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모아 둔 영화관 포인트로 라디오 스타를 보았다. 나는 영화를 볼 때 돈을 내고 구입할 것인지 적립해 둔 포인트로 볼 것인지 미리 생각해보는 습관이 있다. '쿠폰맘'이라 스스로를 부르며 남달리 포인트와 쿠폰 적립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나로서는 내가 모아둔 이 정성들을 어떻게 쓸 것인가 또한 생각거리가 되는 것이다. 사는 것이 그렇다. 난 원래 좀 머리에 쥐나고 복잡한 것을 즐기는 편이라 쉬운 길을 놔두고 취미 삼아 어려운 길을 가는 타입이다(생각 부분임!!). 물론 매사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그렇게 살고 있다. 영화티켓을 구입하는 경우에도 작은 원칙을 두고 있다. 한국영화는 돈을 주고 본다. 이런 경우 큰 아이는 더빙된 외화는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 더빙된 것은 적립금으로 본다. 왜냐구? 어차피 이익금은 로얄타로 나가기 때문이다. 국수주의자? 그렇지는 않다. 단지 내가 사랑하는 우리 나라 영화의 발전에 조금 기여하고픈 마음에서 시작된 소박한 결정이다. 그런데 '라디오 스타'를 적립금으로 본 이유는 가끔 나에게 생기는 경제적 궁핍함 때문이다.
아무튼 '라디오 스타'를 보기까지 나를 제외한 식구들의 의견이 달라 무지 고생했다. 예를 들어 큰 아이와 아빠는 각자 보고 싶은 영화가 달랐고 자기가 원하는 영화가 아니면 보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경우는 허다하다. 대책은 팀을 나누는 것인데 결국 아빠의 승리!! 온 가족이 같은 영화를 보기 원했던 아빠의 강력한 바램이 이루어졌다. '라디오 스타'를 보기로 했다. 재미있는 영화였다. 다 본 후 아빠는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강조를 몇 번씩이나 했다. 앞으로 얼마간 영화선택권은 아빠에게 갈 듯하다. 엄마는 조용히 있다가 다들 일하러 가고 학교가면 적립금으로 보고싶은 영화 조용히 혼자 본다. 실은 내가 제일 실속파다.
라디오에 귀 기울이던 시절이 떠올랐다. 고교 1학년,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던 지방 소녀는 서울 육촌집에 놀러갔다. 동갑내기인 육촌이 FM듣냐고 묻는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왜 한밤중에 음악 듣냐?","공부 안 하니?", "음악들으며 공부되냐?" "별밤?" 자! 이쯤이면 얼마나 딱딱한 대화가 오고 갔는지 알만하지? 이틀 동안 분위기있게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그 조용한 밤에 음악이 주는 메시지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지방에 내려와 그 FM방송을 들으려고 주파수 맞추던 생각이 난다. 그때 지방에는 FM방송이 되지 않았나 보다. 결국 분위기있는 그 음악프로 듣는데 실패하고 꼭 서울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결심까지하게 된다.
이 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는 행운을 얻은 나는 늦은 밤 귀가길에 버스에서 라디오를 듣게 되고 한적한 주말에 드라이브 삼아 타는 버스 속에서도 라디오를 듣게 된다. '별밤지기 이문세'에 열광하고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지금도 집에 오면 TV보느라, 인터넷하느라 라디오를 켜지 않지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아이들과 학원에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버스와 택시에서 라디오를 듣는다.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는 사람들의 기억을 자극하는 영화다. 그리고 따스한 마음을 느끼게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나게 한다. 그냥 세월의 흐름에 몸을 내던진 우리에게 과거를 돌아보며 웃게 만드는 영화다. (정작 '라디오 스타' 영화 얘기는 못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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