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과잉 독서 부작용 '초독서증'
여성중앙 | 입력 2011.10.31 16:53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다는 '조기 다독' 트렌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소아정신과를 찾는 환자 중 유사 자폐의 일종인 '초독서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 육아 카페를 둘러보면 거실을 어린이 도서관처럼 꾸며놓고 아이들에게 하루 수십 권씩 책을 읽히는 엄마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엄마들의 열성에 부응해 30개월도 안 된 아이가 하루에 70~80권의 책을 읽어 이미 3000여 권을 돌파하는가 하면, 두 돌 갓 지난 아이가 한글을 다 떼고 영어 단어와 구구단을 술술 외우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른바 '독서 영재'로 불리는 이 아이들은 자식을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엄마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재인 줄 알았던 아이가 사실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하는 엄마들 또한 늘고 있다.
하루 종일 책 읽는 우리 아이, 혹시 영재가 아닐까?
39세라는 늦은 나이에 딸 지윤이를 낳은 서미경씨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뇌 발달이 촉진된다는 육아 서적을 읽고 아이가 6개월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지윤이는 돌이 지나면서부터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꽂이에서 책을 뽑아 와 읽어달라고 하고 밤에는 20~30여 권의 책을 읽어줘야 잠이 들었다. 서미경씨는 이런 아이의 욕구에 부응하고자 엄마들 사이에서 좋다고 소문난 수십만원짜리 전집류를 사들여 806㎡(32평) 아파트 거실 한 벽면을 아이 책으로 꾸몄다.
아이는 18개월이 지나면서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하더니 밖에 나가면 간판 글자까지 술술 읽고,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동요를 부르는 등 언어적인 부분에서 또래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이런 지윤이를 보고 주위에서는 혹시 영재가 아니냐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30개월쯤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서미경씨는 혼란에 빠졌다. 딸아이가 책 외에 다른 장난감에는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고 또래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평소 낯가림이 심하고, 대화를 할 때도 외운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반향어'를 계속 쓰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던 서미경씨는 반신반의하면서 소아과를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지윤이는 영재가 아니라 '초독서증'으로 인한 유사 자폐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아기 다독이 심각한 뇌 손상 초래할 수도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 38명 중 1명이 자폐아라고 한다.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우리나라 자폐아의 경우 상당수가 초독서증에서 기인하는 유사 자폐라고 진단한다. '초독서증'(Hyperlexia)이란 뇌가 성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무조건적으로 텍스트를 주입해 의미는 전혀 모르면서 기계적으로 문자를 암기하는 유아 정신 질환을 말한다.
부모, 친구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놀면서 사회성을 배워야 할 유아들이 너무 빨리 '문자'에 눈을 뜨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는 '자폐 성향'이 생기는 것. 이런 유사 자폐증은 심한 경우 뇌 손상을 비롯한 각종 신체 이상까지 초래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문자에 대해 과도한 '영재성'을 보일 경우, 이것은 축복이 아닌 불행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초독서증의 증상
초독서증의 증상은 언어 상실, 사회성 결여, 난폭 행동, 사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이 자폐증과 유사하다고 해서 '유사 자폐'로 불리는데, 사람들과 눈 맞춤을 하고 신체 접촉이나 새로운 장난감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문장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단어는 따라 발음할 수 있다는 것 등이 선천적 자폐와 다른 점이다. 아이의 초독서증이 의심된다면 소아정신과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가능한 한 빨리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뇌 손상으로 인해 발병하는 선천성 자폐와 달리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생기는 유사 자폐는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하면 완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증세가 가벼운 경우 가정에서 엄마가 그동안 아이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됐다면 놀이 치료, 언어 치료 등 아이에게 필요한 소아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자폐로 굳어지거나 지체적 장애 등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으므로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다는 ‘조기 다독’ 트렌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소아정신과를 찾는 환자 중 유사 자폐의 일종인 ‘초독서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초독서증을 예방하려면
태어날 때부터 뇌 손상으로 인해 발병하는 선천성 자폐와 달리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후천적으로 생기는 유사 자폐는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하면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
유아기 땐 다독보다 오감 발달, 정서적 교감이 중요
