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핀란드에서 선생님이 되려면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10. 4. 3. 22:17

 

[핀란드 교육] 핀란드에서 선생님이 되려면
5년 걸쳐 석사학위 이수·적성테스트 통과해야
교장도 직접 수업… 교사 돕기 위해 잡무 맡아
주간조선 [2098호] 2010.03.29
핀란드에선 선생님이 최고의 인기 직업이다. 의사나 변호사보다 인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핀란드에서 선생님이 되기란 한국에서 판·검사가 되는 것만큼 힘들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실력을 쌓아야 가르침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에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매번 여러 가지 교재를 가져와 학생들에게 소개해준다. 때로 잡지를 교재로 삼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드물지 않다. 시간이 있으면 학생 전원을 박물관이나 오페라 극장에 데려가기도 한다. 그 때문에 당연히 수업 전엔 오랜 시간을 들여 수업내용을 준비한다. 미디어와 도서관은 에베 선생님의 수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지난해 5월 출간된 책 ‘핀란드 공부법’은 고2 때 국제교육 교류단체 AFS를 통해 약 1년간 핀란드 유학길에 오른 일본 여학생 지쓰카와 마유가 쓴 ‘핀란드 교육 체험 수기’다. 에베는 그가 머물렀던 헬싱키 소재 공립 헤르토니에미고교의 국어교사. 저자는 책 곳곳에 ‘에베 선생님’에 얽힌 추억을 기록해놓았다.

▲ 핀란드 바사시 한 학교의 수업 모습.
학생에게 많은 걸 요구하지만 자신은 그 수십 배를 준비하는 사람, 늘 엄청난 과제를 내주지만 채점 대신 예쁜 글씨로 감상을 적어주는 사람, 틈날 때마다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 지쓰카와는 “핀란드엔 선생님이 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다. 월급은 많지 않지만 학교생활을 통해 교사의 권위와 지위가 어떤지 알고 있어 동경하게 되는 것 같다”고 썼다.

의사·변호사보다 인기 직업

핀란드에서 교사가 되려면 초·중·고교 할 것 없이 학사 3년·석사 2년 등 총 5년에 걸쳐 석사학위(교육학·160학점)를 이수해야 한다. 이는 1971년 통과된 교원교육법에 따른 것으로 40년째 유지되고 있다. 교사 양성을 담당하는 11개 대학에 입학하려면 대입자격시험 성적과 고교 내신성적 외에 해당 대학이 주관하는 교직 적성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평균 입학 경쟁률은 10 대 1 정도로 매우 높다. 핀란드에서 교직의 초임 연봉은 1만7000폰드(3000만원) 정도로 그리 높지 않지만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 매년 의사나 변호사, 언론인을 앞선다.

교원자격증은 학급담임면허(초등학교), 교과면허(중고교), 특별지원교사면허, 양호교사면허 등으로 구분된다. 각각의 교사들은 수업의 성격이나 학생의 학습 수준 차이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돼 맞춤형 개별학습이 가능하도록 했다. 무(無)학년제의 유연한 커리큘럼을 소화하기 위해 2~3명이 하나의 수업에 배치되는 팀 티칭(Team Teaching) 방식도 수시로 도입된다. 연고지 배치를 원칙으로 하는 교사 수급방식도 교사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높이는 하나의 요인이다. 권대봉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고려대 교육학과 교수)은 “연고지 우선배치방식은 ‘고향에서 잘못 가르치면 명예가 실추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과 애향심을 자극해 자연스레 교사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키는 효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핀란드가 교사에게 석사 학위를 요구하는 이유는 핀란드 교사양성체계의 지향점이 ‘연구 중심 교사교육(research-based teaching)’에 있기 때문이다. 교사 개개인을 독립적 교육 학자로 육성해 스스로 개척한 교육 이론을 학교 현장에 활용하도록 하자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학위 과정의 10%(6개월)는 교육 실습에 할당된다.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교육이 사회적으로 귀하고 좋은 일이란 체험을 통해 우수한 학생들이 다시 교직을 선택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야말로 핀란드 교육의 큰 밑천”이라고 분석했다.

