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기사

5ㆍ31 개혁안과 새 정부 교육정책 무엇이 닮았나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2. 9. 12:34

새 정부 교육개혁안에 대한 비판과 제언

 

김영삼 정부 때 교육개혁안 만든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이명현은 누구

YS정권 말기 교육부장관
DJ 집권하면서 교체돼



▲ 교육부장관 당시의 모습/ photo 조선일보 DB
1942년 6월 15일생.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에서 분석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있던 1994년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돼 2년간 활동했다. 이 기간 중 자율 중심과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일명 ‘5·31 교육개혁안’을 완성했다.

1997~1998년 제37대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다. 교수직을 정년 퇴임한 후 2006년부터 중도 보수 시민단체인 선진화국민회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간 방향을 잃고 표류해온 교육 정책이 지금이라도 제 궤도를 찾은 것에 대해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세부 정책이나 시행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이 많다. “자율로 가되 정부가 항상 회초리를 쥐고 있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처럼 기회 균등을 가장해 원시적 평등을 외치는 것도 나쁘지만 규제를 다 풀고 자율 일색으로 가는 건 더 나빠요. 지금 인수위가 하는 걸 보면 매사 군사작전을 방불케 합니다. 더러 총선 표를 의식한 눈치보기 행동도 눈에 띄어요.”

이 전 장관이 주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범 실시다. “좋다 싶은 정책을 한두 곳에 시범적으로 시도해본 후 반응이 좋으면 그때 확대 시행해도 늦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늘 반대론자가 있게 마련이에요. 반대 여론까지 껴안고 가는 게 현명한 정부이고 그러기 위한 제일 좋은 방법 역시 시범 실시를 통한 점진적 개혁입니다.”

이명현 전 장관은 2시간30분 가량 이어진 인터뷰에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주문한 녹차가 식어가고 있었지만 한 모금 겨우 마시곤 입에도 대지 않았다. 초지일관 거침없이 한국 교육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야기했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상대의 반론을 툭툭 끊으면서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때는 손짓도 덩달아 커졌다.

대화 내내 그가 가장 자주 한 말은 “교육 개혁이 그리 쉬운 게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한번은 그의 말에 "그건 (5·31 교육개혁안 만들 당시의)경험담이냐"라며 슬쩍 토를 달았다. 그는 "그렇다"고 일순 시인했다가 재빨리 "그러나 천천히 바뀌어 왔다"라며 눙치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5·31 교육개혁안 당시 누가 만들었나

김영삼 정부 초기 교육개혁위가 완성
김신일 부총리, 이주호 현 간사도 참여
 
5ㆍ31 교육개혁안을 만든 주체는 김영삼 정부 당시 대통령 직속 기관이었던 교육개혁위원회였다. 1994년 2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교육개혁위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1명씩을 비롯해 위원 24명과 전문위원 12명(상근 4명, 비상근 8명), 간사 6명 등 모두 44명으로 구성됐다. 위원까지는 대통령이, 전문위원은 위원장이 각각 위촉했다.

▲ 박세일 / 김신일 / 이주호
간사는 교육부차관과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 행정조정실장 등 3명 외에 관계행정기관 파견 공무원 3명이 추가로 편성됐다.
위원장은 이석희 광복회 부회장(당시 대우재단 이사장), 부위원장은 김윤태 서강대 명예교수(당시 서강대 교육대학원 원장)가 맡았다.

이명현 전 장관은 24명의 위원을 대표하는 단독 상임위원으로 전체 실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위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김신일 교육부총리(당시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와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당시 대통령비서실 사회복지수석비서관) 정도.

특히 박세일 교수는 교육개혁위 위원으로 활동 중이던 1994년 12월 대통령비서실에 취임한 후 간사로 직책을 옮겨 개혁위 활동을 계속했다. 간사 중에는 강봉균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당시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도 있었다.

이주호 대통령직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는 모두 8명이 활동했던 비상근 전문위원 중 한 명이었으며 박세일 교수의 추천을 받아 위원회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 3월부터 1년간 윤건영 한나라당 의원(당시 연세대 경제학과 부교수)과 함께 교육개혁에 필요한 예산 책정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5ㆍ31 개혁안과 새 정부 교육정책 무엇이 닮았나


이명현 전 장관의 주장처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5·31 교육개혁안의 판박이일까. 이 전 장관은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가 발표한 내용은 동면(冬眠) 중이던 5·31 교육개혁안을 깨워낸 것이며 실전(exercise)편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의 말을 토대로 5·31 교육개혁안의 전 내용이 수록된 당시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의 보고서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과 인수위 교육정책의 토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수위 이주호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의 책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등을 비교, 항목별로 유사한 내용을 짚었다.


