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0여년의 준비
끝에 기존 어문계열 학과를 통합한 '통번역대학'이 새로 탄생한 것. 한층 강화
된 전공 커리큘럼으로 글로벌 인재 양성에 나선 것이다. 전태현 학장은 "미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동남아와 아랍, 중남미 등 세계 각 지역의 언어와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고 힘주어 말했다.
◆1학년부터 집중교육, 전용실습실 등 시설 강화
통번역대학에는 총 9개 전공과정이 있다. 영어·독일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중
국어·일본어·아랍어·태국어·말레이인도네시아어 통번역학과 등이다. 각 학과는
지난해 통번역대학으로 탈바꿈하며 많은 점을 바꿨다. 우선 전공 이수학점을
최소 70학점(이중전공 선택 시)에서 83학점(전공 심화과정 선택 시)으로 대폭
늘렸다. 졸업학점 또한 다른 어문계열 단과대학들의 134학점보다 높은 150학
점에 이른다.
전태현 학장은 "언어능력에 숙달되려면 기본적으로 엄청난 시간투자가 필요하
다"며 "게다가 뛰어난 언어실력에 현지 문화·역사 등 지역학까지 익히려면 기존
의 전공학점으로 부족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또 1~2학년 전공 커리큘럼을 대폭 강화해 1학년부터 집중 교육한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 전공의 경우 기존에 개설했던 문법, 작문, 강독, 회화 등 전통적인 교
과목에 덧붙여 '스페인어 구술평가' '시청각 스페인어' '스페인어 시사토론' 등
과 같은 듣고 말하기 과목이 추가됐다. 시험도 한 학기에 4번씩 치르는 과목이
대부분이다. 자연히 학생들의 실력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1학년 학생들도 한
학기 만에 언어 실력이 좋아진 자신의 모습에 놀랄 정도다. 스페인어 전공 1학
년 이정도(19)군은 "영어는 고교 때까지 배웠어도 미국인을 만나면 긴장되지만
, 스페인어는 길에서 원어민을 만나면 자연스레 대화할 정도"라고 전했다.
학생들은 1학년 1학기 첫 수업부터 강도 높은 원어 강의를 받는다. 전공과목의
경우 대개 1~2학년은 50%가량, 3학년부터는 100% 원어 강의가 진행된다. 일
본어 전공 2학년 안소라(20)씨는 "첫 수업부터 원어 강의를 받아 당황하기도 했
지만, 신기하게도 1학기 중반이 되니 일본어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며 "타 학
과 친구들에게 '이게 정말 대학생 시간표냐'는 질문을 들을 만큼 많은 수업을 듣
지만, 그만큼 실력이 좋아졌다는 생각에 만족스럽다"고 했다.
달라진 커리큘럼에 따라 강의시설도 최첨단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대학 건물 내
에 통번역대학 전용실습실 구역인 '글로벌 코리더'를 신설했다. 일차로 동시통
역실습실을 포함한 총 4개의 전용실습실을 완공했으며 6개의 실습실을 추가로
공사 중이다. 전용실습실엔 전 좌석 개인 컴퓨터가 장착돼 소그룹 수업은 물론
교수와 학생의 1대 1 쌍방향 수업이 가능하다. 또 실시간 영상촬영 장비를 갖춰
학생들의 발음과 입 모양을 즉석에서 교정해 줄 수 있고, 전 수업과정을 녹화하
고 학생들에게 첨부파일로 발송해 집에서 복습할 수 있게 했다.
◆교수 1인당 학생 수 15명, 질 높은 수업 이뤄져
교수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스페인어 전공 2학년 한철우(20)씨는 "과목마다 홈페
이지가 있어 학생이 질문을 올리면 시간에 관계없이 교수님이 상세히 답을 해주
시거나 학생끼리 연구할 과제목록을 주시곤 한다"고 했다. 방학 중에도 쉼 없이
집중특강 교육을 연다. 말레이·인도네시아어 전공 2학년 안예원(20)씨는 지난 여
름방학에도 2주간 교내 연수원에서 머물며 원어민 교수로부터 특강을 들었다.
안씨는 "하루 12시간씩 집중교육을 받으며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여름에
학교 지원으로 인도네시아에도 다녀왔는데, 현지인들과 대화하는데 막힘이 없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1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수업의 질도 매우 높다. 중국어
전공 2학년 서지은(20)씨는 "수동적으로 듣기만 수업이 없다"며 "교수님과 상호
작용 하는 수업이 가능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학년 당 학생 수
가 많지 않아 학생 간 친밀도가 높고, 협력이 잘 이뤄지는 점도 장점이다. 태국어
전공 2학년 김희정(20)씨는 "태국어는 소수어라 전공자가 많지 않지만, 태국어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 많다는 점에 끌렸다"며 "소수어 전공이기 때문에 학과 동기,
선후배들과 교류가 잘 이뤄져 83학번 선배들과도 연락을 주고받고 취업정보를
전해 듣는 정도"라고 했다.
통번역대학은 입학 후가 더 힘든 대학이다. 학사관리와 졸업시험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졸업시험은 플렉스(FLEX) 시험으로 치러진다. 통번역대학 학생들은
플렉스 시험에서 듣기·말하기·읽기·쓰기 영역에 모두 응시하고, 해당 지역의 인
문·사회·과학 관련 전공선택 중 3과목에 응시해야 한다.
대학 측은 향후 한국외대 송도캠퍼스, 영어마을, 잉글리시 존 등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할 예정이다. 송도캠퍼스가 완공될 경우 모든 통번역대학 신입
생은 송도캠퍼스에서 한 학기 동안 집중 언어교육을 받게 할 계획이다. 용인캠퍼
스에 입주가 확정된 용인영어마을에서 해외 어학연수에 버금가는 교육프로그램
을 시행하며 교내에 마련된 잉글리시 존 프로그램 참여를 장려한다는 계획도 세
웠다.
통번역대학이 출범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면서 '통번역대학=외국어 특수교육기
관'이라는 특화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전 학장은 "세계를 누비며 일하고 싶은 꿈
, 다양한 세계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진 학생이라면 통번역대학의 문을 두드리라
"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