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

국제중 논란 해법은 뭔가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9. 7. 12:06
[weekly chosun] 국제중 논란 해법은 뭔가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2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공정택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위원회 사전심의와 동의를 얻지 않은 졸속적인 국제중학교 설립 강행을 중단하라!”

“교과부는 초등학교 사교육 광풍을 몰고온 서울 국제중학교 설립 추진을 중단하라!”
지난 8월 26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정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이곳에서 서울 국제중학교(이하 ‘국제중’) 설립 저지 기자회견을 가졌다. 정진화 위원장과 한만중 정책실장 등 조합원 10여명은 ‘국제중=(초등생도 입시전쟁)+(연간 1000만원 교육비 폭탄)+(사교육 광풍 조장)’이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든 채 구호를 외치고 회견문을 낭독했다.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 시민 60%가 국제중 설립에 반대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서울시교육청 “내년 3월 2개교 신설, 11월 신입생 모집” 발표
“사교육비 폭등하고 중학입시 부활” 비난 쏟아지면서 설립 제동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 지정계획을 내놓은 건 지난 8월 19일이었다. 교육청은 ‘특성화중학교 지정 계획’이란 이 자료를 통해 “국제화 시대를 선도할 글로벌 인재 육성 등을 위해 내년 3월 서울에 국제중 2개를 신설, 올해 말 학교별로 160명씩 총 32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교육청에 국제중 지정을 신청한 학교는 대원국제중(현 대원중)과 영훈국제중(현 영훈중) 등 2개교.

교육청 관계자는 “국제중 향후 추진 일정과 관련, 현재 교과부에 협의 요청을 한 상태이며 협의가 끝나면 오는 10월 구체적 전형요강을 결정한 후 내년 3월 첫 신입생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민선 1기 취임을 하루 앞둔 25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타 지역 국제중에 서울 학생들이 대거 빠져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에 국제중을 설립하는 건 시급한 문제”라며 “국제중 설립은 교육감 권한사항이고 반드시 관철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당장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살인적인 중학교 입시를 현실 세계로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한겨레 8월 22일자) “초등생도 내신관리를 위해 학원을 찾게 될 것이다”(매일경제 8월 22일자) “기회 차별에서 비롯된 영어구사 능력을 제도적으로 우대하자는 논리다”(경향신문 8월 22일자) 등 일부 언론도 국제중 추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전형요강 결정시기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존립 자체가 위협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제중의 필요성을 수긍하는 의견도 있다. 특히 “국제중 설립 논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며, 다만 선발방식 등 세부적 측면에 있어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설립 반대 여론에 묻혀 이런 목소리는 거의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와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등 교육학자 2명의 도움을 얻어 서울 국제중 논란을 둘러싼 주요 이슈와 각각에 대한 찬반 논리를 정리했다.

이슈 1 중학 입시 40년 만에 부활?
“고3병·중3병 이어 초6병… 경쟁률 358 대 1 이를 것” 
VS “모두가 국제중에 매달리진 않아…다양한 교육 제공 뜻”



서울 국제중 설립과 관련, 전교조는 “초등학생들을 전 학년에 걸친 국제중 입시 경쟁으로 내몰아 대학입시를 앞둔 고3병, 특목고 입시를 앞둔 중3병에 이어 국제중 입시에 시달리는 초6병까지 조장하겠다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서울지역 중학교 입시제도가 폐지된 건 지난 1969학년도. 일부에선 이를 빗대 “(국제중 설립은) 40년 만의 초등학교 입시 부활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모 인터넷 매체는 교육청 발표 며칠 후 “2007년 서울지역 초등 5학년이 11만4554명이었으므로 올해 치러지는 국제중 입시 경쟁률은 358 대 1”이란 내용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중 설립을 초등학교 입시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엔 무리가 있다. 국제중 반대론자의 논리는 “국제중이 예정대로 개교하면 서울시내 모든 초등학교 졸업예정자가 국제중 입시에 도전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내엔 국제중 전환을 앞둔 대원중·영훈중 외에도 366개의 중학교가 있다. 모든 초등생이 366개 중학교를 외면한 채 2개 학교 입시에만 매달릴 거라는 발상은 위험하다. ‘국제중이 생기기만 하면 모든 학생이 그곳으로 몰릴 만큼 나머지 학교들의 교육수준이 형편없다’는 생각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주장이 전교조 같은 교원단체로부터 제기된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권대봉 교수는 “초등생 누구나 국제중을 목표로 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훈초등학교처럼 초등과정에서부터 이중언어교육을 받은 학생이 일반 중학교에 진학하면 학습 효율이 떨어질 게 뻔합니다. 국제중이 이런 친구들을 흡수할 수 있겠지요. 국내에선 선택의 자유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조기유학을 택한 학생이나 언어 능력이 탁월한데도 가정형편상 유학이 힘든 학생도 국제중에서 끌어안을 수 있고요. 아무리 국제중이 생겨도 찾는 이가 없다면 존립할 수 있겠습니까?

