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동안 미(美) 정부와 싸워 난민 입국시킨 로스쿨 학생들
신용관 기자 qq@chosun.com
치열한 법정
브란트 골드스타인 지음|홍승기 옮김| 청림출판|468쪽|2만5000원
"그들은 법무부에 싸움을 걸겠다는 것이었다. 법무부로 말하면, 수천명의 법률가와 엄청난 자료를 확보한 채 단 한 명의 막강한 고객, 부시 행정부에게 봉사하는 소송기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소송은 대통령의 외교정책, 공해(公海)에서 해안경비대 주요 작전의 법적 성격, 1500마일 떨어진 해군기지의 난민 수용소의 법적 지위를 쟁점으로 한 것이었다."
《치열한 법정》(원제 Storming the Court)은 고홍주(55·미국명 해럴드 고) 예일대 로스쿨 교수와 예일대 로스쿨 학생들이 1991~92년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아이티 난민의 강제송환 및 관타나모 구금 정책에 항의하여 벌였던 드라마 같은 법정 실화를 다룬 논픽션이다. 난민 정책을 놓고 정부를 상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벌인 고홍주 교수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국무부 인권차관보를 지냈고, 이번 오바마 조각(組閣) 때 국무부 법률고문에 임명된 인물이다.
- 1991~92년 고홍주 예일대 로스쿨 교수와 학생들은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아이티 난민의 강제송환 등에 항의하는 법정 다툼을 벌여, 아이티인 310명을 미국에 입국시켰다. 한 지식인의 대의(大義)를 향한 열정과 학생들의 봉사정신이 큰 결실을 거둔 것이다. 사진은 미국 시민들이 대법원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모습./블룸버그
북미 카리브해에 위치한 아이티는 1인당 국민소득이 480달러에 불과하고, 900만 인구의 8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는 중남미의 대표적 후진국이다. 200년 역사에 유혈쿠데타가 30차례 넘게 일어날 정도로 정정(政情)도 불안하다. 그래서 아이티인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미국 입국을 시도했으나, 1981~1991년 난민자 2만3000명 가운데 미국이 받아준 건 28명에 불과했다.
고홍주 교수가 이끈 소송은 18개월 동안 학생들과 변호사 등 80여명이 총 2만 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하며 정부를 상대로 항의를 한 결과, 아이티인 310명이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애초 무모한 소송이었다. "원고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의 수만 하더라도 수천명이 될 것인데, 그들 잠재적 원고들과 연락도 불가능할 것이거니와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일을 훨씬 더 복잡하게 할 것이 분명했다." 고 교수는 "평생 변호사를 하더라도 이렇게 복잡한 사건을 맡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책의 저자는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작가로 이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고홍주 교수와 예일대 로스쿨 학생들, 관타나모에 억류됐던 아이티 난민들, 정부측 관료들을 1999년 3월부터 2005년 2월 사이에 걸쳐 200명 넘게 인터뷰했다. 고 교수와 27회, 40여명의 학생 중에는 35회 만난 경우도 있었다. 객관성을 위해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심리묘사는 변론조서·증언 녹취서·신문기사·TV 방송 원고·기타 인쇄물에서 직접 따오거나 참여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얻어진 것에 근거했다. 책 자체가 프로정신의 승리다.
다음은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의 하나. "그의 세계관으로는 예일대 로스쿨처럼 우수한 학교의 재능 있는 학생들은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에게 봉사할 의무가 있었다. 아이티 난민만큼 -터키의 고문 피해자들, 티베트의 종교적 난민들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명석한 학생들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가장 낮았다. 고 교수는 예일대가 총잡이(hired gun)나 양성하는 다른 로스쿨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봉사를 위해 공부하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도덕적 목표를 가진 로스쿨을 상상했다."
여러모로, 관타나모 기지를 소재로 한 영화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1992)을 떠올리게 만드는 논픽션이다. 그러나 톰 크루즈와 잭 니콜슨의 불꽃 연기 대결이 볼 만한 롭 라이너 감독의 영화가 미군들 사이의 인권과 개인의 도덕성을 문제 삼았던 '창작'인 반면, 이 책은 수만 명의 목숨이 걸린 '실화'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법적 투쟁 과정을 세세히 담은 글이라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딱딱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세상사 모든 갈등은 논리적·합법적·이성적 절차를 거쳐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는 독자에게는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보다 훨씬 흥미진진할 것이다. 한 지식인의 대의(大義)를 향한 열정과 헌신을 지켜보는 것도 오랜만의 설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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