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나는 과외 대신 멘토링 한다”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7. 12. 10. 19:37
 “나는 과외 대신 멘토링 한다” -위클리 조선

문제 풀어주기보다 ‘공부하는 방법’ 가르쳐
학습부터 진로·인생 상담까지… 효과 알려지며 수요 급증
에듀플렉스·현대에듀·멘토&멘티 등 전문업체 속속 생겨
기존 학원도 강의 외에 서비스… 기업 컨설팅업체까지 가세

▲ 일러스트 박상철

서울대 외교학과 학생인 박사무엘씨는 아르바이트로 고3 학생 3명, 고2 학생 1명, 중1 학생 1명을 지도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학생을 맡았지만 시간을 많이 뺏기진 않는다. 과외가 아니라 바로 멘토링 아르바이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멘토로서 멘티가 된 학생을 지도한다. 그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당 2주에 1~2번만 방문해 공부에 대한 코치를 해준다.

박씨는 “학생이 학습 계획대로 공부를 했는지, 공부 내용에 어려운 점은 없는지,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점검하고 다음 공부 계획을 함께 세운다”며 “학생들이 부모에게 얘기할 수 없는 고민을 논의하고 진로에 대해 인생 선배로서 이야기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문할 때 말고도 학생과 문자나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격려를 하고 학습지도를 한다.

박씨가 이런 방식의 지도법을 생각하게 된 것은 신문에서 학습플래너라는 직업을 본 뒤부터이다. 국어·영어·수학 과목을 직접 가르치지 않고 학습에 대한 코치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일일이 가르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던 터였다. 어떤 학생은 스스로 알아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붙잡고 공부를 시키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출신 고교에 가서 선배로서 입시설명회를 할 때 학부모들로부터 “아이들에게 공부방법을 알려주고 선배로서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박씨는 지도방식을 멘토링으로 바꾸었다. 학부모들도 이런 방식에 만족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그에게 지도를 받으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인터넷 강의와 학원 강좌가 발달하면서 대학생 과외 아르바이트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었다. 다른 물가는 올랐어도 과외보수는 20년 전과 비슷하다. 철저하게 준비된 명강사의 강의를 인터넷 강좌에서 들을 수 있으므로 굳이 대학생에게 과외를 맡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박씨의 주변 동료 대학생들도 과외를 맡을 때 학습 내용에 대한 지도와 함께 멘토링을 해줄 것을 요구 받는 경우가 많다. 

학습 멘토링 혹은 매니지먼트는 학원가에서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학원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공부계획을 짜주고 학습방법·생활방식까지 체크해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학습 매니지먼트는 스스로 공부하는 자기주도적 학생을 만들기 위해 학습계획·인생목표·학습동기·고민상담에 이르는 전 영역을 관리해주는 서비스다.

‘영어 듣기 50문항, 수학 정석 10쪽 분량, 논술 참고서 독서, 오후 6시 매니저에게 체크’. 이것은 학습 매니지먼트 전문업체 에듀플렉스에서 학습 멘토링을 받는 고교 1학년 김모군의 스케줄표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영어와 수학 학원을 다닌 김군은 지금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학원은 아는 내용을 반복하게 돼 너무 따분할 때도 있고, 못 따라갈 때는 너무 어려워 쏟는 시간에 비해 공부 효율이 낮았어요. 저는 혼자 공부를 하는 게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 여기 다니게 됐어요.”

혼자 공부하는 스타일의 김군은 과감하게 학원을 끊었다. 그렇지만 자기주도적 학습의 단점은 나태에 빠지거나 방향을 못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김군은 학습 매니지먼트 업체를 찾았고 여기서 정기적으로 학습 상황을 체크하고 상담을 받는다. 상담과정에서 공부한 내용을 점검해주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땐 물어볼 수도 있다.


