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재미

[스크랩] 골 때리는 스물다섯-조장은의 그림일기展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4. 2. 08:30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와서 '왜 남자는 여자의 긴 생머리를 좋아하나'

란 글을 포스팅 한적이 있습니다. 인기를 끌어 메인에 떴는데

이 계기로 작가 한명을 만났습니다.  이 포스트의 가장 첫번째에 걸린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긴 생머리>란 그림을 그린 조장은 작가입니다.

 

 

오늘 저녁엔 시간을 내어 명동에서 열린

조장은씨의 두번째 개인전 오프닝에 다녀왔습니다.

항상 전시 제목을 유쾌하게 짓는 그녀답게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제목을 걸었습니다. <골 때리는 스물다섯>......

 

갑자기 제 자신의 25살 때가 기억나더군요.

난 그때 뭘 하고 있었나......하고 말입니다. 공감이란 걸 하려면

결국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와서 비슷한 무늬의 퍼즐들을 맞추어 봐야지요.

 

 

다양한 편린 속에 담긴 작가의 그림 일기를 읽다보니

25살, 제 모습과의 교집합이 보이기도 합니다.

 

 

술에 쩔어본 적은 없지만

선배들을 따라 참 많이도 마셨던 소주며 막걸리며

 

 

대학생이라지만, 아르바이트를 못구하는 달은

그저 엄마에게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던 그 시절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너의 모습에선

초록빛 풀잎냄새가 나더구나
몇 년 만이었지 그날 일을 잊지 못하겠더라
봄도 다간 계절이었어

 

강변을 거닐기도 했고 밤늦은 공원에
사람이 보이지 않기까지 있었지 너는 살아야할 이야기를 했었고
나는 어둠 속에서 바다가 보이는 푸른언덕을 생각하고 있었어

하늘이 푸른 것은 말야 공기 중에 먼지가 있기 때문이래
참 이상하지 먼지 때문에 하늘이 더 깨끗해 보이는 것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너는 웃었어 인적도 없이

하늘만 높던 날 종묘 벤치였을 거야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던 너의 뒷모습이 생각나는군
우리 다시 만나... 돌아보던 너의 얼굴
하지만 난 그게 끝인 줄 이미 알고 있었어

돌아오는 차안에서 무엇 때문인지
창 밖이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 스물 다섯 참 어리석은 나이였어
많은 시간이 지났구나 왠지 아직도 가끔
그 날이 생각나곤 해 우리 다시 만나... 
스물 다섯  네 목소리도

 

김성수의 <스물 다섯 어느날> 전편

 

 

첫번째 찾아온 사랑 앞에서 울고

그리움이 나를 옮매던 시절, 괜한 상념에 젖어 트레몰로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내 축축한 마음 한구석을 계속 적실때

 

 

괜한 기다림에 화도 나고.....

 

 

염장질을 해대던 내 친구들이 괜히 밉고

졸업 직후 바로 결혼한 여자 동기들을 만나기도 했던 그때가

바로 25살이었나 봅니다.

 

 

한살 위의 선배누나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 누나가 쓴 큰 테우리의 선글래스가 그리 멋져 보이기도 했던 시절.

 

 

작가가 그린 일상의 일기 속에는

어느새인가 애써 눈을 감으려 했던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제를 아련하게 드리고 있는 내가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청춘의 허우적 거림 속에서

거듭 지금 내 모습과 행복의 조건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요.....

 

 

요즘 들어 미술로 승부를 걸겠다고 이야기 하는

젊은 작가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생을 어려움 속에 사는 것은 아닐 겁니다. 고생끝에 낙이온다는 것.

해맑게 웃는 작가의 표정 속에서 이미 잉태되어 싹이 트고 있는

희망의 빛깔을 읽어봅니다.

 

조장은의 그림은 매우 밝습니다. 그래서 부담이 없기도 하려니와

색채가 밝아 보는 이의 마음도 가볍고 환해지기 마련입니다.

상춘곡이라 했나요. 봄의 상념이 그림 속 분홍 꽃비를 맞으며 젖어갑니다.

그녀의 골때리는 25살 인생도, 이제는 많은 걸 내려놓은 37살의 인생도

화폭속에 아련한 미소가 되어 사라져 가고 있네요.

 

 

 

 

출처 :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
글쓴이 : 김홍기 원글보기
메모 :

그림 속의 얼굴이 화가의 얼굴이네요. 화가의 일상을 엿보았어요. 그리고 옛일들도  떠오르네요. 추억으로의 여행... '동심원' 선생님과는 다른 새로운 매력이 느껴지는 화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