수요가 있으면 그에 맞는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 수요가 개인의 소질과 특성을 개발하고 향후 국부 창출이나 국익 증진 등에 도움이 된다면 더 말할 나위 없겠지요.”

▲ 지난 8월 19일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들이 국제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성호 교수는 “서울시 교육정책 전체에서 국제중 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반대론자 논리대로라면 국제중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소위 엘리트교육이지요. 그 말이 맞다 해도 그게 교육정책의 전부는 아닙니다. 전문 기술인 양성을 위한 마이스터고교나 지방 학생에게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하는 기숙형 공립고교 같은 정책도 동시에 추진되고 있거든요. 그런데 국제중에 반대하는 이들은 국제중이 마치 교육정책의 전부인양 침소봉대(針小棒大)해 마치 현 정권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배려하지 않고 잘난 사람만 챙긴다는 식의 논리를 폅니다. 그 논리가 오히려 더 불공정하지 않나요?”


이슈 2 국제중 = 귀족학교?
“돈 없어 영어 못 배운 아이들은 기회 자체가 막혀”
VS “인재 육성 위한 부문별 엘리트 교육은 세계적 추세”

국제중 반대론자들은 ‘국제중=귀족학교’란 공식을 즐겨 쓴다. 국제중에 들어가려면 영어를 무지하게 잘해야 하고, 그러려면 어린 시절 해외 장기체류 경험이 있거나 막대한 사교육비를 들여 영어 몰입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돈 없는 집 아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없으니 입학 자체가 차단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사실 국제중 반대 논리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국제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같은 이유로 특목고도, 자립형사립고도 비판해왔다. 결국 점수제로 환원된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제를 끝까지 밀어붙인 것도 이들이다. 추진이 임박한 경제특구나 제주특별자치구 내 영리학교 허용도 물론 ‘결사 반대’다.

학업성취도평가 정보공개 방침에도 부정적이다. 결국 ‘지금 하지 않고 있는’ 건 뭐든 앞으로도 해선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중’이 먼저 화제에 오르긴 했지만 사실 서울시교육청의 이번 발표는 ‘(국제중을 포함한) 특성화학교’에 관한 것이다.

영어 부문을 특화한 국제중은 추후 개교가 예정된 여러 특성화학교 중의 하나일 뿐이란 얘기다. 다양화·특성화 교육은 전세계를 망라해 공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대봉 교수는 저마다 ‘다양화’를 외치며 성공하고 있는 각국 공교육의 현황을 최근까지 면밀하게 조사해왔다.

그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청년실업인데, 장기적 관점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외국어 특화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의 ‘리스본 전략’은 ‘모국어를 포함해 적어도 3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EU 내에서 직업 이동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국내 일자리가 제한적인 국가에선 해외 일자리 창출을 통한 판로 개척이 무척 중요하지요. 그런 면에서 길게 보고 관련 인재를 일찍 발견, 양성할 필요가 있어요. 국제중이 정착해 추후 다양한 외국어를 집중교육하는 특성화학교가 설립되면 해외 인재를 유치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시작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우려해야 하지만 ‘안 된다’는 쪽으로만 논리를 몰고 가면 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성호 교수는 “소외계층을 방치하는 엘리트 교육은 문제가 있지만 엘리트 교육 자체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소위 교육좌파들이 열광하는 프랑스 교육에도 최고 지도자만 갈 수 있다는 ‘그랑제콜(Grandes Ecoles)’이 있습니다. 거기 등록금이 얼마나 비싼지 몰라요.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그랑제콜 출신 아닌 이가 드물지만 그걸 문제 삼는 이는 없지요.”

그는 “다만 계층 간 위화감이나 부익부 빈익빈 문제 등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특별전형 마련 등을 통해 충분히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교육청이 발표한 특별전형(사회적 배려 대상자)은 전체정원의 약 7.5%(학교당 12명) 수준이다.

이슈 3 의무교육 과정 학비가 연 480만원?
“사교육비 포함 1000만원 넘어… 돈 없으면 공부도 못하나”
VS “유학 비용 줄이는 효과… 국제중 없다고 사교육 줄까”

현재 책정된 국제중 수업료는 연간 480만원 선(방과후 수업시 추가 비용 발생 가능).

