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사관학교'라며 유명세를 얻으며 서울대가 자유전공학부의 런칭을 기대하고 있다. 이르면 2009학년부터 운영해 서울대 내 엘리트 양성소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김샌 소리를 할 수는 없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 쪽에서는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을 위한 '통로'로 변질 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서울대 내 학생들 간의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걱정 섞인 말도 오가고 있다. 한국의 뛰어난 학생들을 모으려 하는 서울대의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예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우선적으로 내가 다니는 캐나다대학의 자유전공학부(Interdisciplinary)의 '몰락'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물론 내 경험에 한정되어 말하는 것이기에 어두운 점이 좀 더 부각될 수 있고, 혹자는 필자의 편견이 다분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 주변에서 자유전공학부를 기피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왜 그 학부의 인기가 설립 이후 몇 년 만에 떨어졌는지 다뤄보고 싶다. 이를 통해 서울대 뿐 아니라 자유전공학부에 대해 만연한 기대를 하거나 지나치게 긍정적·부정적으로 보는 입시생들에게 조금이나마 가치가 실린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
서울대학교 홈페이지 캡쳐
한국대학과 캐나다대학의 자유전공학부, 어떻게 다른가?
서울대가 어느 대학을 벤치마킹했을 지는 모르지만, 캐나다의 UBC는 약 몇 년 전부터 자유전공학과에 대한 선전을 국내외로 해왔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학문으로의 접근을 통해 학생들에게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 '글로벌 엘리트'로 양성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슷한 의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UBC 자유전공학부'는 말이 안 된다.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 차이를 미리 숙지해야 "UBC의 결과가 안 좋았으니 서울대도 안 좋을 것"이라는 허황된 기대를 차단할 수 있다. 언제까지나 '자유전공'이라는 틀 내에서 써내려가는 글이므로 그만큼 균형 잡힌 정보를 얻는 것도 네티즌들의 몫일 것이다. 이 두 대학의 차이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기에, 유사점에 집중해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다른 점이 있다면, 서울대가 1학년 때부터 학부 자체를 새로 개설하는 반면, UBC는 자유전공'학과'이다. 캐나다대학에선 일반적으로 3학년부터 전공이 시작되기에 그 때부터 여러 학부의 학생들이 자유전공학과로 진입해 전공 선택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UBC학생들에게는 1,2학년 동안 자유전공학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만, 서울대학생들의 경우는 입학 때 결정이 되어버리기에 조금은 대입시기에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2008년 7월 15일자 '서울대 '엘리트 사관학교' 내년 출범"
비슷한 점을 살펴보자면, 서울대와 UBC가 2~3개 이상의 전공을 한 번에 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비슷하다. 기존의 단수/복수 전공의 차원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학문을 다양하게 맛보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의 단일한 학부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대·인문대·사회과학대 등의 연대를 통해 학생들의 학문을 책임진다. 다양한 학부 출신의 교수들이 강좌를 맡는 것은 당연하다. 전공에 상관없이 인문학·과학 등 서로 상반되는 학문을 동시에 전공할 수 있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형식. 이렇게 큰 틀에서 보면 서울대와 UBC의 자유전공학부/학과는 기초적인 이상에서 흡사한 점이 많다.
'전공/소속 불분명'+'대학원 걱정'+'타학부와 교류↓' = '자유전공학과'의 어두운 단면
먼저 밝히 건데, 나는 캐나다대학의 자유전공학과가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설립 때부터 몰아왔던 인기에 비해 학생들로부터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저조했고, 더 나아가 설립된 지 몇 년 만에 전공진입 요구학점이 UBC 내 학과 중 최하위로 떨어져버렸다. (※일반적으로 캐나다대학에서 전공 진입키 위해선 1~2학년 평균학점이 B 이상이 되어야 한다. 초창기에는 흡사하거나, 추가 원서를 요구하는 등 입학조건이 까다로웠던 이 자유전공학과의 전공진입 학점은 이제 C-대로 떨어져 버렸다.) 학교 내 몇몇 자존심 강한 학생들에게 이 캐나다 자유전공학과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전락되어 버렸다. 처음 기대했던 '엘리트 양성소'라는 기대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더 나아가 이미 3학년에 전공을 선택해버려 학점을 자유전공학과에서 이수한 몇몇 학생들은 뒤늦게 전공을 바꾸려 해도 시기가 늦어버려 추가 학기를 다녀야 하는 부담을 안기도 한다. 이 점은 학부 차원에서 시작하는 서울대와 다른 점인데, 만약 2009학년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로 입학 이후 전과를 원하는 1학년 학생들에게는 조금 덜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연대·인문대·사회과학대처럼 하나의 독립된 학부에서 타 학부로 옮겨야 한다는 사실은 한국학생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짐일 수 있다. 그래서 초기의 결정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에너지·시간·학점 등에서 여러 가지 희생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내가 듣고 보았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제공하고자 한다.
