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핀란드에서 10년 산 세 아이 엄마가 겪은 ‘핀란드 교육’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10. 4. 3. 22:24
[핀란드 교육]
핀란드에서 10년 산 세 아이 엄마가 겪은 ‘핀란드 교육’
주간조선 [2098호] 2010.03.29
“3살 딸 말 늦다” 헬싱키大 병원서 한 달간 검사… 소아과 박사 등 10여명 모여 대책회의
특수아동 분류되면 양육비 추가 지원… 보조교사가 쉬는 시간까지 따라다녀
핀란드에 정착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살면 살수록 핀란드와 우리나라가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이 나라도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어 한때 나라 잃은 슬픔을 겪었으며 언어 역시 우랄어족에 속한 아시아 계통이다. 특히 두 나라 모두 자원 빈국으로 인적 자원을 육성하는 ‘교육’에 나라의 미래를 걸고 있다. 그러나 두 나라의 교육은 관심도만 비슷할 뿐 교육 체계나 방식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정도로 다르다. 세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 핀란드 공교육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이러한 생각은 더욱 굳어지고 있다.

유치원은 무조건 뛰어노는 곳

핀란드 공교육을 직접 접해본 것은 미코(필자의 첫째 아들)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가 처음이었다. 특이하게도 핀란드 유치원에는 ‘조기 교육’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읽기, 쓰기 수업과 영어, 컴퓨터 등 우리나라 대부분의 유치원에 개설돼 있는 수업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이들은 대신 오전, 오후 대부분의 시간을 유치원 운동장이나 숲에서 뛰어놀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은 날씨에 맞는 옷을 잘 갖춰 입고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핀란드 유치원에는 신발장과 옷장에 다 전기 건조기가 장착되어 있다. 아이들이 오후에 다시 나가 놀 수 있도록 젖은 신발과 옷을 뽀송뽀송하게 말리기 위해서다.

한번은 핀란드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어떤 한국 어머니가 핀란드 유치원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영어, 컴퓨터는 안 가르치고 매일 왜 밖으로만 아이를 내모느냐”는 것이었다. 세계 최고라고 알려진 핀란드 교육이 이것밖에 안되냐는 듯 그는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이 어머니와의 대화를 계기로 나는 외국인(특히 한국인)의 눈에 조금 이상해 보이는 핀란드 유아교육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 핀란드 유아교육의 핵심은 예상했듯 인위적인 조기 지식 교육에 있지 않고 ‘실외에서 자연과 벗하며 건전한 놀이를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키워나가는 것에 있다’고 쓰여 있었다.

▲ 첫째 아들 미코(왼쪽)가 여름 캠프에 참가해 낚시를 하고 있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때를 놓쳐 늦게 배우게 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서둘러서 연령에 맞지 않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핀란드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믿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 살 아이가 한글을 깨우치지만 핀란드의 세 살은 셋까지만 세면 된다.

이런 이유로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읽기 능력을 갖춘 아이들이 많지 않다. 읽기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학교에서 정식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이렇게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국민의 문맹률은 0%로 전세계 최저다. 이 수치야말로 ‘때에 맞춰 가르친다’는 핀란드 교육법이 효과가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핀란드에서는 음악 교육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6~7살 이하의 아이들은 실제로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법을 배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동네마다 많이 개설돼 있는 유아 음악 교실은 악기 연주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즐겁게 노는 곳이다. 선생님이 연주하는 곡을 들으며 아이들은 춤을 추거나 연상되는 그림을 그린다. 음악 교실에서 몇 년간 음악과 자연스럽게 친해진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악기 레슨을 받게 된다.

놀이 외에도 핀란드 유치원에서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아이들의 생활태도다. 선생님 말씀을 얼마나 경청하고 따르는지, 다른 아이들을 못살게 굴지 않는지, 공동생활에 필요한 태도 형성과 더불어 독립성 형성(혼자서 옷을 입고 혼자서 화장실에 가는 연습 등)이 유치원 학습 목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핀란드 유치원에서는 두 살짜리 아이도 웬만해서는 옷을 입혀주지 않는다. 아이가 옷과 씨름하는 동안 선생님은 옆에서 인내심 있게 아이가 옷을 다 입을 때까지 기다리며 아이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준다.

