 외국어학교 영어수업 모습. 한 고등학교 3학년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영시(英詩)를 읽은 뒤 영어로 토론하고 있다.
또, 중·고교로 진학한 후에도 하루 3시간 영어수업 외에 수학과 과학(생물·화학·물리) 과목을 영어로 배우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학과 김대성 교수는 "1980년대 중·후반부터 '영어는 곧 생존'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교과과정이 자유로운 사립고가 중심이 돼 영어로 영어뿐 아니라 일반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앙카라 대학의 언어학부 한 이지바셰올라 부학장은 "학부모들 사이에 영어가 세계공용어란 인식이 퍼지면서 1990년대부터 영어 교육을 강화한 학교들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터키인 케즈반 아카르 씨는 "1980년대부터 세계화 바람이 불고 터키가 여행·관광업의 중심으로 떠오르자 영어는 일시적 유행이 아닌 생존도구로서 그 어느 때보다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 들었다"고 말했다.
수학·과학 교육으로 유명한 이스라엘도 중동 지역에서 손 꼽히는 '영어 강국'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초등학교에까지 영어수업을 확대한 후로 이제는 중학교만 졸업해도 영어소통이 가능할 정도다. 이스라엘 학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0% 영어 대화 위주로 영어수업을 받는다. 연간 영어수업 시간수는 우리나라보다 주 1~2시간 정도 많은 편이지만, 커리큘럼과 수업진행방식이 모두 실용영어 중심이다. 또 이스라엘에는 '영어교육 감독관'이란 직책이 있다. 이들은 수시로 전국의 학교를 방문해 교사들의 영어수업을 감독하고 영어교육 실태를 조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박동순 전 이스라엘 한국대사(아주대 겸임교수)는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처럼 부존자원이 없어 과학기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나라"라며 "영어를 모르면 선진국의 과학 기술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영어교육은 생존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또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였다는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국제교류가 중요했고, 이에 따라 일반 국민들도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을 환영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