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조장 논란에도 올해 응시인원 크게 늘어
# 지난 5월 23일 오후 1시 서울대 캠퍼스 자연과학대학. 대학 교정이 술렁이더니
초·중학교 학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1시 30분이 되자 그 수는 늘어났다.
캠퍼스에 어린 학생들이 왜 왔을까. 다름 아닌 한국수학올림피아드 초·중등부에
응시한 학생들이다.
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올림피아드 시험을 치르는 4시간 내내 부모들도 시험
장 밖에서 마음을 졸였다. 한 학부모(46·서울 노원구)는 "올림피아드 입상 경력은
특목고와 명문대학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빠르면 초등학교 3~4학년, 늦어도 6
학년 때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경시대회에 입상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
다.
지난해보다 응시인원 늘어
지난 5월 23일 전국 각 고사장에서 제23회 한국수학올림피아드(Korean Mathema
tical Olyimpiad, 약칭KMO) 1차 시험이 치러졌다. 올해 총 응시자는 1만9082명(중
등부 1만5818명, 고등부 3264명). 지난해 1만8714명(중등부 14941명, 고등부 37
73명)보다 368명 늘었다고 한다.
고등부는 지난해보다 500여명 가량 감소했지만 중등부가 870여명으로 크게 늘어
전체적인 응시자는 증가했다. 중등부 응시자는 매년 큰 폭으로 느는 추세다. 올해
시험 난이도는 중등부는 지난해보다 쉬웠고, 고등부는 다소 까다로운 문제들이 포
함됐다는 평이다.
중등부 인원이 증가한 것은 특목고 지원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2011학
년부터 과학고에서 올림피아드 입상 특별전형을 폐지하고, 서류전형에서 입상 실적
을 반영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여전히 민사고, 상산고 등 주요 자사고에서
KMO 수상 실적을 입학 자격요건이나 가산점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
학년 자녀를 둔 김미라(44·서울 도곡동)씨는 "과학고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
에 당연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며 "입학 전형 때 가산점을 받으려는 것보다 특목
고를 진학하려는 학생들과 겨뤄 실력을 검증하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응시자 연령도 점점 내려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응시한다는 이소민(12·
초6)양은 "외고를 생각하는 친구들은 영어 시험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지만, 저를 비
롯해 이과 성향인 친구들은 대부분 일찍부터 올림피아드 준비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고등부 지원자가 감소한 것은 대입에서 특별한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대입 수
능 준비로 올림피아드에 응시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도 있다. 서문여고 3학년 백은혜
(18)양은 "통계수학과 진학이 목표라 스스로 실력을 검증하고 싶어 응시했다"며 "수
능 모의고사 문제와는 전혀 다른 유형이라서 풀기가 쉽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 ▲ ① 5월 23일 오후 고등부 수학올림피아드 경시대회가 열린 건국대 사회과학관앞. 응시자들이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 ② 고등부 수학올림피아드 경시대회 응시자가 출제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③ 서울대 자연과학대앞. 시험을 보고 나온 학생들이 답을 맞혀보고 있다.
입학사정관 전형의 영향력이 커지면 고등부 응시자 인원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
도 나온다. 신동엽 페르마에듀 본원장은 "학교 내신이나 수능시험 점수와는 별개
로 역량 있는 학생을 뽑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지원자의 다
양한 활동 사항을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로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이 주요하게 반영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올림피아드 존폐 논란 부분
응시자가 늘면서 올림피아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언젠가부터 올림피
아드 입상이 특목고나 명문대 진학을 위한 것으로 변질됐으며 사교육을 일정부분
조장한다는 얘기다. 공교육 수준을 뛰어넘는 문제가 출제되는 올림피아드에서 좋
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학원 수강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등부
의 경우 고교 수학 교과과정의 선행을 요한다.
중등부 은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다는 A과학고 2학년 김상현(17)군은 "과학고 입학
전형 때 올림피아드 입상 실적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올림피아드 정보는
대부분 학원에서 얻었다"고 말했다. 3년째 지원한다는 중2 김한솔(14)군은 "학교 수
업만으로는 올림피아드 문제를 풀 수가 없다"며 "평소에는 종합학원을 다니지만 올
림피아드 응시 3개월 전부터 따로 과외를 하며 준비했다"고 말했다.
- ▲ 건국대 서울 캠퍼스 사회과학관 주변도로. 경시대회 응시자를 마중하러 나온 학부모들의 차로 인해 교통체증을 불러 일으켰다.
에 있는 올림피아드위원회 위원장들을 소집해 국내 올림피아드 대회 폐지를 논하
는 자리를 만들었다. 또한 카이스트를 비롯해 일부 대학과 특목고에서 경시대회 성
적을 입학 전형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나왔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폐지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학부모 김미라
씨는 "응시자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공신력 있는 시험을
없앤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배덕락 에듀원 KMO 대비팀장은 "공교육에서 못하는 부분을 사교육에서 보완해 영
재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한다는 방향으로 생각해달라"며 "올림피아드는 심
화된 학습을 통해 본인의 잠재력을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승훈 대한수학회 KMO 부위원장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입상, 국위를 선양
하고 영재를 발굴한 긍정적인 면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응시자간 지역격차를 줄
이기 위해 한국대표를 뽑는 최종 선발과정에서 지방 학생을 우대하고, 사교육을 줄
이기 위해 홈페이지나 출판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혜정 한국학부모신문 편집인은 "아이의 재능과 적성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적
으로 시키는 학부모가 문제"라며 "다른 아이가 하니까 우리 아이도 올림피아드 준
비를 시켜야 한다며 부화뇌동하기 보다는 아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게 해야 한
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