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잡기
이번 달부터 학원 못 보내겠다”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9. 3. 29. 16:30
[사회] “얘야, 정말 미안하다…
이번 달부터 학원 못 보내겠다”
- 불황 깊어지면서 ‘마지막 지출’인 학원비까지 줄이고 나서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 늘면서 EBS 무료강의 신청은 급증
- ▲ 수강생 감소로 텅 빈 대치동의 한 사설학원 교실. photo 조선일보 DB
-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중랑구의 한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권모(여·15)양의 하굣길은 마냥 불편하기만 하다. 한 달 전 5년 동안 다니던 학원 두 곳을 끊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권양은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으로 가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내가 뒤처지는 건가…’ 하는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다고 했다.
권양의 부모님은 올해 초 “정말 미안하다”며 “당분간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공부해라”고 말을 꺼냈다. 평소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너 학원 끊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던 부모님이었다. 시내에서 200㎡(약 66평) 규모의 식당을 운영하는 권양의 부모님은 지난해 말부터 “장사가 안 되도 너무 안 된다”고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권양의 학원비로 매달 들어가는 돈은 약 100만원 정도다.
내년에 외고 입학을 원한다는 권양은 “부모님이 힘드신데 비싼 학원 다니겠다고 떼를 쓸 수도 없고… 집에서 그냥 예전에 학원 다닐 때 배웠던 내용을 다시 보거나 교육방송 수능 강의를 들으며 공부한다”면서 “하지만 학원 다니는 애들을 따라잡을 수나 있을지, 혼자 어떻게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
강남서 1년 동안 문 닫은 학원 200여곳
연 3만원 구청 인터넷 강의 회원은 폭증
경기침체로 다니던 학원을 끊고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국민들의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사교육의 나라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학원이나 개인과외 등에 의존해 공부했던 아이들도 집에서 책상 앞에 앉아 혼자 예습·복습을 하는 식으로 공부하고 있다.
지난 2월 27일 정부가 발표한 ‘2008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등학생의 평균 사교육 참여율은 75.1%로 2007년 77%에서 1.9%포인트 감소했다. 바꿔 말하면 ‘혼자 스스로 공부한다’고 답한 비율이 1년 사이 조금 늘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일주일당 사교육 참여 시간도 2007년 7.8시간에서 2008년 7.6시간으로 조금 줄어들었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사교육 참여 시간은 변화가 없었지만, 사교육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중·고등학생들의 사교육 참여 시간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1번지’라 불리는 강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강남교육청 관할(강남·서초구)에 있는 초·중·고등학생 대상 사설교육학원 가운데 지난해 1년 동안 폐업한 학원은 모두 219곳으로, 이 중 30%가 넘는 66곳이 실물경기 침체가 본격화된 지난해 10~12월 사이에 폐업했다. 수강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나 홀로 공부족’이 자주 이용하는 EBS 무료 수능 인터넷 강의를 이용하는 건수는 급증하고 있다. 올해 1~2월 사이 EBS 수능 강의를 이용한 건수는 1065만8000여건으로, 지난해 1~2월 사이 이용건수 683만1000여건보다 50% 이상 훌쩍 뛰었다.
‘강남구청 인터넷수능방송’도 올해 유료회원만 16만3000여명에 달해 5년 전 회원이 5000여명이었던 때와 비교해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사이트는 연 3만원만 내면 유명 강사들로부터 수능·내신 등 총 7500여개에 이르는 교과 강의를 무제한 들을 수 있어, ‘학원 안 가는’ 학생들에게 큰 인기다.