교사보다 더 고달픈 교장

핀란드에선 교장도 수업을 한다. 지난 2007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OECD 학교장 리더십 개선 국제비교연구’에 따르면 핀란드 교장은 1주일에 최소 2시간, 최대 22시간의 수업 책임이 있으며 개별 학교의 사정에 따라 수업 시간 수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임기가 따로 없어 사실상 종신제로 운영되지만 전통적으로 학교장을 선발할 땐 해당 학교 교사진의 의견이 반영된다. 막강한 권한을 보장하는 대신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은 구조다.

‘핀란드 교육혁명’은 지난해 1월 8박9일 일정으로 핀란드와 스웨덴 등의 교육 현장을 둘러본 ‘2009 교육희망찾기 북유럽 교육탐방단’ 39명의 기록을 모아 올 1월 출간된 책이다. 책에서 탐방단의 일원이었던 서길원 경기 성남 보평초등 교장(당시 경기 광주 번천초등 교사)은 “핀란드 학교의 교장실은 귀퉁이에 있거나 아주 자그마했고 학교를 소개하러 나선 것도 모두 교장들이었다”며 “(자신 역시) 수석교사이면서도 교사들의 지원자로서 역할을 철저히 했다”고 말했다. 핀란드에서 교장의 역할은 교사들이 잡무 스트레스 없이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장이 된 후에도 자기 계발은 계속된다.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리더십 함양에 초점이 맞춰진다. 핀란드 교장협의회는 2006년 핀란드 교육부와 함께 일명 ‘프로 렉시(Pro Rexi) 2015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2015년까지 미래사회에 걸맞은 학교장 리더십과 교육모델을 개발하자는 게 목표였다. 이런 노력은 국제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OECD 학교 지도자 향상(OECD’s Improving School Leadership) 2007년 보고서는 “핀란드는 학교 리더십과 학교 지도자 양성 모형에서 많은 강점을 갖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수 인력 뒤엔 우수 제도가

핀란드 교육의 특징은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되, 능력에 따른 개별학습을 지향한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핀란드 교육제도는 최적의 상태에서 이런 특징을 구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합한 형태로 운영되는 통합학교제도가 대표적 예다. 핀란드는 평균 주민 수 1만2000명 규모의 지방자치단체 432개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지자체가 공립학교와 직업교육기관을 관할한다.

규모와 운영방식 등에 관한 중앙정부의 규제가 없기 때문에 통합학교는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를 띤다. 특히 소규모 학교가 많다. 핀란드 교장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2007년 현재 핀란드 통합학교의 3분의 1(약 1100개)은 50명 미만의 학생으로 운영된다. 몸집이 가볍고 의사결정 과정이 단순해 얼마든지 혁신적 학사운영 실험이 가능한 구조다.

핀란드 교육이 오늘날과 같은 체계를 갖춘 건 1994년부터 시작된 3기 교육개혁 이후부터다. 핀란드는 1970년부터 10년 안팎의 주기로 꾸준히 교육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짧은 역사의 소국(小國)이 갖는 한계를 교육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국가적 의지가 바탕이 됐다. 3기 교육개혁의 두 축은 ‘지방분권의 가속화’와 ‘학교자치 강화’다. 관 주도의 일방적 상명하달식 개혁이 아니라 20년 이상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거쳐 완성된, ‘뿌리가 탄탄한’ 개혁이다.

‘핀란드 공부혁명’의 저자 박재원 비상교육공부연구소장은 “핀란드 교육의 핵심은 학생 개개인의 잠재성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된 양질의 교사진과 시스템”이라며 “학생이 지닌 가능성은 한국이든 핀란드든 다르지 않으며, 우리나라 교사들도 교직에 대한 인식을 그저 ‘편한 직장’이 아니라 ‘보람 있는 학습도우미’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