외국어고와 비슷한 수준이다. 반대론자들은 “의무교육과정인 중학교 단계에서 연간 480만원이나 내야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사교육비까지 합하면 연간 1000만원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제중이 가뜩이나 문제가 되고 있는 사교육비 지출을 더욱 늘릴 우려가 있으며,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서민층은 능력이 돼도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거라는 논리다.

2007년 현재 연간 조기유학 인원은 3만명 선이다. 이들의 학업과 체류를 위해 매년 해외로 송금되는 금액은 50억달러(약 5조원, 한국은행 집계)에 이른다. 그러나 국제중 반대론자들은 전교생 960명(2개교, 3개 학년 전원 입학 기준) 규모의 학교 신설로 조기 유학생 중 다만 몇 명이라도, 얼마의 비용이라도 붙들 수 있다는 가능성은 외면한다. 연간 30조원이 사교육비로 지출되고 그중 절반은 영어교육에 쓰인다는 통계에도 눈과 귀를 닫는다. 이성호 교수는 ‘국제중 설립이 사교육비 증대에 일조한다’는 주장에 대해 “중학교 입시제도가 폐지된 1969년 이후 한번이라도 초등학교 사교육이 줄어든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교육이라는 게 언젠가는, 어느 단계에선가는 불가피하게 경쟁을 통한 선발을 하게 돼 있습니다. 사교육은 거기에 대비하기 위한 교육수요자의 대응방식이지요. 경쟁 없는 학교, 성적 얘기 하는 걸 죄악시하는 풍토가 오히려 사교육비를 늘려놨습니다. 학부모는 그럴 때 오히려 더 불안하거든요. 특성화학교 하나 더 만들고 덜 만든다고 해서 사교육이 늘거나 줄진 않습니다. 학교 시스템 자체가 다양한 학생의 수요를 제대로 충족할 수 있도록 정비되는 게 우선이에요.”

그는 국제중 반대론자들이 이해하는 의무교육 개념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무교육은 교육수요자가 재정적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운다는 것까지 규정하는 건 아니지요. 그런 의미에서 ‘국어와 국사 외 과목은 영어로 가르친다’는 교육내용까지 문제 삼는 건 잘못된 발상입니다.”

권대봉 교수는 사교육을 ‘사회적 덫(social trap)’이라고 명명했다.

“다들 사교육은 나쁘다고 입을 모으지만 자기 자식이 그 대상이 되는 데 대해선 입을 다물지요. 사교육 결정권자는 정부가 아니라 학부모입니다. 사교육 문제는 학부모에게 맡겨야 해요. 대신 정부는 공교육 개혁에 힘을 쏟아 교육 수요자가 ‘공교육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지요.

지금 정부 시스템은 학교(공교육)뿐 아니라 학원(사교육)까지 통제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교육을 챙길 여력과 시간이 있다면 학교교육과 지역사회교육 발전에 보다 힘써야 합니다. 지역사회교육센터에서 방대하고 저렴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학생에게 제공하는 독일 같은 사례를 본받을 필요가 있어요.”

연착륙하려면 서류·면접 거친 후 무작위 추첨하는 선발 방식은 재고를
다양한 특성화 학교 설립해야…일반학교 특화도 한 방법

반대 여론을 가라앉히고 서울 국제중 정책이 연착륙한다고 해도 남아 있는 문제는 많다. 가장 중요한 게 선발 방식에서의 논란이다.

현재 시교육청은 총 3단계에 걸쳐 국제중 신입생을 선발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학교장 추천과 학교생활기록부를 바탕으로 모집정원의 5배수인 800명을 1차 선발한 후 우리말을 사용한 개별면접과 집단토론 등을 거쳐 480명을 걸러내고, 최종 단계에선 무작위 공개 추첨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중 설립에 찬성하는 쪽조차 ‘추첨을 통한 최종 선발’ 방침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실정이다. 반대론자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긴 하지만 국제중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적절한 방식이라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중의 성공적 운영을 통한 다양한 특성화 학교의 설립도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다. 권대봉 교수는 “국제중 설립을 인가하면서 일반 중·고교에도 교육과정을 특성화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각 학교가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경쟁적으로 학생을 유치하고 정부는 유치한 학생 수만큼의 예산을 책정해 지원하는 선진국형 교육과정이 정착될 수 있도록 국제중이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호 교수는 “최근의 국제중 논란 이면엔 ‘국제중=출세의 지름길’이란 잘못된 선입견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한때 특목고만 나오면 앞으로의 인생이 탄탄대로일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지금 보세요. 특목고를 졸업하고 미국 명문대까지 나와서도 일자리를 못 구해 국내에서 학원 강사 하는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국제중도 마찬가지예요.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자질에 맞는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차원이지 결코 그 자체가 사회적 성공이나 특권을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결국 성공 여부는 마지막 순간에 기울이는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