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어떤 인재를 요구하고 있는가. 그런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세계는 어떻게 뛰고 있는가. 또 한국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본지는 세계의 교육동 향을 살펴보고 한국교육의 현실과 문제점을 진단함으로써 21세기 한국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그 〈1부〉에서는 ‘창의력이 경쟁력’이라는 주제로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 위한 세계 각국의 교육 현장을 소개한다. 향후 100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 는 동력(動力)은 무엇일까. 그 정답을 찾는 데 가장 필요한 요소는 바로 창의성 (creativity)이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독창적 아이디어와 기술로 만든 창의적 제품을 누가 얼마나 내놓느냐가 국가적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또 교육 현장 소개와 별도로 〈1부〉 1회에서는 2007년 정해년(丁亥年)을 앞둔 세 밑 이장무(李長茂) 서울대 총장과 황창규(黃昌圭)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 이 만나 ‘창의력 교육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다’를 주제로 신년대담을 가졌다. 2회에서는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이자 전략가인 오마에 겐이치가 말하는 ‘21세 기 인재 교육의 기본 개념’을 실을 예정이다.
◆왜 창의력 교육이 필요한가
이장무 총장=과거 20세기 산업사회에서 우리는 암기형, 주입식 교육으로 선진 국을 추격했다. 이제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는 다른 나라를 앞서갈 선도형 교육으로 가야 하는데, 그 핵심이 창의성이다. 창의성 없이는 우리가 세계 5~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될 수 없다.
황창규 사장=세계 경제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시대로 가고 있다. 1위가 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1위로 오르고, 1위를 유지하는 핵심 열쇠가 바로 ‘창의적 제품’이고, 이 창의적 제품을 만들려면 창의적 인재 가 길러져야 한다.
이 총장=세계의 글로벌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가 네트 워크로 연결돼 있다. 남이 생각해 내지 못한 획기적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조 직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해 남보다 빨리 실현시킬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황 사장=창의적 제품을 만드는 데 덧붙여 또 하나의 화두는 ‘기술 표준화’이다. 어느 나라가 ‘표준화된 기술’을 먼저 만들어 내 주도하느냐의 여부가 기업의 사 활을 좌우한다. 기술 표준화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개념 기술을 만들어 업계를 선도하는 것인데, 이 또한 창의성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21세기형 창의적 인재란
이 총장=지금까지의 인재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독자적인 판단으로 주어진 임 무를 달성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미래의 인재가 만나는 문제들은 통합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고 있다. 종합적 사고와 판단능력이 높아야 하고, 타 전공과 의 소통을 잘할 수 있는 ‘네트워크형 인재’가 필요하다.
황 사장=전통적인 제조업은 대부분 중국으로 이전되고 있다. 앞으로는 IT(정보 통신), BT(생명기술), NT(나노기술) 중심의 첨단기술과 이들을 한데 묶는 융· 복합 기술이 요구된다. 또 감성을 중시하는 디자인 경쟁력에 승부를 걸어야 하 기 때문에 이 같은 ‘퓨전 테크놀로지’를 아우를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이 총장=그래서 중요한 것이 IT, BT, NT 등을 묶는 연계기술인 RT(Relation Technology)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콘넷씨오네’(connessione)를 창의성 원 칙의 하나로 꼽았다. (콘넷씨오네란 사물과 여러 현상을 체계적으로 묶듯, 분 절된 학문들을 연계해 종합적으로 파악한다는 개념이다.)
황 사장=21세기형 인재는 자신의 업무영역에 대한 깊은 전문지식을 갖추면서 도, 다른 영역이나 교양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춘 ‘전문화되면서도 다재다능 한 인재’(Specialized Generalist)가 필요하다. 거기에 풍부한 감성지능(Emoti onal Intelligence), 열린 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따뜻한 인간 미를 갖추어야 한다.
◆창의성 있는 인재를 배출하려면
이 총장=창의적 인재가 나오려면 교육의 모든 내용과 방법이 혁신적으로 변해 야 한다. 대학에서는 정형화된 학문들 간의 벽을 과감히 허물면서 학문의 융합 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해야 한다. 학문 간의 벽을 쌓고서는 편협된 지식,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만 양산할 뿐이다.
