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4.22 21:24 / 수정 : 2007.04.22 22:35
- 김대중·고문
- 미국 특파원으로 있던 70년대 한국에서 어렵사리 이주해온 사람들에게 “왜 이민을 왔느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IMF나 IBRD 같은 국제기구가 한국의 대단한 교육열을 경제 성장의 동인(動因)으로 꼽았을 정도로 한국의 부모들은 국내건 해외건 온통 자녀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다시피 했다. ‘우리가 못 배우고 못산 한(恨)을 너희가 많이 배우고 잘살아서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변에서 목격한 결과는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녀들을 미국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노동 이민자의 대부분이 영어를 할 줄 몰라 선생을 만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해도 먹고 살기에 바빠 PTA(학부모회의)에 참석할 시간을 내지도 못했다. 자녀들은 부모와 따로 놀고 가정에서 벗어나 밖으로 돌았다. 그들이 사는 지역은 서민층 동네여서 그 지역의 학교는 당연히 우범 요인이 많았고 교육 환경이 좋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많은 이민자의 자녀들은 그렇게 자의식(自意識) 없이, 존재 의식 없이, 공동체 의식 없이 그 사회의 마이너스 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민 와서 아이들을 망치는 결과를 안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버지니아공대에서 32명을 권총으로 쏘아 죽인 조승희씨의 경우는 개인적인 정신질환이 원인이기도 했겠지만 크게 봐서 노동 이민자의 자녀들이 밟았던 부정적 길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씨가 올려다 본 ‘세상’은 기껏 벤츠였고 보드카와 코냑이었고 다이아몬드였다. 이 세상에 대학에 못간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그는 몰랐던 셈이다. 이것이 그의 ‘인성(人性) 교육’의 한계였을 것이며 그 한계가 결국 총구를 통해 터져 나왔던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빈부의 차이가 빚어내는 냉엄한 현실을 목도한다.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낸 여러 한인 1.5~2세들에 자긍심을 느끼는 순간에도 미국에서는 나락에 떨어지는 또 다른 ‘그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미국에서 25년간 ‘제2 언어로서의 영어’를 전담해온 김유미 선생(‘엄마가 달라져야 아이들이 성공한다’의 저자)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4월 4일자)에서 했던 충고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엄마들, 영어만 일찍 가르치면 뭣 합니까? 아이들의 문화적 소양과 매너는 빵점인걸요. 그런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갈 수도 없거니와 설혹 졸업한다 해도 글로벌 기업에서 뽑아주지 않습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서류전형 통과자들을 1주일씩 호텔에 투숙시키면서 함께 식사하고 운동경기 관람하고 오페라와 연극 감상하고 나이트클럽에서 어울리면서 그 사람의 총체적 문화 수준을 체크합니다”.
이제 대학이 인성 교육의 도장이라는 말은 고전이 된 지 오래다. 대학은 그 양과 질에 있어 다분히 기업화됐다. 대학은 고등 학문을 가르치고 밖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구에 불과할 뿐 ‘사람’을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그 점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평준화에만 골몰한 나머지 모든 고등교육기관을 무슨 ‘양성소’처럼 나열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대학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애당초 기대할 수조차 없다.
인성(人性)은 가정과 초등 교육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배우고, 친구들에게서 배우고, 선생에게서 배운다. 우리 주위를 보면 가족을 믿고 사랑하며, 어른들을 공경하고 예의를 지키며, 자신에게 정직하고 엄격하며, 친구와 이웃을 배려하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과 매너를 가르치는 가정 교육이 수학·논술 등 과외 교육과 학원 교육에 현저히 밀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자동차 운전에서, 공연장에서, 공공장소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도 양보할 줄 모르는 ‘자기들만의 청소년’들을 너무나 쉽게 본다. 한 예를 들어 식탁에서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식사예절 한 가지만이라도 가르치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나온 지 꽤 된 책이지만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로버트 풀검)는 말이 새삼스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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