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잡기

먹고 보고 노는 ‘공간’을 판다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7. 11. 7. 21:52

쇼핑족이여, 이젠 ‘몰링’하라

“물건만 팔아선 고객 못잡아…

먹고 보고 노는 ‘공간’을 판다”


롯데·신세계 등 대형 유통업체들 美·홍콩式 ‘복합쇼핑몰’ 짓기 경쟁
 
신동흔 기자 dhshin@chosun.com 
 

주부 장성아(30·서울 홍은동)씨는 최근 주말을 맞아 남편·아이들과 함께 서울 용산의 아이파크몰을 다녀왔다. 12시쯤 CGV에서 영화를 한편 보고→백화점(오후 3시)→패밀리 레스토랑(5시40분)→이마트(7시)를 거쳐 나오니 저녁 8시30분. 20만원 정도를 썼다. 장씨는 “장소가 넓어 아이들도 좋아하고 주말 하루를 보내기엔 딱”이라며 “차를 몰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몰링(malling)’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단순히 물건만 구입하고 돌아오는 형태의 쇼핑이 아니라, 가족들이 여유롭게 쇼핑과 외식(外食), 공연·영화관람·산책 등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대형 복합쇼핑몰(mall)과 함께 나타난 현상. 롯데·현대·신세계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요즘 서울과 수도권·부산을 중심으로 연면적 10만~30만㎡(약 3만~9만평)의 대형복합쇼핑몰 짓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규 개발 중인 곳만 줄잡아 10개 이상. 대부분 2010~2011년 사이 완공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 3~4년 뒤면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몰 오브 아메리카’나 홍콩의 ‘하버시티’처럼 쇼핑과 레저 공간이 합쳐진 대형복합몰에서 ‘몰링’을 즐기는 모습이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 日, 리조트같은 쇼핑몰…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복합쇼핑몰‘커낼시티(canal city)’. 백화점과 의류전문점들이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시원하게 물이 흐르는 게 인상적이다.

몰링은 가족단위 쇼핑객이 늘고 주 5일제의 영향으로 주말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해지면서 나타난 현상. 정병권 신세계 부장은 “복합쇼핑몰은 가족이나 친구 연인끼리 ‘숍 투게더(shop together)’ ‘이트(eat) 투게더’ ‘플레이(play) 투게더’를 추구하는 공간”이라며 “할인점 이후 신(新)업태를 찾아온 유통업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복합쇼핑몰은 백화점과 호텔·지하쇼핑공간이 한데 모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2005년 문을 연 용산 아이파크몰도 백화점과 할인점·리테일숍·게임장·이벤트파크 등이 모여 있다. 일산 호수공원 인근 ‘라페스타’ 역시 놀거리와 쇼핑거리를 함께 제공하는 몰링 공간이다. 복합쇼핑몰은 고객의 발길을 잡는 데 있어선 이미 백화점업계를 따돌렸다. 고객들의 평균 주차 시간을 알아본 결과, 백화점만 있는 현대백화점 본점은 1시간 미만이 가장 많았고(41%), 명동상권과 영화관이 인접한 롯데백화점 본점은 2~3시간(70%)이 많았다. 반면 복합쇼핑몰 체류시간은 3시간30분~4시간으로 훨씬 오래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밀레니아몰’은 고객들이 산책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갖추고 있다.

몰링은 ‘공간’을 파는 개념이다. ‘쇼핑가(街)’를 뜻하는 몰의 의미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부를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아이파크몰의 내부 동선(動線)은 10㎞가 넘는다. 일반 백화점 1층 면적(3300㎡내외)의 10~15배 이상 넓은 3만3000㎡(1만평) 이상의 부지가 필요한 이유. 그래야 백화점 영화관 할인점 등의 다양한 시설을 들이고, 이 시설들을 연결하는 공간에 소규모 상점가를 조성할 수 있다.

복합쇼핑몰은 사람이 많이 몰려 쇼핑 공간의 가치가 높아지면, 쇼핑몰 자체가 광고·홍보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하루 평균 12만 명이 찾는 코엑스몰은 실내 곳곳에서 진행되는 홍보 이벤트와 광고판을 통한 수익만 연간 100억 원대로 추정된다. 코엑스몰 관계자는 “유동인구의 특징이 명확해 신제품 출시 기념 이벤트나 제품 테스트 등의 행사가 많다”고 말했다.

박정현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공간의 가치를 높여가는 ‘공간 연출 마케팅’을 추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주5일 근무제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여전히 부족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소비자들은 쇼핑과 외식, 영화 관람, 레저를 한곳에서 해결하는 ‘원스톱 토털 소비 공간’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몰링·malling

대형복합쇼핑몰에서 미팅·쇼핑·식사·오락을 한꺼번에 즐기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 ‘몰고어’(mall-goer·몰 이용객) ‘몰랫’(mall-rat·몰 안의 젊은이들) ‘몰리’(mallie·몰링을 즐기는 여성) 등의 파생어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