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교육과정

서울대 농어촌전형에 입학사정관제 시행해보니…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2. 10. 15:33
'성적 모자란 학생' 잠재력 인정해 "합격"
서울대 농어촌전형에 입학사정관제 시행해보니…
작년 10개大 시범 운영… 올해 40개 학교로 확대
정원외 전형 넘어 전면적 도입까지는 갈 길 멀어
 
오윤희 기자 oyounhee@chosun.com 
 
2008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농어촌 특별전형에서 인문 계열에 합격한 강원도 한 산골 고등학교 3학년 A(18)양. A양은 이 학교가 18년 만에 배출한 서울대 합격자다. A양이 만약 수능·내신·논술 성적 순으로 학생을 줄 세운 뒤 뽑는 일반 전형에 지원했다면 붙기 힘들었다. 하지만 2008학년도에 입학사정관제를 처음 도입한 농어촌 특별전형에 지원한 덕분에 A양은 합격할 수 있었다.

서울대 입학사정 전문위원 2명은 A양이 낸 원서에 적힌 대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A양의 부모님과 추천서를 쓴 담임 교사를 찾아갔다. 면담 결과, A양이 어려운 환경에서 부모님 일을 돕고 쉬는 시간에도 혼자 책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해온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조사를 토대로 서울대는 A양의 성실함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합격을 통보했다.

A양의 경우처럼 입학사정관이 응시생들을 조사한 전형은 정원외전형인 농어촌특별전형(95명)과 특수교육대상자전형(20명). 이 전형에서 서울대의 입학 사정 전문 위원 6명은 응시생 200여 명 가운데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적은 30여 명을 추려 응시생들의 학교·가정을 방문했다. 위원들은 학생의 학업 여건과 잠재력 등을 조사했고, 교수진들이 이 결과를 토대로 토의를 거쳐 학생을 선발했다. 최종 합격자들 중 상당수는 수능 성적으로만 따지면 정시모집의 일반전형에서 합격할 수 없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잠재력을 인정 받고 합격한 셈이다.

서울대 김경범 입학관리본부 교수는"물리 성적이 좋은 학생의 경우 교내 분위기나 학습 여건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또 영어 성적이 갑자기 올라간 경우 어떻게 공부했기에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를 부모·교사와 상담해 알아냈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2009학년도부터 입학사정관제를 외국인특별전형 등 정원외전형 전체로 확대하기로 했고, 앞으로 정원내전형에도 점진적으로 도입할 예정이다.
◆입학사정관제 확대 전망

현재 서울대를 비롯해 성균관대·연세대·중앙대·한양대 등 10개 대학이 지난해 8월부터 입학 사정관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성균관대도 올해 입시 외국인 전형 과정에서 통계학·교육학을 전공한 사정관 두 명이 학생을 선발했다. 응시생의 고교 성적과 한국어 성적을 중점적으로 봤지만, 봉사 활동, 전국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 등 특기 사항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학생을 선발했다. 연세대도 2008학년도 수시 모집 재외국민·외국인 선발 전형에서 기존 교수들이 비상임 입학 사정관 자격으로 응시자 학업 성적·봉사 활동·리더십 등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했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대학 입학 자율화 방안이 성공하려면 입학 사정관제 등 다양한 학생 선발 방식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함에 따라 이 제도를 적용하는 대학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교육부도 올해 입학사정관 관련 예산을 198억원으로 늘리고, 시범 대학도 지난해 10개에서 40개 대학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대다수 시범대학들의 경우, 사정관은 선발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 응시자 서류를 보고 자격 미달인 수험생을 걸러내거나 내신, 논술, 수능 등 각 영역별 반영비율에 맞춰 점수를 계산하고 어떤 학생이 응시했는지 분석·통계를 내는 수준이다. 직접 실사를 나가는 대학도 서울대가 유일하다. 시범학교마다 2~3명씩 배치된 입학 사정관들도 교육 관계 전공자가 아니라 사회·통계 전공 석·박사 출신이다.

◆미국에선 일반화된 제도

사정관이 학생 선발에 크게 개입하는 것은
미국 입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제도다. 미국에선 대부분 대학이 학생 선발을 전담하는 입학 사정관(admissions officer)을 두고 있고, 사정관이 서류 심사·면접·현장 실사 등 입학에 관련된 전권(全權)을 좌우한다. 미국 칼리지(단과 대학)는 10여 명, 매년 1만여 명을 뽑는 주립대학에선 50~60명 정도의 사정관이 활동한다. 장학사·교육학 박사·시험 출제 기관 종사자 등 교육 분야 전문가들이다. 사정관들의 의견이 갈릴 경우, 경험이 풍부한 수석사정관이 재검토하기도 한다.

UC버클리 입학 사정관 지침서엔 "SAT(미국 수능시험)점수는 비교 학생 간 60점 이상 차이가 날 때만 의미가 있다"라고 적혀 있다. SAT점수가 높다고 해서 유리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대신 과외 활동·봉사 실적·수상 경력·지역 사회 기여도·인종·경제 형편 등을 종합 판단한다. 일본은 대학마다 본고사를 실시하고, 영국은 대학 입학 시험으로 A레벨 시험을, 프랑스는 바칼로레아를 보기 때문에 입학 사정관 같은 제도가 없다.

우리의 경우 미국처럼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을 평가하는 사정관 제도가 전면 도입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란 지적도 있다. 서울지역 대학의 한 입학처장은 "사정관제를 도입하고 싶어도 내 아이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아이가 합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항의하는 학부모로부터 소송이나 당하기 십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교육학과 백순근 교수는 입학사정관제가 성공하려면 학력과 관련한 고등학교 정보가 먼저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력 : 2008.02.10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