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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수집한 장난감 모아 박물관 열었죠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8. 10. 23:30

어릴 때부터 수집한 장난감 모아 박물관 열었죠

 

장난감 박물관, ‘토이키노’ 손원경 대표
글 : TOP CLASS 천수림 객원기자
사진 : TOP CLASS 김선아
입력시간 : 2008.08.04 12:40

 

‘감각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캐릭터는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문화와 역사가 된다.’ 


  

장난감 박물관 ‘토이키노(TOYKINO)’를 만든 손원경(37세) 대표의 철학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골목에 위치한 ‘영화 캐릭터 장난감 박물관 토이키노(TOYKINO)’는 데이트 족이나 가족들의 놀이터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토이키노(TOYKINO)는 장난감의 TOY와 영화를 뜻하는 KINO를 합성한 이름. 지난해 5월 개관 이후 다녀간 관객만 해도 5만 명이 넘는다. 박물관에는 손 대표가 20여 년 동안 국내외에서 수집한 각종 만화와 영화 캐릭터 인형(일명 피겨), ‘스태추’(관절이 움직이지 않는 관상용 피겨) 등 15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스타워즈>,<스타 트랙>,<배트맨>,<스파이더맨>,<헐크>,<스폰> 등 미국 영화 캐릭터(일명 피겨)가 가장 많다. 어릴 때부터 <스타워즈> 같은 영화나 영웅에 열광했던 그의 성향이 반영되어 있다.

 

피겨는 영화ㆍ만화ㆍ게임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축소해 만든 것으로 그 정교함 때문에 예술에 비유하는 이도 적지 않다. 특히 관절까지 움직이는 정교함은 유난히 아이들을 열광시키고, 특히 1970~80년대 조립식 장난감과 로봇이 전시된 2관에 이르면 30~40대 관람객들이 추억 속에 잠긴다. 
  
“영화 속 장면의 캐릭터를 형상화한 게 피겨예요. 그러니 피겨 장난감도 문화의 한 부분이지요. 1960~70년대 장난감을 보면 산업화 단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고, 피겨를 보면 영화 캐릭터의 변모를 한눈에 볼 수 있죠. 외국은 토이페어가 정말 활발합니다. 새로운 시장일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은 예술에 비유하기도 해요. 우리나라는 이제 상권이 형성되는 단계입니다.”

박물관에 있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가장 즐거울 때는 가족 관객이 왔을 때다. 엄마, 아빠는 어릴 때 보던 만화영화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자기의 방을 이렇게 꾸며 달라고 하거나, 앞으로 박물관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호언장담(?)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팔면 안 되느냐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관객도 많다. 그럴 때는 자신이 수집을 통해 끈기와 상상력을 키웠던 것처럼 모으는 재미를 느껴 보라고 제안한다. 
  
손 대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해 그동안 모은 캐릭터는 모두 40만여 점에 이른다. 수집에 그치지 않고 박물관을 개관한 데는 서예가로 유명한 그의 할아버지 소전 손재형 선생(1903~1981)의 영향이 크다. “제 몸에는 수집의 피가 흐른답니다. 집안 유전이랄까. 할아버지가 고서와 고가구, 붓을 좋아하셨는데 서너 살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할아버지가 정성껏 벼루를 닦고 계셨던 모습이 떠올라요.” 
  
영화 캐릭터를 모으기 위해 용돈만 모이면 달려가던 명동, 중국 대사관 앞, 동부이촌동과 남대문은 그의 놀이터였다. 영화를 보고, 영화관련 자료를 스크랩하면서 영화 캐릭터를 수집했다. 그러니 글쓰기와 영화보기, 영화음악과 자연스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용돈을 아무리 아낀다 한들 이 많은 장난감을 모을 수 있었을까? 
  
“부모님과 함께 허리우드 극장에서 본 영화 <007>,<스타워즈>가 뇌리에 박혔어요. 마침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계시던 아버지가 영화 속 캐릭터 인형을 사다 주셨는데 그게 제 인생에 있어 특별한 날이에요. 새벽에 엄마 손에 이끌려 비몽사몽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어요. 지금도 아버지가 트렁크를 끌고 나오던 모습이 기억나요. 그때 잔뜩 기대감을 안고 장난감을 풀었던 설렘이 지금의 제가 있도록 한 힘인 것 같아요.”

이렇게 장난감을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풍족한 집안 사정도 한몫했다. 
  
“그 후 제 인생은 암흑기였어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초등학교 때부터 외갓집에서 살았으니까요. 미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어른스럽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이러시면 제 인생이 비참해집니다’라고요. 어릴 때인데 어떻게 그런 단어를 떠올렸는지 모르겠어요.”

 

삶의 위로가 되어 준 장난감들
  
그때도 영화 캐릭터 수집이 그의 상실감을 메워 주었다. 수집의 완성은 수집품을 진열할 공간을 꾸미는 것, 즉 전시다. 장난감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면 설치미술과 다를 바 없다. 분류하고 디스플레이하다 보니 인형 옷 하나하나도 중요한 요소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사진을 전공한 덕에 그의 수집품은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기록되어 있다.
  
박물관을 열기 위해 그는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집이나 자가용을 장만하지도 않았고 평소 술도 마시지 않는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 번 돈은 고스란히 박물관 운영에 쓰인다. 개관 후에도 걱정이 많았다. 과연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보고 싶어 할까 싶었다. 그러나 관객들이 입소문을 타고 찾아와 주니 고맙다. 
  
“제 성격을 단어로 표현해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알게 모르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평생을 준비해 왔죠. 사진을 전공했으면서도 사진기를 팔아 장난감을 샀을 정도니까요.” 
  
20대 때 데이트할 때도 남대문이나 이태원 등지를 돌며 수집을 겸했다. “마음에 두고 손에 넣지 못한 물건은 없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대답한다. 워낙 어릴 때부터 수집을 삶의 1순위로 삼아 왔기에 그냥 지나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적게는 몇 백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장난감들. “이 수집품을 모두 돈으로 바꾸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짐작하기 어렵다. 경매에서 거래되는 희귀한 캐릭터까지 치면 어마어마한 액수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박물관을 열고 나니 이것들은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요즘 슬슬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지금도 왠지 토이뮤지엄의 관장이라는 호칭은 낯 뜨거워 쓰지 않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한다. 박물관다운 박물관이라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토이키노에 이어 〈메가키노〉라는 영화잡지를 만드는 게 꿈이다. 손 관장은 또 하나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알게 모르게’ 걸어가는 중이다.

 

※ 자료제공 : 톱클래스

http://topclas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