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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엑센츄어는 "전세계적으로 2010년까지 35억명 이상의 지식 노동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앞으로 숙련된 고급 인적자원은 석유 등 천연자원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세계적으로 글로벌 인재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식과 창의성을 무기로 하는 글로벌 경쟁 시대를 맞아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성과 지적 능력,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 등을 갖춘 인재가 기업 전체의 사활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최첨단 무기가 동원되지도 않고, 피를 흘리는 싸움도 아니지만, 인재를 빼앗느냐 빼앗기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그 어떤 전쟁보다 치열하다.
중국·인도 등 이머징마켓에서의 인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글로벌 인재난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헤이그룹 서울사무소 김기령 대표는 "인력은 있는데 쓸만한 인재는 부족하다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로서는 인재 선점(先占)이 발등의 불이 됐다.
LG전자가 사장급 기술 고문 P씨를 영입하는 데 2년 6개월간 공을 들인 것도 이때문이었다. (회사 측은 보안 문제를 이유로 그의 국적을 공개하지 않고 동아시아 출신이라고만 밝혔다.)
P씨를 영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LG전자 L사업부장은 그가 미국·유럽 등 해외 출장에 가면 따라 가는 식으로 조금씩 친분 관계를 쌓아 나갔다. 사적(私的)인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 L사업부장은 P씨가 LG에 대해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회사를 옮길 경우 해외 출장이 잦아져 함께 사는 쇠약한 노모(老母)가 신경이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L사업부장은 최고 수준의 간병인을 구해주고 비용도 부담하겠다고 제안했다. 결국 P씨는 LG전자에 입사, 현지 법인에서 전자 제품 관련 기술을 자문하고 있다.
LG전자는 인사 평가 시 우수 인재 영입실적을 최고 20%까지 반영한다. 이 회사는 나아가 올 상반기 중에 글로벌 인재 채용을 전담할 외국인 부사장급 임원을 채용할 예정이다.
인사 부문에 강점이 있는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타워스페린 서울사무소의 박광서 대표는 "2~3년 전만 해도 한국 대기업은 주로 기술 분야에서 해외 인재를 뽑았지만, 기술·품질 수준이 올라가자 이제는 마케팅·기획 부문으로 인재 채용 폭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경우 매년 MIT·스탠퍼드·UC버클리·조지아공대 등 미국 주요 대학과 독일 아헨공대,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 등 유럽 명문대에서 채용 설명회를 열고 매년 수십~100명 정도를 뽑고 있다.
해외 법인의 인력 현지화 작업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SK그룹은 2002년 '중국 공채 1기'를 시작으로 중국 현지에서 인재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올 초 "앞으로 중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업들은 전부 중국인이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도 해외 82개 법인 중 30% 정도의 법인장을 2010년까지 외국인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해외 법인의 경우 현지 인력이 90% 이상인데도 계속 한국 사람을 법인장으로 파견하는 게 효과적인지에 대해 다각적인 검토를 한 결과"라고 전했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글로벌 인재 풀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A헤드헌팅 업체 관계자는 "최근 한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 아시아 지역본부 설립을 추진하다가 총괄 사장 감을 찾지 못해 본부를 홍콩으로 옮긴 적이 있다"면서 "다국적 경영을 해본 한국인 인재가 없어 아시아 본부까지 빼앗긴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M&A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두산그룹 관계자는 "영어를 잘 하거나 특정 국가 사정을 잘 안다고 글로벌 인재라고 하지 않는다"며"문화적 개방성, 고객과 시장 중심 마인드, 혁신성을 갖추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인재가 진정한 글로벌 인재"라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확보 경쟁은 얼마나 심각하며, 기업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WeeklyBIZ가 점검해 보았다. 이와 관련, 세계적 헤드헌팅업체인 하이드릭앤스트러글스의 케빈 켈리(Kelly) 사장도 인터뷰해 조언을 들어 보았다. 그는 "글로벌 인재 전쟁의 무서운 현실을 직시하고 사내에서 글로벌 인재들을 육성하라"면서 "오늘이라도 당장 직원들을 해외로 내보내라"고 조언했다.
지난 1월 29일 삼성그룹 신사옥인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서초타워 27층.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삼성 계열사 사무실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사무실을 걸어 다니다 보면 뭔가 생소한 인상을 받게 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수십 명의 직원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삼성그룹이 전 세계에서 뽑은 35명의 외국 인재들이 일하고 있는 '미래전략그룹(Global Strategy Group)'이다.
이들의 이력서는 세계 최고 대학과 기업들 이름으로 빼곡하다. 와튼·하버드 비즈니스스쿨 등 세계 톱10 MBA 과정을 마쳤거나 박사 학위를 딴 엘리트들이다. 경력도 화려하다. 노키아·HP·MS·GE·인텔 등 글로벌 제조업체 혹은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맥킨지·BCG 등 글로벌 금융·컨설팅 회사 출신들이다. 곳곳에 있는 회의실에는 'New York' 'Beijing' 'Dubai' 등 영어 이름이 붙어 있다. 늘 글로벌한 생각을 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지난해 이곳의 인재들은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의 요청으로 아프리카 시장 공략 전략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노키아가 80~90%를 장악하고 있던 아프리카 휴대전화 시장의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미래전략그룹은 나이지리아·케냐·모로코 등 아프리카 6개국을 집중 분석한 뒤, 삼성이 그동안 주력했던 고가 모델 대신 중·저가 모델로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또한 철저한 현지화를 주문하면서 당시 아프리카 지역 광고에 백인 모델을 쓰던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에서 인기가 높은 축구를 마케팅에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충고를 대부분 받아들였고, 지난 20일부터 진행 중인 '아프리카네이션컵'도 처음 후원했다.
