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잡기

미국판- 학교, 사교육 이길 수 있다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9. 3. 9. 12:23

[미국판- 학교, 사교육 이길 수 있다]

매일 3시간씩 더…

'지독한 수업' KIPP 팀 아카데미
등교 당기고, 하교 늦추고 大入·창의교육 둘 다 잡기
美평균보다 2년뒤진 신입생 1년후엔 최상위권으로 껑충

뉴어크=박종세 특파원 jspark@chosun.com

 

골목마다 범죄와 마약이 범람하고, 푸드 스탬프(무료 급식권)로 연명하던 미국 내 일부 도시에서 다음 세대만큼은 제대로 키워내려는 공교육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흑인과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의 한 주택가에 위치한 KIPP 팀 아카데미(5~8학년)에선 5일 스쿨버스가 오전 7시부터 학생들을 쏟아냈다. 전체 학생의 96%가 흑인이고, 나머지는 히스패닉인 이 학교는 미 대학입시(SAT)의 핵심인 수학·언어 영역을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이 도시의 다른 학교들보다 수업 시작이 1시간 반가량 이르다. 하교도 다른 학교보다 2시간 늦은 오후 5시. 그러고도 자율학습이나 과외활동을 하느라 오후 7시까지 남아있는 학생들도 많다. 12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셈이다.

수학을 가르치는 5학년 교실에 들어서자, 뒷벽에 '프린스턴' '버클리' '듀크' 등의 대학 깃발이 붙어 있다. 이 학교 선생님들과 졸업생들이 졸업했거나 입학한 대학들이다. 깃발 옆엔 '나는 어느 대학의 깃발을 추가할 것인가'라고 적혀 있다. 3층 복도엔 6학년 3개 반의 ▲숙제 완성 수준 ▲성적 평균 등 5개 항목을 비교한 표가 붙었다. 또 각 반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따로 이름이 적혔다.
▲ 학교에서 12시간… "그래도 재밌어요"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KIPP 팀 아카데미의 한 학생이 칠판에 답을 적고 있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12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면서도“선생님이 재미있게 가르쳐줘서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KIPP 팀 아카데미 제공
'미국판 입시 지옥'일까. 그런데 아이들은 "공부는 힘들지만, 선생님들이 재미있게 가르쳐서 수업이 즐겁다"고 했다. 5학년 학생들에게 분수를 소수로 바꾸는 법칙을 설명하는 교사 마크 탠(Tan)씨는 소수점을 찍고, 나머지를 없애는 과정을 랩 스타일의 구호로 만들었다. 6학년생 재너시어 로저스는 "지난주 과학 시간에 화석에 대해 배우는데, 선생님이 화석 샘플을 흙 속에 숨겨놓고 살살 흙을 털어내서 하나씩 '발굴'했다"고 했다.

잘하는 학생 몇몇이 수업을 지배하는 현상은 이곳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탠씨는 문제를 낸 뒤, 모르는 학생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해 아이들의 이해도를 바로 파악한다. 그러고는 잘하는 학생들에겐 개별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다시 주고, 못하는 학생에겐 다시 시간을 갖고 쉽게 풀었다. 수업에 따라서는 우열반도 편성된다.

이 학교를 포함해 뉴어크 지역에서 3개의 KIPP 스쿨을 운영하는 라이언 힐(Hill)씨(명함에 적힌 그의 직함은 사무국장 이었다)는 "입시에 필요한 실력을 쌓으면서도 창의적인 교육을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공부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숙제를 하는 데 드는 시간은 평균 2시간. 코피를 흘리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다. 5학년 신입생의 실력은 미국 평균보다 무려 2학년씩 밑돌았다. 그러나 입학 후 엄청난 공부량 덕분에 6학년생의 영어와 수학 평균은 87점(2007년). 뉴어크 평균 55점은 물론이고, 잘사는 도시가 많아 성적이 좋은 뉴저지주 평균(79점)보다도 높다.

KIPP의 힐 사무국장은 "한번은 뉴저지주에서 상위 5위 부자도시에 끼는 곳의 교장 한 분이 찾아와 '우리 학생들과 당신 학생들의 성적이 같다. 우리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일찍 마친 뒤 사교육으로 보충하는데, 당신들은 비결이 뭐냐'고 묻더군요"라고 했다.

당연히 매년 1월 뉴저지주의 KIPP 스쿨 3곳(800여명)에선 이곳에 보내려는 학부모들이 추첨 결과에 목을 맨다. 현재 세 학교의 대기자 명단엔 1600명이 올라 있다.

그러나 이 학교의 목표는 결코 '공부벌레'만이 아니다. '남을 돕고, 규칙을 지키는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또 다른 목표다. 복도엔 미 심리학자 콜버그의 '6단계 도덕론'이 붙어 있다. 벌이 무서워서 올바른 일을 하는 1단계부터 개인적 원칙이라 지키는 6단계까지가 적혀 있다. '5단계(타인 배려)' 밑에는 팔에 상처를 입은 친구를 대신해 가방을 들어주고 노트 필기를 복사해준 두 학생을 칭찬하는 메모가 붙어 있다.

지난 7년간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싸운 것은 단 한 차례였다. 규칙을 어긴 학생에겐 이 학교도 정학(停學)처분을 내린다. 그러나 노란색 셔츠를 입혔을 뿐, 학교에서 똑같이 공부한다. 다만 정학 중이라서 누구도 이 학생에게 말을 걸어선 안 된다.

8학년생인 여학생 셰일리(Shayleh)는 애초 비행(非行) 탓에, 학급당 교사가 3명씩 배치된 특수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이 학교로 옮겨온 뒤, 완전히 변했다. "공부를 잘한다고 잘난 척해서는 안 되며, 다른 학생들을 돕는 팀플레이를 강조하는 학교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대학 졸업 뒤 심리치료사가 되는 것이다.

KIPP 역시 다른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등록금이 필요 없다. '지옥 같은 빈민가'에서 '공부하는 학교'를 만드는 교육혁명은 철저히 교사들이 주도한다. 교사 탠씨는 "뉴욕 등 대도시 빈민가 학생들은 아무리 똑똑해도 현재의 공공학교 체계로는 도저히 대학 갈 수가 없는 불평등이 싫어서 이 학교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입력 : 2009.03.09 0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