빈익빈 부익부
텅텅 비던 ‘방과후 학교’로 너도나도 신청 쇄도
중산층 이상 사교육비는 작년보다 오히려 늘어
- ▲ 방과 후 학교 photo 조선일보 DB
- 서울 잠실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인봉(50) 교사는 지난해 겨울방학을 앞두고 아이들로부터 ‘방과후 학교’ 수강 신청을 받다 깜짝 놀랐다. 방학이면 ‘학원가야 한다’며 방과후 학교에 관심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이번엔 너도나도 참여 신청서를 낸 것이다. ‘방과후 학교’는 학교에서 방과후 교과·특기적성 교실을 운영하는 것으로, 학원을 다닐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을 주 대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김 교사는 “반마다 신청자 수가 전년도에 비해 약 20~30% 정도 늘어난 것 같다”며 “개설 강좌 수강 신청도 치열해 정원이 38명인 한 강좌는 인터넷 수강 신청 시작 6초 만에 마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양모(여·39) 교사도 “원래 강남 고3 아이들은 방학 때 모두 사설학원으로 몰렸는데, 이번 겨울방학 때는 ‘방과후 학교 개설 안 하냐, 그건 비용이 얼마 정도 되냐’고 묻는 고3 학부모들 문의 전화가 하루에 한두 통씩 왔다”며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나 홀로 공부족’이 이른바 ‘서민 동네’에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적 여건이 되는 사람은 사교육을 더 많이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경기 불황 탓에 더 움츠러드는 ‘사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은평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모(36) 교사는 “몇몇 애들이 수업이 끝나도 학원에 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있기에 ‘너 학원 안 가니’라고 물어보니 ‘이제 집에서 공부해요’라고 말하더라”며 “이런 애들은 대부분 부모가 맞벌이라 애들이 혼자 집에서 시간을 허비하거나 하굣길에 쓸데없는 곳으로 빠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사교육에 번진 불황의 여파는 서민층이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다. 통계청의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교육 참여율 감소폭은 경기 불황에 취약한 저소득층에서 더 높았다. 월소득이 100만~200만원인 가구와 200만~300만원인 가구의 사교육 참여율은 지난해보다 각각 4.4%포인트, 3.3%포인트 줄어든 데 반해, 월소득이 300만원 이상인 가구는 사교육 참여율이 0.8~2.2%포인트 정도만 감소했다.
학생 한 명에게 지출하는 월평균 사교육비도 월소득이 100만~200만원인 가구와 200만~300만원인 가구의 경우 1% 남짓 증가하거나 그대로였던 데 반해, 월소득이 300만원 이상인 가구에선 지난해보다 1~3.6%가량 더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회 통계청 사회복지통계과장은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사교육을 못 받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그만큼 사교육 양극화 현상은 심화됐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지출되는 학습지, 인터넷 강의, 그룹 과외에 참여하는 비율이 그보다 비싼 학원 수강, 개인 과외 부문 참여율보다 더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 대책은 없나
근본적 해결책은 공교육의 경쟁력 확보뿐
사교육 못지않은 방과후 프로그램 개발해야
- ▲ 강남구청 인터넷 수능방송
- 그렇다면 홀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현직 교사들은 “의지를 갖고 공부하되, 최대한 무료로(혹은 무료에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EBS나 구청 인터넷 수능방송, 곰TV 고등부 강의, 사설학원에서 월 10만원 안팎을 받고 운영 중인 온라인 강의 등을 활용하는 ‘알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수년간 꽉 짜인 학원 스케줄에 맞춰 공부하던 아이들은 처음 맞닥뜨린 ‘무한 자유시간’에 나태해지거나 공부를 소홀히 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 관리’와 ‘자기 점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혼자 공부하면 학원에서처럼 누군가 시간 관리나 진도 관리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자거나 노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학원 강의표처럼 스스로 공부 시간표를 짜고 목표치를 정해 달성 여부에 따라 부모님이나 형제 등이 ‘상벌’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 와중에 웹 서핑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등 ‘딴 길’로 새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이동 시간에 PMP를 활용하여 인터넷 방송을 듣는 등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되, 여기에 영화나 만화 등 학습에 방해되는 영상물을 절대 담지 않는 ‘나만의 원칙’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공교육의 경쟁력 확보’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성상(45) 전국초중고공교육시민연합 사무처장은 “학교 교사들은 교대·사대 등을 졸업해 치열한 임용고시 경쟁률을 뚫은 ‘훌륭한 인재’들인데, 안일한 생각에 젖어 사교육보다 강한 공교육을 만드는 데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10시간 수업한 교사나 5시간 수업한 교사나 비슷한 대우를 받고, 열심히 일하는 교사를 ‘왕따’ 시키거나 ‘혼자만 일하는 척한다’며 빈정대는 현실에서 어느 교사가 자기 계발을 하겠냐는 것이다.