유치원 학비, 부모 소득에 따라 달라

핀란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도 모자라 ‘태아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변되는 사회복지 선진국이다. 이곳에서 유치원은 예상과 달리 무료가 아니다. 특이한 것은 유치원 수업료가 아이 부모의 소득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소득이 낮은 부모는 수업료를 내지 않으며 소득이 높으면 수업료를 남보다 많이 내야 한다. 핀란드 정부는 소득 불균형 해소의 한 방식으로 유치원 수업료 차등제를 도입했다.

▲ 유치원 학예회 모습.
그러나 유치원 수업료가 학부모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유치원 교사나 원장은 관여하지 않으며 그 내역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수업료 내역을 아는 사람은 부모와 수업료 청구서를 발행하는 관청의 공무원뿐이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교사가 행여나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들을 차별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무상 급식에 대해 여야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사정에 비교적 어두운 재외 동포로서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입장이지만 만약 부분 무상 급식으로 최종 결정이 된다면 적어도 급식비 내역이 학교 내에서 공개적으로 밝혀지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무상 급식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상처를 받는 학생들이 생기지 않도록 아이들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장치가 먼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핀란드처럼 관청 등 상부 기관에서 일괄적으로 서류를 처리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치원생 일거수일투족 정부에 보고

핀란드에서 유치원 교사는 아이를 돌보는 역할 외에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자세히 기록한 후 정부에 보고하는 ‘보고자’ 역할도 수행한다. 이들의 기록은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 방과 후 스케이팅 수업을 받고 있는 핀란드 초등학생들. / photo 조선일보
미코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몇 달 안 돼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편지에는 또래보다 핀란드 말이 많이 떨어지는 미코에 대해 유치원 교사가 정부에 보고했고 미코는 헬싱키대학병원으로 정확한 진단을 받으러 와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병원에 방문하고 나서야 그 검사라는 것이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달간 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받아야 하는 심층 검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청력 테스트로부터 시작, 뇌파 검사 등 각종 검사가 몇 주에 걸쳐 이어졌다. 이 외에도 병원 내부에 유치원처럼 만들어진 곳에서 미코는 언어 전문가, 심리 전문가 등 여러 전문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검사를 받았다.
한 달 후 검사 결과 발표가 있던 날, 헬싱키대학병원의 소아과 전문 박사를 포함하여 각계 전문가 10여명이 모여 미코의 언어 부진과 관련된 의견을 모았다. 당시 나는 단지 3세밖에 안 된 아이가 말이 조금 늦어진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전문가가 모였다는 것 자체가 너무 놀라웠다.

발음만 부정확해도 특수교육

그들은 아이 엄마가 한국인이라는 점도 고려, 회의 상황을 한국말로 통역해 줄 수 있는  핀란드인 통역도 대기시켰다. 한 어린이의 미래를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이 소요되는 이런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한 핀란드 정부가 정말로 놀라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핀란드 정부의 교육관련 표어는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서 온 산을 헤매는 목자처럼 핀란드 정부는 단 한 명의 어린이도 놓치지 않고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미코는 검사 결과 ‘언어 치료’가 필요한 ‘특수 아동’으로 분류되었고 우리 부부는 그 후 아이를 집에서 더 잘 돌보라는 의미로 나라로부터 양육비로 다달이 180유로(약 27만7000원)씩 더 받게 되었다. 미코는 특수 유치원으로 옮겨서 전문적인 언어 치료사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언어가 많이 부족해서 남들은 9년이면 끝난다는 초등·중등 과정을 3년 더 받아 12년에 마치라는 판결도 받았지만 현재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아이는 이제 언어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핀란드어에 능숙하게 되었고 학교도 정상적으로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핀란드에는 이렇게 나라의 관리를 받는 ‘특수 아동’들이 유난히 많다. 통계적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이런 특수 아동이 무려 5배나 많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평균적으로 전체 아동의 2%만 ‘학습 부진아’로 분류하는데 핀란드는 무려 10%에 달한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서는 핀란드어 발음 중 혀를 몇 번 굴려야 하는 가장 어려운 ‘R’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들도 경미한 ‘학습 부진아’로 분류하여 언어 치료를 받게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를 시작할 무렵에는 대부분 학생이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입학 시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명된 아이들은 10명 이하의 학생 수로 편성되는 특수 학급에 배정되어 분리 운영된다.

