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 3년·중학 3년·고교 3년 등 세 명의 자녀를 둔 학부모 성항경(49)씨는 새 학기 들어 첫 주말이었던 지난 3월 8일 아이들 자습서를 사주기 위해 동네 서점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학년, 과목 할 것 없이 자습서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있었던 것. “막내 딸아이만 해도 2만6000원대 전과 한 세트와 1만원 남짓 하는 국어·수학·사회·과학 문제집을 한 권씩 고르니 7만원이 훌쩍 넘어가더군요. 중·고등학교 자습서는 주요 과목만 골라도 10만원을 넘기기 일쑤고요. 꼭 필요하다는 것만 추리고 추렸는데도 30만원 이상 쓰고 온 것 같습니다.” 그는 “서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자습서 가격은 매년 5~10%가량 인상됐지만 올해는 전체적 인상 폭이 다소 커졌다고 하더라”며 “특히 초등 교재와 영어 교재 가격은 줄잡아 20%는 올랐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다”고 말했다.
- ▲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 참고서를 고르고 있는 고객들. / photo 연합
- 얼마나 올랐나
문제집 붙이고 부록 붙이고… 가짓수 늘리기
중·고생 자습서와 문제집 갖추려면 수십만원
성씨의 말을 듣고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서점을 뒤져 초·중·고 자습서와 참고서 가격을 조사했다. 초등생 사이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자습서 시리즈는 ‘우등생 해법’(천재교육)과 ‘동아전과’(두산동아) 등 2종. 우등생 해법은 3만4500원(1학년)~4만8000원(6학년), 동아전과는 2만5000원(1학년)~2만5500원(6학년)에 각각 팔리고 있었다. 모두 1학기용이다.
특이한 건 두 종류의 자습서 모두 세트 구성이 화려하다는 점. 1학년 1학기용 우등생 해법 시리즈의 경우 국어, 수학, 바른생활·슬기로운생활·즐거운생활 등 본책 3권에 ‘단원별 쪽지시험 자료집’ ‘우등생 글쓰기’ ‘한자 브로마이드 8·7급’ 등 3종의 특별부록이 추가돼 있다. 1학년 1학기용 동아전과도 5권의 본책 외에 ‘국어·수학 단원평가 예상문제집’ ‘중간·기말 학업성취도평가 예상문제집’ 등이 부록으로 따라온다. 가짓수가 많다 보니 출판사들은 알록달록한 비닐가방에 책을 담아 판매한다. 아이들의 눈길을 끌 만한 구성이다. 학년에 따라 학부모 가이드나 수준별 문제은행, 기출문제집 등을 끼워주는 경우도 있다.
중·고생용 자습서 가격은 더 올라간다. 두산동아 교과서를 쓰는 중3 학생이 자습서를 구입한다고 해보자. 국어·생활국어(2만원), 영어(1만6000원), 수학(1만원), 과학(9000원) 등 주요 과목만 사도 5만5000원이 든다. 여기에 영어 교과서용 테이프(1만4000원)를 더하면 6만9000원이다. 자습서 내용을 복습할 수 있는 문제집까지 더하면 지출액은 갑절이 된다. 중학생 사이에서 인기 있다는 완자(비유와상징) 국어·생활국어 3-1은 2만500원, 우공비(좋은책신사고) 영어 3-a는 1만1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고교생용 자습서와 문제집은 중학생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비싼 수준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용으로 발간되는 18종 문학 교과서 종합 자습서 같은 책은 1권에 4만2000원(디딤돌)이나 한다. 문제집 가격은 아무리 싸야 1만2000원 선. 2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적지 않다. 더욱이 고교과정은 중학교에 비해 과목이 훨씬 세분화돼 있다. 이 때문에 주요과목과 취약과목을 보완하려면 적으면 15만~20만원, 많게는 30만원에 이르는 참고서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비싼 참고서값’은 통계청 조사로도 증명된다.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품목별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2005년 전국 물가를 100으로 봤을 때 2009년 현재 출판물 물가지수는 113.9다. 총물가지수(111.6)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나 참고서 물가지수는 대체로 이보다 높다. 특히 고교(110.0)보다 중학교(120.8)가, 중학교보다 초등학교(122.9)가 인상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 뭐가 문제인가
출판사 “새 교육과정에 맞춰 개편해 인상 불가피”
학부모 “문제집·CD 등 필요없는 것까지 끼워 팔아”
참고서 가격이 단순히 물가 인상률에 준해 올랐다면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올 초 출시된 자습서와 문제집 중 초등 1·2년 전과목과 중1 영어·수학, 고1 영어·수학 관련 책값은 유난히 뛰었다. 올 3월 1일부터 시행되는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일명 ‘제8차 교육과정’)을 반영해 제작됐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과정이 한꺼번에 바뀌었을 때의 혼란을 피하고 현행 검인정 체계로 돼 있는 교과서 개편 작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학교급별, 학년별 교육과정 시행 시기에 차등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개정된 교육과정은 올해를 시작으로 2013년까지 5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표 참조>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교과서가 달라졌다면 참고서도 응당 그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출판사들도 ‘새 교육과정을 반영했다’는 내용을 자습서 표지에 노출시키며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문제는 내용 변화에 따른 가격 인상폭이 지나치게 크다는 데 있다. 출판사마다 인상률은 차이가 있지만 중1 영어 자습서의 경우 금성출판사는 전년도 대비 81.3%포인트, 두산동아는 전년도 대비 77.8%포인트 각각 올랐다. 중1 수학 자습서는 100%포인트 이상 인상된 것도 있다. 고1 영어·수학 자습서 쪽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인상률이 40~80%대에 이른다.
가격이 올라가며 두드러지는 외형상의 최대 특징은 늘어난 분량이다. 정가 3만3000원짜리 천재교육 중1 영어 자습서는 800여쪽에 달한다. 성인이 한 손으로 들어올리기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겁다.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1 영어의 가장 큰 변화는 실용 영어가 강조된 것. 이에 따라 “교과서도 본문 위주의 텍스트북(textbook)과 활동 위주의 액티비티(activity)로 구분되며 책 분량이 늘어났다”는 게 출판사 측 설명이다. 분책을 염두에 둔 듯 이등분 지점을 쪼개기 쉽게 만들어놓은 후 그 자리에 학습자료를 담은 CD도 첨부했다. 다른 출판사가 만든 자습서의 구성도 대동소이하다.
참고서값 인상 논란과 관련, 학부모단체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이하 ‘학사모’)’은 지난 3월 12일 오전 광화문 학사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최미숙 학사모 상임대표는 현행 교과서와 참고서 체계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학생에게 참고서나 자습서, 문제집은 일반 소비재가 아니라 필수 품목입니다. 검인정 교과 체제 때문에 지금은 오로지 교과서를 만든 출판사만이 자습서를 만들 수 있게 돼 있어요. 학교에서 특정 출판사 교과서를 채택했다면 학생은 그 출판사 저자가 만든 자습서밖에 살 수 없는 거지요. 자습서 시장이 이렇게 독점 구조인 상황에서 교육과정 개편을 이유로 값을 두 배 가까이 올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