학습자 중심 교육 강조

“신교육체제는 1) 교육 공급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 2) 획일적인 교육에서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으로 3) 규제와 통제 중심 교육 운영에서 자율과 책무성에 바탕을 둔 교육 운영으로 4) 획일적 균일주의 교육에서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교육으로 5) 흑판과 분필 중심의 전통적 교육에서 교육의 정보화를 통한 21세기형 열린 교육으로 그리고 6) 질 낮은 교육에서 평가를 통한 질 높은 교육으로 전환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Ⅱ)’,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1996.2.9) 제3차 보고서, 1p


“무엇보다 교육과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기존의 공급자 중심에서 학생 중심의 교육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국가가 정한 교과지식을 학교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학생들에게 수동적인 역할을 강요할 것이 아니다.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갖추어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결국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소양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관심과 잠재력을 가꾸어갈 수 있도록 유연한 원칙이 필요하다 하겠다.”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이주호 외 공저(2006), 214p


자율형 특성화 고교(마이스터고교)

학생의 생애설계에 따른 교육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현재의 실업계 고등학교를 지역과 학교 실정에 맞게 다양하게 발전시킨다. 실업계 고등학교 교육내용의 현장성을 높이기 위하여 산업계의 참여를 확대한다. 교육과정의 편성·운영이 산업현장과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산업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지역의 ‘지역교육·훈련협의회’(가칭)의 역할을 강화하고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에 산업계 인사가 다수 참여하도록 한다.”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Ⅱ)’, 8·11p

“자율형 특성화 학교는 교육당국이 주도하는 학교개혁 모형이 아니라 학교가 주도하는 새로운 실업계 고교 모형이다. 지금보다는 훨씬 다양한 모델의 학교가 출현해야 한다. 앞서 자율형 공립학교 모형에서 제시되었듯이 지도와 운영권한을 교육청 이외의 다양한 기관이나 법인에까지 확대해야 한다. 기존의 협약학과 협약 프로그램이 낮은 수준의 학산(學産)연계라면 이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연계모형이라 하겠다. 학산일체형 교육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190p


수준별 교육과정 도입
“학생의 능력, 적성, 필요, 흥미에 대한 개인차를 최대로 고려한 수업을 통해 학생 개개인의 성장 잠재력과 교육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수준별 교육과정을 도입한다. 수준별 교육과정 유형에는 비교적 학습 내용의 위계가 분명한 교과를 단계별로 세분화한 단계형 수준별 교육과정, 기본 학습 내용을 중심으로 심화학습 또는 보충학습이 가능하도록 한 심화보충형 수준별 교육과정, 과목 내용의 다양성과 난이도를 고려하여 과목들을 종류와 수준별로 설치하고 학생들이 선택하도록 하는 과목선택형 수준별 교육과정이 있다.”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방안(Ⅱ)’, 43~44p

“지금의 ‘학년 중심’에서 ‘수준별’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의 같은 학년 동급생이라 하더라도 학생별로 수준이 많이 다를 수 있다. 외국어나 수학과목은 특히 그러하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과를 학년 중심으로만 편성해서 운영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215p

 

대학의 학생 선발권 자율화


“국·공립대학은 국가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고 사립대학은 초·중등교육의 정상화,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 축소 등의 원칙하에 학생선발 기준과 방식을 자율적으로 정하여 학생을 선발하도록 한다.

국·공립대학은 필수 전형자료로 종합생활기록부를 사용하고 선택 전형자료로 수능시험, 논술, 면접, 실기 등 다양한 전형기준에 의해 학생을 선발함으로써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유도하고 과열과외를 완화하도록 한다.”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보고서 제1집,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1996.2), 98p


“대학입시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대학의 학생선발이 대학운영 자율권의 일부임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대학의 학생선발에 대한 교육부의 규제조항을 개정하여 현행 학생선발의 방법과 일정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는 조항을 폐지하고 학생선발의 권한이 대학에 있음을 명시하도록 한다.

여기에 대학이 학생선발에 있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을 명시해서 개별대학이 이러한 법적 틀 안에서 자율적으로 다양한 전형을 개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263p

“대학교육과 관련, 이 후보는 대학의 학생 선발과 재정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 등 관치를 완전히 철폐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여 고등교육의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고 대학의 실질적 특성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이명박 공약집, ‘대선 공약 9-공교육 두 배 사교육비 절반’ 중


교원 평가

“학교경영의 결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능력있는 교원이 우대 받도록 하고 승진기준을 재조정하여 능력중시의 승진체계를 마련한다. 초·중등교사의 주당 책임수업시수를 설정하고 책임수업시수 이상의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 학급담임을 맡은 교사 등에 대하여 별도의 수당을 지급하고 인사에도 반영하는 등 교원 보수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한다.”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 보고서 제1집, 111~112p

“학교와 교원이 교육청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을 위해 더 고민하고 열정을 보이도록 인사제도를 고쳐야 한다. 교장도 교육청의 지도감독에만 얽매이지 않고 학교경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학생과 학교가 직면한 문제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업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교사,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지도를 잘하는 교사가 우대 받는 인사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즉 평가와 연수를 포함한 다양화 인사제도가 체계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300p

 

교육 자치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지침 중심의 중앙집중형 교육과정 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교육부, 교육청 등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의해 단위학교 교육과정이 획일적으로 운영되며 단위학교나 학급담임의 교육과정 운영권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지방, 단위학교, 교사에게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자율을 부여하여 창의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운영방식이 요구된다.”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의 개혁방안’ 공청회(1995.12.14) 자료집,
교육개혁위원회·교육과정특별위원회


“지금 교육부는 방대한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교사와 학생의 교수권과 학습권은 상대적으로 제약받고 있다. 행정기구와 그 기능의 비대화로 단위학교가 당연히 부여받아야 할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의 자율권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진술은 ‘상세화’에서 ‘대강화’로 전환하고 교육과정의 개발 및 개정 권한을 지방 교육자치단체에 이양하여 지역의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213~214p


/ 조선일보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