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사랑

외규장각 도서 반환 기여 ‘직지 대모(代母)’ 박병선 박사 별세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11. 11. 23. 18:04

 

외규장각 도서 반환 기여 ‘직지 대모(代母)’ 박병선 박사 별세

조선일보 김형원 기자

입력 : 2011.11.23 07:14 | 수정 : 2011.11.23 14:31

 

1866년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크게 기여했던 재불(在佛) 역사학자 박병선(83) 박사가 별세했다. 박 박사는 작년 경기도 수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고 파리로 돌아가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라는 책 저술 준비를 해왔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됐다.
 
23일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은 “오전 6시 40분쯤(한국시각) 프랑스 파리의 잔 가르니에 병원에서 박 박사가 별세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파리에 있는 한국 문화원에 마련됐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유족과 장례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박 박사는 직지심체요절이 1455년에 나온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빠른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해서 ‘직지 대모(代母)’로 불렸다.
 
그는 1967년부터 13년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면서 3000만종이 넘는 장서를 뒤져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과 외규장각 도서 297권을 찾아내 주불 한국대사관에 알렸다. 프랑스 상사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박씨는 뜻을 꺾는 대신 사표를 냈다.
 
이후 매일 도서관에 찾아가 ‘개인’ 자격으로 외규장각 도서 열람을 신청했다. 냉대를 견디면서도 그는 “오늘도 안 됩니까?(Aujourd'hui, on ne peut pas?)”라며 열람신청을 했고, 도서관 직원이 거절할 때마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대답했다. 한 달 만에 간신히 열람 허가가 떨어지기도 했다. 파리의 한인들 사이에서는 박씨가 밥도 안 먹고 외규장각 도서를 베끼고 있다는 소식이 파다했다.
 
지난 3월 외규장각 도서가 ‘대여’ 형식으로 145년 만에 고국에 돌아오자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일 것 같다”며 감격해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의 의무는 아직도 남아 있다”며 “‘대여’라는 말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손에 손을 잡고 장기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박 박사는 서울에서 태어나 진명여고와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이후 1955년 홀로 프랑스에 건너가 소르본대학과 프랑스 고등교육원에서 역사학과 종교학으로 각각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본지와의 인터뷰 당시 박 박사는 많이 야윈 상태였다. 의료진으로부터 직장암 4기를 선고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또렷했다. 27살에 한국을 떠난 박씨는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로 “기운을 차리고 파리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 프랑스 음식을 먹는 것, 병인양요에 대한 책을 마치는 것”을 꼽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직원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규장각 도서를 펼쳐놓은 박씨를 보고 ‘파란 책에 파묻힌 여자(La femme cache derrire le livre bleu)’라고 했다. 외규장각 도서 표지가 파란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