김 사무처장은 공교육 혁신을 위해 “현재 갈라먹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성과급 제도와 승진 인센티브 제도를 ‘더 열심히 일한 교사’에게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고, 교원평가제를 확대 도입하는 등 교사들 사이에 합리적인 경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최근 늘고 있는 ‘나 홀로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선 우수한 교사들이 적극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해 사교육 못지않은 커리큘럼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직 교사가 말하는 ‘혼자 공부하는 법’
`과학교실 등 교육청 등서 운영하는 특강 활용
‘꿀맛닷컴’ ‘에듀넷’ 등 무료 교육사이트도 많아
초등생 서울 우신초등학교 영어 교과전담 교사인 김희진(33)씨는 “교육청이나 일선 학교엔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무궁무진하게 많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을 최대한 적극 활용해야 ‘혼자 공부하기’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교육청이 운영하는 과학교실 등 특강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나 장학사 등이 직접 나와 아이들을 상대로 교과 강의를 하거나 실험을 하는 등 ‘높은 질’은 보장돼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선 학교별로 방과후 교실 보육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교사들이 방과후에 남아서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거나 특별활동 교육을 해주는 일종의 ‘어린이집’ 서비스 개념이다. 교육청 홈페이지나 각 학교 홈페이지, 동사무소 홈페이지 등에 수시로 프로그램 공지가 올라오니, 직장 다니는 어머니도 조금만 시간을 내 확인을 하면 아이들 관리를 손쉽게 할 수 있다. 초등학생 무료 교육 사이트인 ‘꿀맛닷컴’ ‘에듀넷’ ‘동아키드’나 EBS 사이트 등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학습 우수아와 부진아의 격차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이므로 부모들이 관심을 갖고 최대한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제집 풀이를 체크하는 대신, 읽은 책 내용을 체크하는 것이 말하기·쓰기·읽기 등 종합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문제집을 고를 때도 아이가 입맛에 맞는 문제집을 직접 고르게 한 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 풀게 하는 게 흥미를 유발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모의 수능평가로 ‘자기 점검’ 한 후 계획 세워야
혼자 공부하는 친구끼리 스터디그룹 짜도 도움
중·고생 김인봉 잠실여고 교사는 “혼자 공부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검검’”이라고 말한다. 자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해야 어떤 인터넷 방송 프로그램을 들을지, 수많은 시중 교재 중에 어떤 문제집을 사야 할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중·고생 대상 전국연합학력평가 시험에 응시해보거나, 기출 수능·모의 수능평가 문제를 다운로드 받아 한 번쯤 풀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들 서비스는 모두 ‘무료’다.
일단 ‘자기 점검’이 끝났으면 철저하게 자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때 EBS를 활용하든 구청 인터넷 강좌를 이용하든 부족한 부분을 면밀하게 공략해야 한다. 전국적인 내 수준은 어떤지, 언어·외국어·사회탐구·과학탐구 가운데 어느 쪽이 취약한지, 또 같은 언어영역이라도 비문학 부문이 약한지 고전문학 부문이 약한지를 확인해 그 부분만 반복 학습하는 것도 중요한 ‘학원식 전략’ 가운데 하나다.
강남구청 인터넷수능방송에서 과학탐구영역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영 서울 휘문고등학교 교사는 “학교 수업에 더욱 진지해지되, 공부 잘하는 친구랑 친해져라”고 말한다. 되도록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적극적인 수업 태도를 보이고, 수업 시간에 질문을 자주해 담당 교사와의 친화도를 높이라는 것이다. 이는 선생님의 관심을 유도해 학습에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는 우등생 동료가 학원 선생님을 대신할 수 있는 멘토(mento)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원의 장점 중 하나가 학생의 학습 관리이므로, 그런 시스템을 대신해 줄 협력자를 구하는 것이 좋다. 가족이든 학교 선배든 우등생 친구든 본인의 학습 상태를 점검해줄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
혼자 공부하는 친구들끼리 스터디그룹을 짜는 것도 게으름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룹 내에서 선의의 경쟁자가 생기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협력자를 만들 수 있고 함께 문제를 풀면서 자연스럽게 구술·논술 준비도 할 수 있다. 공통 논제,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파트를 수집해 각자 자신 있는 파트별로 나눈 후, 파트 담당자가 집에서 심화학습을 한 뒤 이를 다른 스터디 구성원에게 알려주는 방식을 활용한다.
/ 박세미 기자 runa@chosun.com
- 대책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