▲ 경기도 성남시 청솔종합복지관에서 자원봉사 대학생이 멘토로서 결손가정 학생 멘티에게 공부법을 지도하고 있다. / photo 청솔종합복지관
김군이 처음 이곳에 등록했을 땐 먼저 종합진단을 받았다. 매니저는 기존에 갖고 있던 목표나 공부방법, 학습능력 등에 대한 진단을 통해 학생의 장단점을 파악했다. 그에 근거해 매니저와 학생은 서로 논의를 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공부방법을 개선했다. 매주 3~4회 정기상담을 받고 학습실에서 혼자 공부를 한다. 학습 시작 전에는 어떤 내용을 공부할 지 범위와 목표를 체크하고 학습이 끝난 후에는 충분히 익혔는지 확인 받으면서 부족한 내용을 보충한다. 처음에는 과외처럼 체크 과정이 길었지만 점차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의존성이 줄어들었다. 고승재 에듀플렉스 대표는 “6개월 내지 9개월이 지나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지 점검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좋다”며 “궁극적 목표는 자기주도형 학습을 완전히 체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습 멘토링 시장은 기존 학원에서 공부 코치를 해주는 스타일과 아예 멘토링만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로 나뉜다. 에듀플렉스나 현대에듀, 멘토&멘티 등은 순수하게 학습 매니지먼트만을 하는 업체다. 지역별로 학습 매니지먼트 전문업체를 표방한 군소업체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기업 컨설팅을 하던 업체가 초점을 개인에게 맞추면서 학생들의 학습뿐만 아니라 진로와 인생 컨설팅까지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에 대해 비즈니스나 인생 진로에 대해 조언을 하는 개인 컨설팅은 연령을 막론하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히 학생 컨설팅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업체로는 한국리더쉽센터나 아시아코칭센터 등이 있다. 특히 성인보다는 어린 학생들이 컨설팅 수요가 더 많기 때문에 학습 컨설팅 시장 진출이 활발하다.

와이즈멘토 역시 기존 기업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 출신 컨설턴트들이 중심이 돼 만든 업체로 연령 구분 없이 개인 컨설팅을 한다. 송영선 와이즈멘토 이사는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심리학·교육학·공학·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입체적 상담을 한다”며 “학습 멘토링은 교육서비스 가운데 계획과 선택의 단계에서 서비스하는 것이고 학원은 그것을 실행하는 단계를 서비스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와이즈멘토는 검사와 상담을 통해 학교나 학원, 직업을 선택하도록 도와준다. 이틀 동안 심리검사와 적성검사를 하고 3일차에 상담을 하는데 비용은 77만원이다. 이후 관리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모의고사 등 시험성적표를 매번 멘토에게 보내 어떤 과목, 어떤 문제의 정답률이 낮은지 분석해 공부법이나 학원·과외를 바꾸도록 한다. 여러 전공의 상담사들이 한 학생이나 의뢰인을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조언을 할지 결정한다. 연간 관리 비용은 60만원으로 월 5만원 꼴이다.
기존 학원들도 강의식 비즈니스 모델에 학습 컨설팅 개념을 덧붙이고 있다. 대성학원 등 입시전문학원도 ‘플래너’라는 이름으로 멘토링 서비스를 개설했다.

학습 멘토링이 확산된 것은 사회상의 변화와 교육계의 현실 때문이다. 학습 멘토를 양성하는 업체인 SALT교육의 김길영 소장은 “멘토링이 붐을 이루는 것은 앞으로 개편되는 교과서 등 8차 교육과정의 핵심이 자기주도적 학습이기 때문”이라며 “공부방법이나 마인드 컨트롤은 1~2시간이면 배울 수 있지만 그것을 몸에 배도록 만들어 생활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SALT교육은 올해 들어 지방의 학부모들도 멘토 지도를 문의하는 등 학습 멘토링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올해에만 지방에 20여곳의 지사를 열었다. 지사 없는 곳의 학생은 전화나 이메일, 문자메시지로 관리한다.

하이멘토라는 멘토링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이소프팅사의 고중제 대표는 “입시제도가 복잡해진 것도 전문컨설팅서비스가 필요하게 된 요인”이라며 “학습 컨설팅산업은 태동기를 막 벗어나 부흥기로 들어가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고 대표는 또 “입시생의 15% 정도는 학습 컨설팅을 받을 것이므로 매년 수만 명의 수요가 창출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하이멘토는 단순히 입시 공부를 위한 컨설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문직에서 최상위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멘토로 연결하는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고 대표는 “우수한 멘토들을 확보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고 충분한 콘텐츠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고 사업모델이 복잡한 비즈니스”라고 말했다.

멘토링은 공교육 분야에서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서울 경성고(교장 차재연)에서는 지난 1학기 동안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진학한 선배들이 ‘야자(야간자율학습)’ 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선후배 사이에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형성됐고 후배들은 허심탄회하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거나 진로지도를 받았다.