보통 이런 학급에는 담임 선생님 외에 몇 명의 보조교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보조교사는 개인 가정교사와 거의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이해력이 떨어지는 아이의 옆에서 담임 선생님의 설명을 그 아이에게 재차 부연 설명해준다. 수업 시간 외 쉬는 시간에 그 아이를 따라다니며 생활지도를 해주는 것도 보조 교사의 임무다. 물론 이들 교사의 월급(1인당 1800유로, 약 277만원)도 정부에서 지급하며 부모의 부담은 전혀 없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한 기자는 이런 핀란드 공립학교를 취재한 후 “교육 수준이 미국에서는 엄청난 학비를 내야 다닐 수 있는 부유층 전용 사립학교와 같다”고 칭송하기도 했다.

공부 뒤처지면 유급 당연

핀란드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정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정부, 교사, 부모가 군사부일체가 되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학습 능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 다음은 바로 유급제가 기다리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이런 유급제를 ‘스타르티(startti)’라고 부르는데 유급 판정을 받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전체 학급의 10% 정도는 학년 말 유급 판정을 받는다.

며칠 전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이다(필자의 딸) 담임 선생님이 주최한 학부모 간담회에 다녀왔다. 학년 종료가 두 달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학교생활을 잘 마무리하자는 의미로 모인 간담회였다. 회의가 끝날 무렵 선생님은 3학년 교과서 몇 권을 학부모들에게 보여준 뒤 3학년 수준은 2학년에 비해 많이 어렵다며 이름을 호명하진 않았지만 몇몇 학생은 유급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선생님의 발언에 생각보다 부모들의 반응이 너무 담담했다. 유급이란 단어에 움찔한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학부모들은 차분하게 유급과 관련된 질문을 선생님께 차례로 했고 아이에게 유급이 필요하다면 수용하겠다는 분위기였다.

▲ 딸 이다(가운데)의 생일파티에 참가한 아이들.
이들에게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뒤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상대적 박탈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핀란드 교육에서는 한 아이가 얼마만큼 배우냐는 절대적인 기준이 중요할 뿐이지 누구를 누구에 비교하는 상대적 잣대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엄친아’ ‘엄친딸’이란 단어를  핀란드 사람들은 과연 이해나 할까?

일등·꼴등 없는 상향 평준화

핀란드 학교에는 비교가 없으니 불필요한 경쟁심도 없다. 한번은 한국의 한 기자가 핀란드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반에서 누가 1등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누구도 1등이 누군지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1등이 없으니 꼴등도 없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평등을 배우며 경쟁 아닌 협력을 배운다.

핀란드에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클러스터가 많이 있다. 클러스터를 만드는 목적은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연구소가 협동하여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가기 위한 것이다. 세계 굴지의 클러스터를 만들어 잘 협력해나가는 핀란드인의 습성도 학교 교육을 통해 길러진 것이 아닐까 미뤄 짐작해 본다. 세계가 칭송하는 핀란드의 국가 경쟁력도 국민 간의 경쟁심으로 배양된 것이 아니라 공교육을 통해 국민들이 배운 협동심에 기인한 것임을 우리는 깊게 새길 필요가 있다.

이보영 | 서울대 동양사학과 졸업. 1999년부터 핀란드에 거주. 투르크 대학원 동아시아학 석사과정. 노키아 엔지니어인 핀란드 남성 티모 라사텐씨와 결혼해 미코(10세), 이다(8세), 마티(6세)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핀란드 교육 본받자”고 하기 전 해야 할 일

핀란드의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주목할 사항은 첫째, 학교·계층 간 편차가 매우 낮다는 점이다. ‘모두를 위한 교육’을 목표로 평등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온 핀란드 교육의 중요한 성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흔히 말하는 수월성과 평등성을 조화롭게 실현하는 매우 모범적 사례로 칭찬할 만하다.

