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정보

특목고 가려고 조기유학?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9. 6. 30. 21:27

[심층 리포트] [5] 특목고 가려고 조기유학?

 

<조선일보 특별 취재팀>

염강수 기자 ksyoum@chosun.com 

이석호 기자 yoytu@chosun.com 

박승혁 기자 patrick@chosun.com 

채민기 기자 chaepline@chosun.com

한경진 기자 kjhan@chosun.com 

 

입력 : 2009.06.30 02:48 / 수정 : 2009.06.30 05:10

국내 입시 맞춰 '초등학교때 떠나 중학때 귀국' 새 패턴
"한국출신이 아무리 잘해도 미(美) 주류 편입은 바늘구멍" 유학반 활성화도 큰 매력

경기도 모외고 1학년 강모(16)군은 이미 조기유학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2004년 9월)에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귀국했다. 강군의 아버지(45·회사원)는 "처음부터 국내 특목고에 보내려고 마음먹고, 특목고 내신에 포함되지 않는 중1에 맞춰 귀국시켰다"며 "특목고에 못 가더라도 영어를 잘하면 나머지 공부가 수월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군의 아버지는 강군을 일단 국내 대학에 보낸 뒤 미국의 로스쿨로 보내는 것을 고려 중이다.

"미국에서 대학까지 보내는 것도 생각했지만, 미국에서 대학까지 간다는 것은 미국 사회의 주류(主流)와 경쟁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외국인에게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한국교육개발원(KEDI) 집계에 따르면, 초·중·고등학생 유학생은 1995년 2259명에서 2007년 2만7668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전문가들은 2000년 이전에 유학을 떠난 '조기유학 1세대'와 그 이후 세대의 차이점으로 ▲조기유학의 보편화 ▲'국내 입시용(用)' 조기유학의 증가 ▲유학 연령의 연소화(年少化) 등을 꼽았다.

지난 2007년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영어캠프 및 조기유학 박람회에서 학부모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2007년 전체 조기유학생 2만7668명 가운데 44.6%가 초등학생이었다./연합뉴스

조기유학 전문업체 '맛있는 유학'의 이은희 본부장은 "조기유학 수요가 늘면서 1년에 3만5000달러 이상 드는 보딩스쿨(기숙사형 사립학교) 대신 1년에 2만5000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일반 가정에서 생활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홈스테이 유학 상품이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학 상품이 생기면서 보다 많은 부모들이 조기유학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단 유학을 떠나면 현지에서 중·고등학교 과정과 대학교를 마치던 조기유학 1세대와 달리, 국내 특목고나 대학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조기유학을 선택하는 경우도 늘었다.

하모(20)씨는 지난해 8월 컬럼비아 대학 국제관계학과에 입학했다. 하씨는 중학교 1학년이던 2002년 캐나다 밴쿠버로 1년간 유학을 떠난 뒤 귀국 후 경기도 소재 외고에 입학했다. 캐나다에서는 현지인 집에서 머물면서 일주일에 4회쯤 한국 유학원 관계자로부터 한국 학교에서 하는 공부를 보충수업 받았다. 영어를 집중적으로 배우면서 국내 내신용 공부도 병행한 것이다. 하씨는 귀국 후 외고에 들어간 뒤 유학반에서 미국 유학준비를 했다. 하씨의 아버지(50·무역업)는 "고등학교 인맥과 친구,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등을 고려해서 이 같은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토피아(TOPIA) 유학원 김석환 원장은 "2000년대에 들어서는 초등학교 때 유학을 갔다가 영어만 배우고 1~2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다시 미국으로 대학가는 경우가 이상적인 코스라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입시가 시작되기 전에 짧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 장기적인 입시 전략과 인맥 형성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조기유학 연령대는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모(여·47)씨는 오는 8월 말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미국 보스턴으로 10개월 동안 유학을 보내기로 했다. 이씨는 "10살 터울이 지는 아들은 국내 명문사립대에 들어갔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어실력이 외국에 살다 온 또래에 비해 뒤졌다"면서 "우리 딸은 아들처럼 영어 공부에 시간을 안 빼앗기고 좀 더 유리한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한국 입시제도가 다양해졌다는 요인도 있다. 2000년대 들어 대원외고와 민족사관고를 필두로 국내 고등학교에서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는 케이스가 많아졌고, 반대로 외국 고등학교를 마친 뒤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 등 국내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는 길도 넓어졌다.

서울어학원 이경로 원장은 "영어 특기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넓어졌고 국내 대학에서도 영어 강의가 확대 추세"라며 "영어 능력과 국제감각을 갖춘 '인재'로 키우려는 목적이라면 꼭 미국 대학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모(여·21)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2~3학년 과정을 마친 뒤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에 합격했다. 그러나 우연히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원해 합격했다. 김씨는 미국 대학을 포기하고, 교육비용이 10분의 1인 연세대를 선택했다. 김씨는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은 미국식 교육프로그램으로 짜여 있어 비용 등을 감안하면 연세대를 택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세한아카데미 김철영 원장은 "'영어를 잘한다' '미국 대학을 나왔다'는 것 자체로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요즘 학부모들은 미국 대학, 한국 대학, 아니면 아시아 명문대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위한 한 방편으로 조기유학을 활용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