전동중학교에서는 인근지역에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와의 협력관계(MOU 협정)를 맺고 교육 열의는 높으나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후 학습 멘토링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부모의 사교육비를 절감하면서도 학생들의 기초학력 신장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동시에 같은 지역 학교 간 멘토링 관계가 형성됨으로써 지역공동체의 교육활동 참여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대학생들은 학습 멘토링을 통해 맞춤식으로 학습지도를 하고 진학·진로를 지도한다. 맞춤식 학습지도는 학생 개인에 맞는 학습방법을 제시하고 잠재력을 높이는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올해 1학기에는 한국외국어대의 교육대학원 학생 7명이 멘토로 참여했다. 이들은 희망 학생 84명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각자의 능력에 맞는 공부방법을 지도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먼저 합격한 선배들이 학원을 매개로 진도를 관리해주는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기업, 전문직, 언론고시 등 취업 전선에서도 먼저 합격한 선배들이 컨설팅비용을 받고 합격 노하우를 컨설팅하는 방식이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멘토 없이 합격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의 모든 학습 분야로 멘토링이 퍼져나가고 있다. 고품질의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금전적 대가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좋은 멘토를 잡는 것 자체가 경쟁에서 한 발 앞서나가는 것이라며 경쟁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일부에선 원래 멘토의 참뜻이 퇴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박준동 기자
jdpark@chosun.com


멘토링

멘토(Mentor·도움을 주는 사람)와 멘티(Mentee·도움을 받는 사람)가 상호 존중의 관계를 맺고 멘티의 잠재력을 개발해 인재로 육성하는 활동을 뜻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 왕의 친구인 멘토가 왕자 텔레마쿠스를 훌륭한 왕으로 성장시킨 데서 유래한 인재육성 방법으로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학습 습관 몸에 익으니 집에서도 알아서 공부”

Mentor
자율학습 정도로 여기는 학부모 설득은 힘들어

주입식 교육을 하는 학원은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창의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21세기형 인재교육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라는 생각에 멘토링 교육에 발을 들여놓았다. 처음 멘토링을 하면서 수업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아이들은 술렁였다. 자기주도적 학습법이 생소한 아이들은 학습 내내 지루함을 버리지 못했다. 이들보다 더 불안해 하는 건 학부모였다. 자기주도적 학습을 그냥 자율학습 정도로 생각하는 학부모들을 이해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습은 습관이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알아내는 교육이념을 아이들에게 습관화시켰다. 학습관에 온 아이들은 학교 예습·복습을 포함한 20개 정도의 리스트를 작성해 그 중 절반은 학습관에서 실천하고 절반은 학부모가 집에서 확인하도록 규칙을 정했다. 예전에는 학교를 마치고 곧장 학원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은 경쟁하듯 늦어지는 귀가 때문에 새벽에야 집에 들어가야 했다. 이제는 자연스레 아이들은 학습관뿐 아니라 집에서도 공부를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학부모들은 공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과거엔 성적이 안 나오면 아이들과 학원 탓으로 돌렸고 아이들은 그때마다 학원을 옮겨야 했다. 부모들은 학원에 머무는 동안의 시간만 생각하고 아이들의 학습량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용량의 다른 칩을 지니고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채워주기보다는 무엇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채워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진정한 멘토링이다.

/ 이수진  평택시 SALT교육센터 원장


“스케줄 직접 짜니 공부에 자신감”

Mentee
학교 공부 충실해지면서 성적도 크게 올라

제가 다니는 독서실 실장의 권유로 멘토링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는 학원에서 월·수·금요일에는 수학을 세 시간, 화·목요일에는 영어를 세 시간 정도 배웁니다. 그리고 가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학원에서 수학과 영어 보충수업을 받습니다. 학교 공부는 숙제 외에는 전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멘토는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것과 숙제를 하는 것 외에 혼자서 공부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1시간30분 정도 학교 공부 위주로 예습과 복습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2시간 정도 예습과 복습을 하기로 하고 그대로 실행하였습니다. 이렇게 매일 예습을 하고 배운 것을 그날로 두 번이나 복습하니까 배운 것을 거의 다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선생님의 질문에도 대부분 대답할 수 있게 되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공부에 더욱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매일매일 예습·복습을 하는 것은 알고 보면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시험보기 2주 전부터 시험공부를 했는데 지금은 시험 보기 거의 두 달 전부터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입니다.
저는 멘토의 권유대로 매일 저녁 9시경에 나의 스케줄표를 적으면서 하루의 부족했던 점을 반성합니다. 10분 정도의 시간이지만 이러한 반성은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 박준형  분당 불곡중학교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