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지아공대 교수의 화상강의를 듣고 있는 고려대 학생들. (photo 조영회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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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대학원 3학기에 재학 중인 전혜란(29)씨는 내년 8월 졸업식에서 고려대와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등 2개 대학이 수여하는 석사학위를 동시에 받을 예정이다. 고려대가 정보통신부 선정 ‘블루오션형 인력양성 교육기관’으로 뽑혀 2006년 조지아공대와 복수학위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고려대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대학원 운영으로 정통부로부터 지원 받는 금액은 총 120억원. 현재 전씨와 함께 이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1기 수강생은 17명이다. 학교 측은 2기 입학생 모집을 앞두고 있다.
고려대, 조지아공대 수업 화상으로
최근 국경을 초월한 대학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국내 대학과 해외 대학 졸업장을 한꺼번에 딸 수 있는 복수학위제를 운영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한국형 토종 MBA’ 과정 개설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서울대는 미국 듀크대와 손잡고 복수학위과정을 운영한다. 서울대에서 MBA를 수강하는 학생이 듀크대에서 10개월간 MMS(Master of Management Studies·경영학 석사 전공특화과정) 과정을 밟을 경우 서울대와 듀크대 학위를 동시에 받게 된다. 서울대 의대 역시 지난 7월 러시아 국립모스크바의대와 복수학위협정을 체결했다. 이밖에도 건국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와, 서울산업대는 영국 노섬브리아대와, 한국정보통신대학교는 미국 카네기멜론대와 각각 복수학위제를 운영하고 있다.
복수학위 열풍은 지방대와 전문대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과 몽골의 주요 대학을 상대로 복수학위제를 운영 중인 전북대는 일본 명문대학들과 복수학위제를 운영하기 위해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고 있으며, 영남대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농과대학)와 복수학위제를 운영 중이다. 전문대 중에서는 경기 안산1대학이 영국 국립치체스터대학과 복수학위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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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학위제를 시행하는 대학들은 철저하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한다. 따라서 학생에게 요구하는 지적 수준도 상당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영어 실력. 대부분의 교육과정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로 능숙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다. 일례로 고려대가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요구하는 영어 자격 요건은 토플 성적 PBT 550점 이상이다.
한 번에 2개의 학위를 받는 만큼 교육과정 역시 까다로운 편이다. 고려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대학원 수업의 40%는 실시간 화상강의로 진행된다. 조지아공대에서 실시되는 수업을 현지 학생들과 함께 듣는 것이다. 직장(삼성전자)을 휴직하고 이 대학원에 다니는 김혁(36)씨는 “학기 초 영어 때문에 수업을 따라잡느라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조지아공대 수업은 매주 과목당 과제가 주어지기 때문에 수업 강도도 만만찮다. 지난 학기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은 전혜란 씨는 “여기 입학한 후 대부분의 시간을 일명 ‘24-7(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 일한다는 뜻)’로 불리는 연구실에서 보낸다”며 “나뿐 아니라 재학생 대부분이 집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라고 했다.
시행 첫해 과정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친 고려대는 여러 면에서 기존 복수학위제를 운영해온 대학들과 구분된다. 현지 커리큘럼을 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화상강의와 파견교수 운영제로 보완한 고려대와는 달리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복수학위제는 ‘일정 기간 현지 대학 수업 수강’을 원칙으로 한다. 총 4학기 과정이라면 1~2학기는 현지 유학을 통해 수업을 이수해야 복수학위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인 것이다. 또한 고려대의 경우, 정보통신부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아 운영되므로 수강생 전원이 조지아공대 등록금 전액 면제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나머지 대학은 해외대학 입학금과 등록금을 포함한 학비 전액을 학생 개인이 부담하도록 돼 있다.
이런 현실적 제약 때문에 현재 개설된 복수학위제는 대부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올해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학생 중 듀크대로 복수학위를 따러 간 학생은 3명뿐이었다. 듀크대가 서울대 지원자 10명 중 5명의 입학을 거부했고, 승인된 5명 중 2명은 비싼 학위 때문에 입학을 포기했다. 듀크대에서 10개월간 MMS 과정을 이수하려면 약 3만7000달러(3400만원)가 필요하다. 미국 아메리카대학과 LLM(Master of Laws·법학 석사) 복수학위제를 운영하는 연세대 법학과 대학원의 경우도 비슷하다. 복수학위를 취득하려면 미국에서 1년간 공부해야 하는데 이에 소요되는 학비만 약 3만5000달러(3200만원)인 것으로 추산된다.
과정 개설에 치중한 나머지 실제 운영에는 소극적인 학교 측 태도와 학생의 준비 부족도 복수학위제 정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중앙대학교는 1999년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IIT)과 학사과정 복수학위제를 체결했지만 실제 이 과정을 마친 학생은 현재까지 1명에 불과하다. 중앙대 목기현 국제교류 담당자는 “대부분의 학생이 2학년을 마친 후에야 복수학위제를 준비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며 “복수학위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1학년 때부터 미리 준비하고 성적을 관리해야 최소 졸업요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반쪽짜리 복수학위제’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충북대와 구미1대학, 포항1대학의 경우 복수학위협정을 맺은 해외 대학 재학생에게 학위를 준 사례는 있지만우리나라 학생이 상대 대학의 학위를 복수 취득한 경우는 한 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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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학은 학위 취득 한 건도 없어
고려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사업단 유혁 단장(컴퓨터공학과 교수)은 “시행 초기 우리와 미국의 학제가 달라 양자를 조율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유 단장은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성취도가 높아 졸업생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며 “일선 기업 입장에서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우수 인재를 양성할 수 있어 활용해볼 만하다”고 귀띔했다.
현재 고려대 외에 성균관대·한양대·카이스트(KAIST)가 정통부로부터 ‘블루오션형 인력양성 교육기관’으로 선정된 상태. 정통부는 고려대의 운영 성과에 따라 나머지 대학에도 복수학위제 지원을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한승욱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과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