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교관의 전문화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우리 외교관의 전문화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
입력 : 2009.11.29 22:02 / 수정 : 2009.11.29 23:32
외교통상부는 내년부터 3년간 11개 주요 재외공관에 현지 출신의 '선임연구원(Senior Researcher)' 50명을 단계적으로 충원하고, 중점 외교정책 추진과 관련된 74개 공관에는 역시 내년부터 2년간 '전문직 행정원' 108명을 증원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재외공관 현지인 행정원 역량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신설될 선임연구원은 박사학위 또는 변호사 자격 소지자 가운데서 충원하고, 연봉은 평균 8만4000달러(1억원) 선으로 책정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외국에서 발생하는 이슈들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재외공관에 주재국 사정에 정통한 현지 출신 요원들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 외교관들의 한 재외공관 근무 연한이 대개 2~3년으로 한정돼 있고, 자주 임지를 바꾸는 바람에 대사관원 전체가 현지 사정에 어두워 사태 발생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따라서 재외공관에서 유능한 동포 2~3세대를 포함한 현지인들을 채용하겠다는 외교부 방침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외교부가 외교관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할 일을 해왔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 외교관 인사 운용 시스템은 전문성 강화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외교관들이 불어(佛語)를 모른 체하거나 새로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불어를 하면 불어 사용 국가가 몰려 있는 서부 아프리카로 발령을 받을까 염려해서다. 일단 아프리카로 배치돼도 오로지 그곳을 탈출할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전문 외교관 가운데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 수천만명이 상용하고 있는 현지어 싱할리어(語)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전무(全無)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인사의 평등이란 원칙 아래 북미·유럽 국가와 아프리카·남미·아시아 일부 국가 사이의 순환근무를 수십년간 변함없이 실시해 왔다. 외교관 대부분이 오로지 선진국, 그 가운데서도 북미·유럽·아시아 일부 국가 근무에 목을 맨 상황에서 순환근무를 통해 인사 불만을 최소화하려는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교관을 위해 외교가 있는 게 아니라 외교를 위해 외교관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당수 외교관을 지역 전문가로 키워내 우리 외교력을 내실화(內實化)하는 것은 외교부의 사명이다. 순환근무 시스템의 줄기는 유지하더라도 남이 외면하는 지역을 전문으로 삼겠다는 외교관들에겐 정년(停年)·보수·연수(硏修)·공관장 재임횟수 제한 등 여러 면에서 특별 대우를 하는 방안도 연구해 볼 만하다. 그래야 현지 전문가 채용도 명분이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