조기 교육을 반대하는 육아 전문가들은 유아기 때는 다독보다 오감 발달과 정서적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온몸으로 신체 접촉을 하며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교육이라는 것.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만 5세까지는 책도 읽히지 말고, 문자도 가르치지 말고, 그냥 놀게 하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 엄마들이 하는 독서 교육은 아이 발달 과정에 역행하는 것으로, 유아들에게 많은 책을 읽히는 것은 돈을 들여 아이를 망치는 일”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뇌과학자인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 또한 “뇌가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과도하게 독서를 시키는 것은 가는 전선에 과도한 전류를 흘려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과부하로 전선에 불이 붙는 것처럼 아이들의 뇌 발달에 큰 지장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초독서증을 예방하려면
전문가들은 엄마의 욕심이 아이를 병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같은 또래 아이나 형제와 학습 속도를 맞출 욕심에 글 공부를 너무 일찍 시키지 말 것을 권유한다. 또한 어린아이를 혼자 놔둔 채 비디오테이프를 자주 틀어주는 것도 금물이다. 자극적인 정보가 일방적으로 아이들에게 주입돼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부터 낱말 카드를 반복해 읽어주는 ‘조건 반사식’ 교육은 초독서증을 유발하는 아주 위험한 교육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글과 그림을 같이 보여주며 이야기하듯이 읽어주는 등 아이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글은 언제부터 가르치는 게 좋을까? 교육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신경학적으로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마름모꼴(◇)을 따라 그릴 수 있을 때 글을 배울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본다. 그 나이는 평균 만 5~6세 정도. 우선 1차 상징인 말을 충분히 익힌 뒤 2차 상징인 글을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초독서증 아이, 이렇게 놀아주세요
초독서증 아이들은 많은 단어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대화할 능력이 결여돼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런 아이들의 경우 문장 이해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으므로 말할 때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천천히 또박또박 짧은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몸짓이나 단어라도 대화가 가능할 수 있도록 아이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자극을 줘야 한다.
자주 안아주고 목욕을 같이하는 등 스킨십을 늘리는 것도 좋은 치료법이다. 아이에게 피부는 ‘또 하나의 뇌’라는 말이 있다. 아이와 신체 접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아이의 뇌가 발달할 뿐 아니라 딱딱해진 아이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효과가 있다.
책이나 TV 광고, 비디오테이프에 집착하는 경우, 나쁜 버릇을 고쳐준다고 이것들을 단번에 없애버리는 것은 좋지 않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더욱 불안해져 공격성, 자해 등의 문제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독서량과 비디오 시청 시간을 줄여야 한다. 초독서증 아이들은 신체적인 발달이 늦거나 책 외에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놀이터에서 또래 아이들과 자꾸 접촉하게 하고, 오감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초독서증 예방하는 연령별 올바른 독서법
책을 읽어줘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엄마들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초독서증이란 어린이 과잉 학습의 부작용이란 사실을 명심하자. 뇌 의학 전문가 서유헌 교수는 나이에 따라 적절한 운동법이 있듯이 두뇌 발달 단계에 맞춘 독서법으로 지도한다면 아이의 뇌 발달을 촉진해 똑똑한 아이로 키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참고 도서_서유헌 교수의『뇌 발달 시기에 맞는 교육법』『엄마표 뇌교육』
만 0~3세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이 골고루 발달하는 시기인 만큼 오감 학습을 통해 두뇌를 골고루 자극해 줘야 뇌 발달이 효과적으로 이뤄진다. 독서만 많이 시킨다든지, 언어 교육을 무리하게 시킨다든지, 카드 학습을 지속적으로 시키는 등의 일방적이고 편중된 학습 방법은 오히려 뇌의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공부를 하는 데 필요한 대뇌 피질은 3세 이후에 발달하므로 이 시기에는 책을 읽히지 않는 게 좋다. 아이가 스스로 흥미를 느껴 그림책을 보는 것은 좋지만, 장시간 보거나 책에 집착하는 것은 피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사고의 여유를 주지 않고 끊임없이 시각, 청각만 자극하는 TV나 교육용 영상도 되도록 보여주지 않는 게 좋다.
만 3~6세
인간의 종합적인 사고와 창의력을 조절하고 인간성, 도덕성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는 시기다. 따라서 학습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고와 인간성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주로 발달하는 시기인 만큼 암기 위주의 선행 학습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책과 영상을 통한 학습보다는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인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어주면서 책과 친숙하게 하는 훈련을 시작하되 장시간 읽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만 6~12세
언어 기능, 청각 기능을 담당하는 측두엽과 공간?입체적인 사고 기능을 담당하는 두정엽이 빠르게 발달하는 시기다. 본격적인 읽기, 쓰기 훈련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신호. 스스로 흥미가 있는 책을 골라 읽도록 하고, 아이의 수준에 맞춰 점차 독서량을 늘려가도록 유도한다. 이 시기엔 조금만 자극을 주어도 언어를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어하기 때문에 세계 명작 동화를 많이 접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 이때의 경험과 실력이 평생 국어 실력을 좌우한다. 외국어 교육 또한 이때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획_강승민 사진_이미희
여성중앙 2011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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