# 1. 재작년 경제학과에 다니는 한 선배를 만났을 때, 2학년이었던 나는 전공 진입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캐나다대학 내 자유전공학과가 런칭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지만, 생각보다 주위에 그 전공을 택한 사람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한 때는 자유전공학과를 통해 인문학·과학을 한 번에 전공해 경제학·통계학 쪽으로 공부하기를 생각했던 선배. 그러나 그는 결국 인문학 내 경제학 전공으로 발길을 옮겼다. 입학한 지 1년만에 편입한 것이다. 우선적으로 초기 런칭에서 자유전공학과의 인지도는 국내에서-선전에도 불구하고-미비했었다. 더 나아가 막상 자유전공학이라고 하면 본인의 전공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보인다는 이미지가 강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뭐 전공하세요?"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전공이름보다 설명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도 자신의 학문에 대한 애정·전문성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아 결국 경제학으로 편입해야 했다는 그 선배. 한 우물이라도 깊게 파자, 라는 생각에 단일 전공을 선택했다는 그 선배에게 자유전공학이란 붕 뜬 이야기 같았다.
# 2. 필자가 전공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자유전공학과를 전공했던 선배가 대학원 시험을 두고 안절부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대학원 면접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입학을 희망하고자 하는 대학원에는 자유전공학부가 존재조차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을 고려할 때, 학부와 비교해 명성·퀄리티·교수진 등에서 우월한 학교를 생각하게 되는데, 만약 그 학교에서 자유전공학과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해당 학과생들의 부담이 커지게 된다.
캐나다 UBC 자유전공학과 홈페이지. 선전에도 불구, 학생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아보인다.
더 나아가 자유전공학과, 라는 학부 때 전공이 특정전공으로 좁혀져야 한다는 기대 아래 그 선배는 대학원 면접에서 타 학생들에 비교해 포인트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 학생들에게는 스스로의 '소속감'·'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특정단일전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본인이 떨어진 이유가 본인이 '자유전공학'이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기는 싫다지만, 하나의 단일 전공을 본인이 가졌더라면, 면접에서 좀 더 확립적인 본인의 정체성,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게 아니겠냐는 게 선배의 설명이다.
이 예는 아이로니컬하게도-일각에서 제기됐던-자유전공학부가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을 위한 지름길이 아니냐는 의혹을 잠재우기도 한다. 입시에는 어차피 타 대학의 단일전공 학생과 '맞붙는' 것이기에 아무리 전공 선택의 폭이 넓다한들 대학원에게 익숙치 않은 전공일 경우, 본인의 전문성이 '희미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에 유리한다고 기대했더니, 오히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 3. 캐나다대학의 경우 자유전공학과는 인문학부에서 설립의지가 있었고, 지금도 인문학부를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있다. 물론 Humanities, Social Sciences, Creative and Performing Arts, Science 등의 다양한 학문을 맛볼 수 있지만, 우선적으로 타 학부/학과와의 교류가 미진하다. 학생 수가 적어 인기가 없다보니 생겨난 결과다. 또 학과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학생회조차 타 학생회와 비교해 구체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단순히 학생회·학과·학부 등과의 교류가 없다고 자유전공학과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초창기의 자유전공학과의 선전과 그를 위해 쏟아 부은 인프라와 비교해 학생들의 부응이 낮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전공진입 요구학점이 대폭 낮아진 것이 그 반증이다.
결국 선택도, 책임도 본인의 것이다
끝으로, '대입'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 한들,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여러모로 고생을 하는 새내기 학생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 점은 캐나다 뿐만 아니라 한국학생들도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자유전공학과의-한국 이상의 선전에도 불구하고-학생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직전에 '수소문'해서 찾아야 했고, 얼마 전부터 그나마 알고 지내던 그 학과 학생들도 결국 편입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론적으로, 외부에서 몰라주는 독립적인 '섬'을 택하느니, 좀 더 안정적이고 '전공'과 관련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싫다는 것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자유전공에 익숙해 온 몇몇 캐나다학생들의 의견이다.
물론 강의의 질도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고, 서울대가 UBC와 비교해 성공적인 케이스로 발돋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할지라도 선택은 결국 본인이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광고·선전 등에 몰두하면 안된다고 본다. 지나치게 우려·의심을 하는 것도 야심차게 자유전공학부를 준비해 온 서울대에게 예의가 아니지만, 결국에 책임은 학생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몇몇 캐나다학생들의 몇몇 경험을 한번 고려해보기를 권한다.
'우리 아이 교육과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학년도 '고교선택제' 시행되면… (0) | 2008.09.20 |
---|---|
인문계 수능도 미적분 포함 현재 중3학생부터 적용 (0) | 2008.09.11 |
공정택 "내년 3월 국제중 개교" (0) | 2008.08.03 |
‘절대권력’ 교육감 잘 따져 뽑읍시다 (0) | 2008.07.13 |
체육수업 2~3시간 연속 배정 추진 (0) | 2008.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