둘째, 서열과 경쟁 위주의 교육보다는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이 한데 어우러진 협력학습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볼 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셋째, 7세 공교육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비가 무료라는 것이다. 이는 최근 무상급식 문제와 관련하여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핀란드의 평등주의적 교육정책 기조와 관련하여 어떤 교원단체는 우리의 평준화 교육정책 논쟁이 있을 때마다 ‘평준화 정책을 폐지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적 근거로 핀란드 교육사례를 들기도 한다.

핀란드가 PISA 3회 연속 종합 1위에 오르면서 세계 각국에서 핀란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핀란드 교육의 성공에 대하여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적 평가 순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좋은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 핀란드 교육이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토양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핀란드 교육의 성공에 대한 여러 국가의 관심이 반드시 각 나라의 교육주체들로 하여금 ‘핀란드식(式) 교육’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우리는 핀란드 교육이 어떤 역사성과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세밀하게 따져본 다음 우리가 받아들이고 보완해야 할 정책들에 대해서는 배워야 할 것이라고 본다.

30년 전 ‘교사 질 높이기’ 강도 높은 개혁

핀란드 교육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기초 교육을 제공한 점, 우수한 교사와 교사 교육, 지속성 있는 리더십, 교육 혁신을 가치있다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 그리고 국가 규모가 작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핀란드 교육개혁의 성공은 ‘신뢰의 문화’에 있다고 할 것이다. 세계적 권위의 국제투명성기구가 평가한 국가투명성 평가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국가가 바로 핀란드다. 모든 국민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장·차관과 국회의원 등 국가지도층의 정직성은 말할 것도 없다. 양심을 속이려면 핀란드를 떠나라고 말할 정도다.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을 들라고 한다면 아마도 교사에 대한 국민의 높은 신뢰와 교사의 전문성일 것이다. 핀란드 교육개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사들을 개혁의 주도세력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교원 노조의 역할도 컸다. 핀란드는 교원의 질을 높이기 위해 1970년대 중반 이후 교원 교육을 대학에서 실시하고 석사 학위를 요구하는 강도 높은 변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 오늘날 교사들의 높은 학력과 전문성은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핀란드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다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수업료·교재비·식비 등 교육 전 과정에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가 부담한다. 대학까지 다 무료다. 우리처럼 일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하여 벌이는 치열한 경쟁 같은 것은 없다. 이는 국민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거둬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복지를 향유하는 북유럽 경제모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개별학습 가능한 무학년제 도입은 검토할 만

우리는 흔히 핀란드 교육을 평등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우리처럼 치열한 성적평가 제도도 없고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평준화 정책과 동일시하는 견해들이 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핀란드 교육의 기본 목표는 ‘모두를 위한 교육’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높은 수준으로 제대로 된 기회를 누리는 교육을 추구한다. 그런 면에서 평등성을 추구한다고 보는 것은 옳은 지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핀란드 학교 교육은 철저한 학생 중심의 개별 수업으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한 학년씩 진급하는 형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학생 개개인의 발달 과정에 맞춰 학습 목표를 정한 후 성취도에 따라 개인별로 학습 디자인을 해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핀란드에선 학년이나 반 편성의 개념이 없다. 개별 학습이 가능한 홈룸(home room)이 존재할 뿐이다. 완벽한 무(無)학년제인 셈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시간표를 작성하고 코스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수업에 관한 한 광범위한 자유를 갖는 것이다. 이처럼 학생 개개인에 초점을 맞춘 맞춤형 교육, 학생이 중심인 학교 운영이 핀란드 교육의 진짜 경쟁력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평준화 교육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같은 이유로 졸저 ‘교육의 틀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에서 우리나라도 무학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창한 바 있다.


/ 김영식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전 교육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