■연령, 성별, 인종을 넘는 인재 확보 전쟁
다극화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인재 확보 전쟁이 국경을 넘어 진행된다는 점이다. 조직의 인재가 연령·성별·인종을 넘어 다양화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외국인 인재 스카우트가 활발해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해외 핵심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인도 등 5개국에 '해외 채용 조직(IR0·International Recruit Office)'을 운영하고 있다. 채용 분야도 예전의 기술 분야 위주에서 마케팅·구매담당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월 최고구매책임자(CPO·Chief Procurement Officer)로 IBM에서 20년간 CPO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토마스 린튼 부사장을 영입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에서 동북아 지역대표를 맡았던 더모트 보든 부사장을 최고마케팅책임자에 앉혔다. 기아차는 2006년 '유럽의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을 영입한 바 있다.
■쓸만한 인재의 풀은 오히려 좁아져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글로벌 인재 확보의 중요성은 알지만 채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는 늘고 있지만, 쓸만한 인재의 풀은 오히려 좁아졌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인 엑센츄어에 따르면, 미국에서 30여개 기업의 채용 담당자 4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입사 지원자의 평균적인 수준이 2004년 이래 매년 10%씩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 업체인 헤이그룹 서울사무소의 김기령 대표는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미국 주요 기업 CEO의 절반 정도가 앞으로 10년 내에 자리를 떠날 것"이라며 "인재 고갈 위기는 미처 준비하기도 전에 다가왔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글로벌 인재 발굴을 전담하는 대규모 조직을 운영하며 인재 선점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MS는 산업 분야별 전문가 발굴과 확보를 전담하는 300명 규모의 팀을 운영하고 있다. ABB·일렉트로룩스 등 자회사를 보유한 스웨덴 인베스터AB는 인재 채용을 위한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한 기업 문화 갖춰야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이 좋은 인재를 확보해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무엇보다 기업 문화 자체를 좀더 글로벌하게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글로벌한 기업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기업이라면 외국의 우수 인재 유치하기가 쉽지않기 때문이다. 2006년 9월부터 삼성 미래전략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트래비스 메릴(Merrill)씨는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인은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고 좋은 기회가 있으면 이직한다'는 식의 이질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한국 기업에서 외국인이 폭넓게 활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 문화가 보다 더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힘들게 영입한 인재가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글로벌 인사 컨설팅 회사인 이곤젠더 한국사무소 사이먼 김 대표는 "한국 기업은 인재를 뽑아 놓고 마치 무인도에 떨어뜨려 놓듯이 도와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의 기업 문화에 적응을 잘 못해 떠나가는 인재들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컨설팅 회사 관계자는 "기존 조직원들이 새롭게 외부에서 온 인재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을 우려해 협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다고 한국의 서열 중심 기업문화를 무시하고 자신의 직속 상사를 뛰어넘어 최고경영층에게 애로 사항을 하소연하기도 힘든 상황이어서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이 본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내부 인재 육성이 바람직
셋째, 장기적인 시각에서 볼 때 외부 인재 채용보다 내부 인재를 육성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많다. 김기령 헤이그룹 서울사무소 대표는 "외부에서 영입된 인재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져 오래 머무른다는 보장이 없다"며 "외부 인재 채용보다는 내부 인재를 키우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 회사에 영입된 인재가 과거의 성공에 젖어 맡은 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너무도 천천히 찾고, 새 조직에 쉽사리 적응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특송업체 UPS의 경우 트럭 운전사들의 높은 이직률로 고민했었지만, 멘토링, 동료 컨설팅 등 교육·훈련에 연간 3억8000만달러를 투입하며 내부 인재를 키운 결과 회사 조직이 한층 탄탄해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넷째, 인재 채용 과정에서 외적인 조건을 따지기보다 해당 기업의 가치에 적합한 인재를 뽑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 박지원 선임연구원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술·지식 수준이 채용의 주요 기준이 됐지만, 최근 해외 선진 기업들은 일류 대학 졸업자라고 해도 자사 문화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안 뽑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버드대의 연구 결과, 이직(離職)의 80%가 '잘못된 채용'에 기인하며 이는 회사의 문화·가치에 적합하지 않은 인재를 뽑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경력직은 전문성이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선진 기업들은 자사 문화를 수용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채용의 주요 잣대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엑센츄어 서울사무소 김희집 총괄 대표는 "외국 유명 대학에서 공부한 한국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채용시 면밀한 검증 필요
다섯째, 좋은 인재를 뽑는 것 못지않게, 회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뽑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A사가 해외에서 채용한 B씨의 경우 '400만달러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개인 사정 등으로 A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다가 자신이 받고 있던 실제 연봉의 몇 배에 달하는 '연봉 100만달러'를 불렀다. 그러자 A사는 3년간 연봉 100만달러로 계약하는 동시에 입사하는 대가로 100만달러의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입사 후 기존 직원들과 잘 어울려 일하지 못했고, 계약 기간이 끝나자 회사를 떠났다.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인재 유치 실적을 인사 평가에 반영하면서 실적에 급급한 나머지 검증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외국계 헤드헌팅 업체 관계자는 "모 그룹에 입사한 해외 인력의 경우 미국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MBA 출신이라고 거짓 이력서를 썼는데도 걸러지지 않고 연봉 10만달러에 회사를 들어간 적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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