황 사장=1년 중 150일을 해외출장 다니면서 많은 천재들을 만난다. 중국의 천 재들을 만나보면 ‘천재 같지 않은’ 천재들로 느껴진다. 영어 구사능력이 완벽하 자기 전공에 대한 얘기를 아주 여유 있게 한다. 반면 우리의 천재들은 분야별 로 우수하고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어딘지 긴장하고 있고, 사고방식이 유연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총장=아이작 뉴턴이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를 거쳐 발전된 근대 과학을 완 성한 데에는 앞선 과학자들만의 영향이 있었던 게 아니다. 뉴턴은 고대 그리스 , 로마의 시, 성경,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 연금술 연구 등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뉴턴처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창조적으로 교환하고 결합시켜 새로 운 아이디어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교육에서 어떻게 구현시켜주느냐가 중요하 다.
황 사장=반도체 하나만 봐도 여기엔 공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화학 같은 순수 과학이 다 들어있다. 외국의 대학생을 보면 공학도이면서 MBA를 배운다. 대학들이 이제는 학생들에게 정규 커리큘럼 이수를 통한 인문소양을 높여주면 서 다양한 과외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총장=대학의 개방성과 자율성이 확보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대학에 대한 투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스탠퍼드 대학을 보자. 강좌의 21%는 수강 하는 학생이 1명뿐이다. 또 강좌의 75%는 15명 이하의 규모여서 토론식 교육 이 이루어진다. 우리 대학에서 한 강좌의 수강인원이 5명 이내라면 즉시 폐강된 다. 이게 모두 재정이 충분하면 가능 한 일이다. 보수적인 독일의 대학에서도 미국식 적자생존의 자율경쟁 체제를 받 아들이는 실정이다. 황 사장=미국과 유럽은 자원이라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가진 게 사람뿐이다. 결 과적으로 사람의 미래, 경제의 미래, 국가의 미래가 모두 사람을 어떻게 키우느 냐에 달려 있다. 대학 교육도 기업과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 대학의 SCI 논문 증가율이 세계 1위 수준이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가 산업현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맞춤형 산학연계 교육제도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이 총장=우리 대학들에서는 하위권 학생들에 대한 배려는 있지만 상위 1% 영 재급 학생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다. 외국 대학에서는 우수한 고교 학생들이 대 학 과목을 미리 듣고 대학에서도 특별 고급 교과목을 들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창의성과 천재성을 키워줄 수 있는 제도가 불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 아무 리 좋은 인재를 뽑아놓는다고 해도 창의성 없이는 20억명이 넘는 중국, 인도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황 사장=초중등 교육도 달라졌으면 좋겠다. 소득 수준이 3만 달러를 넘어 5만 달러, 10만 달러가 되려면 교육 인프라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공평을 지나치 게 강조하며 평준화만을 지향해선 안 된다. 창의성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된 인 재들에게 무한경쟁을 유도하고 이들이 마음껏 끼와 재능을 발휘하며 성장토록 해야 한다. 과학고를 비롯한 특목고 등 맞춤형 영재교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그들만을 위한 ‘속성 과정(Fast Track)’을 과감히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들이 입 시 때문에 좌절해선 안 된다. 이 총장=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한 학교 에서 피리 하나만 가르친다. 반면 외국은 각자 하고 싶은 악기를 배우게 하고 연말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다. 어느 쪽이 창의적이 되겠는가. 자라는 학생들 을 틀 속에 묶는 것에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초중등 교육은 물론 대학교육도 자기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는 자기주도형 능동적 학습으로 바 꿔나가야 한다.
황 사장=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를 배출하는 산실(産室)로서 대학을 키우려는 국가 차원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를 보면 국가 차원에서 소 수의 천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시스템과 제도가 갖춰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콘텐츠도 있고, 개인별 역량도 뛰어나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정부가 이를 조직화하고 제도화하는 데 미흡하지 않나 하는 점이다. / 정리=양근만기자 yangkm@chosun.com 김남인기자 kni@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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