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

누린내 나는 뽀얀 곰탕은 이제 그만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12. 11. 4. 21:23

누린내 나는 뽀얀 곰탕은 이제 그만

 

푸드조선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
2012.08.31 09:12

 

육개장, 갈비탕과 함께 곰탕은 아직도 우리나라 탕반 음식의 중심에 있다. 전통적으로 곰탕은 보양식의 이미지가 강하다. 회복기 환자나 몸이 허할 때 소고기 ‘진국’을 내서 먹으면 금방 힘이 솟을 것 같다. 이런 기대감은 노년층일수록 강하다. 그래서 노년층을 중심으로 사골은 뽀얗게 우러날 때까지 오래 끓여야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 끓이면 인(p)의 용출량이 증가하면서 칼슘의 흡수를 방해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무턱대고 장시간 푹 고아낸 ‘진국’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외식업계에도 이를 반영한 듯 곰탕 국물의 탁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다.

‘곰탱이’ 같은 곰탕은 먹기 싫어

곰탕은 역시 노년층의 음식이라는 인상을 준다. ‘쌀밥에 고깃국’이 꿈의 식단이었던 시절, 곰탕은 배고팠던 이들의 위장과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젊어서 식생활의 결핍 체험을 했던 노년층이 곰탕에 애정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다 보니 곰탕은 노인 취향 음식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곰탕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대학로 점심시간, 곰탕집인 ‘미령곰탕이’에 20~30대 고객으로 1층과 2층 객실이 금방 빼곡하게 찼다. 이들은 인근 회사와 대학병원 직원들과 학생들이다. 고객 연령 구성만으로 보면 피자집이나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어울린다. 결코 곰탕집 고객 연령층이라고 믿기 어렵다.

인근 해운회사에 근무하는 20대 여직원은 ‘꿉꿉하고 누린내가 나는 옛날식 곰탕은 먹기 부담스러웠는데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이 깔끔해서 좋다’고 한다.

이 집 주인장 정흥순 씨는 육가공 사업과 외식사업을 경영했다. 고기의 맛과 영양을 최고로 발현시키는 조리법은 늘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고민거리였다. 온갖 음식들이 많지만 정작 음식을 만들어 파는 자신의 입맛에도 좋은 음식은 드물었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너무 맛있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오히려 음식을 망친 게 아닌가 싶었다. 정씨는 곰탕집을 열고 육수를 끓일 때, 좋은 소금 이외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기로 했다.

“무엇인가를 더해서 맛을 내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덜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음식, 좋다는 재료는 무척 많이 넣는데 정작 고객은 좋은 음식이라고 인정을 하지 않지요.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부터 더하기보다는 덜어내는 음식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국내산 한우 신선육으로 맑은 국물 내

곰탕국물은 한우 사골을 10~12시간 고아낸 것이다. 이 국물을 기본 육수로 쓴다. 고아낸 국물에 한우 양지와 사태를 넣고 2시간 30분 정도 삶은 고기를 수육으로 쓴다.
지정 경매인으로부터 매일 아침마다 도축장에서 잡은 소고기를 매입한다. 하루 사용할 분량인 400~450인분에 해당하는 수육만 만들고 다 팔리면 조기에 문을 닫는다. 보통 오전 9시 30분에 문을 열어서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다. 그러나 그날 마련한 수육이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주인장 정씨가 ‘오늘 쓰다 남은 고기를 내일로 미뤄 쓰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다 보니 고기 풍미가 늘 일정하고 신선함을 유지한다.

국물에 기름기가 거의 없다. 색깔도 투명해 속이 들여다 보인다. 오래 끓여 진국이라는 뿌연 곰국 국물들과는 전혀 다르다. 맑은 국물인데 오히려 소고기의 맛과 풍미는 훨씬 진하다. 국물을 먹고 난 뒤에도 뒷맛이 개운하고 시원하다. 고춧가루와 흑임자로 만든 소스를 살짝 뿌려주는데 담백한 맛을 더해준다. 곰탕 그릇에 들어간 수육도 그 양이 적지 않다. 놋그릇에 곰탕을 담고 놋수저로 떠먹는다. 국물 온도가 잘 유지되어 탕 맛이 더 그윽하게 느껴진다.

일반 곰탕인 한우곰탕(7000원), 수육의 양을 좀 더 넉넉히 담은 특한우곰탕(9000원), 전복과 낙지를 넣어 보양식 개념으로 만든 보양곰탕(1만3000원)이 있다.

음식점 주인들도 탐내는 ‘평양식 김치’와 ‘탕탕이’

이 집의 곰탕 맛을 배가시켜주는 게 김치다. 이 김치는 연로한 북한음식 전문가에게 배워둔 것이라고 한다. 국내산 배추에 태양초를 주재료로 만들었다. 젓갈을 넣지 않아 텁텁하지 않고 맛이 담백하다. 이른바 ‘평양식 김치’라고 한다. 보통 음식점 김치는 설탕을 많이 넣어 단맛이 너무 강렬하다. 그러나 평양식 김치는 사과나 배 등 과일을 갈아 넣어 단 맛이 그다지 과하지 않다. 얇게 썰어 소금에 절였던 속박이 무가 김치에 섞여 있다. 씹을수록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난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가 없는 온전한 김치 맛이다. 먹고 나면 살짝 매콤하면서도 미나리 향이 여운처럼 남는다. 김치 맛이 뛰어나 개인적으로 구매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유수의 국내 음식점 주인장들도 이 김치를 탐낸다고 한다.

탕탕이(3만5000원, 5만원)는 산낙지에 한우 채끝살로 만든 육회를 섞어 비벼먹는 요리다. 저녁시간에 곰탕과 함께 술 한잔 곁들일 때 좋은 안줏감이다. 산낙지를 곱게 다져 넣고, 육회는 고추장 양념과 간장 양념으로 만든 것 두 가지다. 가늘게 채 썬 배, 계란 노른자와 함께 잘 비벼서 먹는다. 씹으면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저작감이 입 안 가득 느껴진다. 아삭하고 달콤하게 씹히는 배 맛도 개운하다.

산낙지에 간장 고추장 두 가지 베이스의 육회를 결합한 메뉴는 시중에서 본 적이 없다. 산낙지 따로 육회 따로 먹는 맛도 좋지만 함께 비벼먹는 맛도 새롭고 신선했다. ‘기존 음식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 것인가’. 이것이 앞으로 잘 나가는 식당 주인들의 새로운 화두가 될 것 같다.

<미령곰탕이> 서울 종로구 연건동, 02-741-9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