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chosun] "가장 좋은 교육은 자신감 심어주는 것… 한국인의 교육열이 나를 있게 해" 미 교육개혁의 주역, 미셸 리 워싱턴DC 교육감 |
‘그녀를 인터뷰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설 연휴를 일주일쯤 앞둔 지난 1월 말, 출범 1개월째에 접어든 대통령직인수위가 연일 ‘쓰나미’를 방불케 하는 교육 개혁안을 쏟아내던 시점이었다. 그중에는 ‘중앙(교육인적자원부)이 갖고 있던 교육 관련 권한의 상당수를 시도교육청 및 교육감에게 이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준비 안 된 시도교육청에 덜컥 교육행정을 맡기는 건 시기상조다’ ‘재정 자립 없는 교육 자치가 무슨 의미 있느냐’….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미셸 리(Michelle Rhee·38). 한국 이름 이양희. 재미동포 2세. 미합중국 최초의 한인 교육감인 동시에 워싱턴DC 사상 40년 만에 등장한 비(非)흑인 교육감. 아드리안 펜티 시장의 전폭적 지지 속에 작년 7월 교육감 전격 취임…. 그녀의 성공기는 미국 현지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작년 12월 22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녀의 교육 개혁을 와이드 인터뷰 형식으로 대서특필했다.
워싱턴DC 교육감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교육행정 최고직이다. 지역 내 146개 공립학교 학생 4만9000명과 교직원 1만1500명을 총괄하는 것은 물론, 도합 33억달러의 연간 예산을 집행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막대한 예산 규모에도 불구하고 ‘대표적 공교육 실패 지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취임 후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시 의회에 교직원 해고 권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교사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는 그는 현재 100여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23개 공립학교를 폐쇄하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다.
미셸 리의 답장이 도착한 것은 이메일을 보낸 지 꼬박 25일 만인 지난 2월 24일이었다. ‘답변이 늦어 미안하다.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는 짤막한 메시지를 곁들인 메일에는 18개 질문지 아래 그의 답변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교육감이 되고 보니
공교육의 가능성 믿어… 학교 내 모든 문제가 도전 과제
내 딸들도 공립학교로 옮기고 나의 ‘실험교육’ 받게 해
정부 교육에 비판적이던 시민단체 대표에서 정부 소속 관료로 입장이 바뀌었다. 이전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사실 달라진 건 전혀 없다! 나는 항상 공교육의 가능성을 믿어왔다. 공교육의 잠재성은 무한하며 학생들을 위해 봉사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은 스스로를 성공으로 이끌 매력적인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런 강한 믿음 덕분에 (교육감이 돼 달라는) 제안에 빠르고 분명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펜티 시장의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펜티 시장)가 지금과 같은 교육 체계에서 일할 사람으로 날 원한 것인지 궁금했다. 사실 바람직한 교육 시스템은 어른의 관심이나 영역을 챙기기 이전에 아이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인데, 당시 구도로는 그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나는 펜티에게 “정치가가 아닌 진짜 교육가를 원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내가 원하는 시스템 아래서 일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 개혁을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 교육계에서 시 교육감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예전에는 시장이 지역 내 교장과 교육감의 요구 사항을 잘 알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대부분의 결정이 교육위원회 전원의 승인을 받아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에 시장이 교육위원회를 대신해 학군(school district)을 운영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이 바뀌면서 내 위치도 조금 특별해졌다.”
- ▲ 교육감에 선출된 후 기자회견장에 선 미셸 리.
취임 후 가장 주력해온 부분이 있다면.
“취임 첫해에는 미래에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초를 닦는 데 힘을 쏟았다. 올해 추진해야 할 또 다른 목표는 교사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시내 모든 교사를 대상으로 커리큘럼과 평가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제작할 수 있도록, 성적 나쁜 학생의 부진 원인을 발견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계획이다. 따지고 보면 학교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내게는 도전해볼 만한(challenging) 과제인 셈이다.”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당신의 처지는 득이 됐나, 실이 됐나.
“득이 될 것도, 실이 될 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이 조직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이끌 첫 번째 코리안 아메리칸 출신 교육감이라는 것, 흑인이 대다수인 이 지역에서 내 인종적 배경이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늘 자각하고 있다. 나는 내가 실험하는 교육을 내 아이들에게도 받게 하려고 두 딸을 워싱턴DC 내 공립학교로 전학시켰다. 물론 워싱턴 DC는 여전히 미국 내에서도 교육 격차가 가장 심한 곳이며 모든 학생이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학부모의 인식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아프리칸 아메리칸과 히스패닉 가정의 열악한 교육 여건과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뛰고 있는 나를 그들이 인정해주고 있다고 믿는다.”
교육감이 되기까지
능력 위주의 교사 채용 법안 통과됐던 게 가장 큰 보람
교육은 내가 배운 것들을 투자하는 최선의 방법
좋은 학벌에도 불구하고 빈민가 교사직을 자원해 3년이나 활동했다. 교육 불평등 문제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나.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내 학력을 활용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인 동시에 책임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교사의 자질은 수많은 어린이의 일생을 좌우할 만큼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교육이야말로 내가 배운 것들을 투자하는 최선의 방법 아닐까?”
‘새 교사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기억은.
“‘새 교사 프로젝트’ 시절 동료들과 이룬 업적이 모두 자랑스럽지만 특히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 잭 스콧과 함께 추진한 법안이 기억에 남는다. 학교가 교사를 능력 위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한 그 법안이 2006년 입법화되며 캘리포니아 내 모든 학교의 학업 능력이 향상됐다. 성적이 저조했던 학교들이 이 법안으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물론이다.”
상당 부분 개선되긴 했지만 한국의 교원단체는 좋은 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에 무게중심을 두기보다는 여전히 이익단체로서의 성격이 강한 편이다. ‘새 교사 프로젝트’가 10년 넘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의 내부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교원단체와 각급 학교들이 학생의 학업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얼마든지 힘을 모을 수 있다고 믿는다. 교사든 교육 행정가든 모두 그들의 학생이 성공하길 바랄 테니까. ‘새 교사 프로젝트’ 역시 그런 믿음을 갖고 운영해왔고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 교육을 말한다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든 학생 위해 봉사해야
공교육과 사교육, 선의의 경쟁 바람직
한국에서는 지난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새 대통령은 중앙 정부에 집중돼 있던 교육 시스템을 지방으로 이양하고 교육감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궁금하다.
“과거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어땠는지 잘 알지 못해 구체적 답변을 하기에는 조심스럽다. 다만 정부와 각 지역, 그리고 개별 학교의 정책이 ‘학생을 위한 봉사’라는 목적에 맞게 유기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한국이나 미국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세계적으로도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알고 있나.
“물론! 내 부모님 역시 한국인이니까.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항상 교육의 가치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나 역시 지금 내 아이들에게 그 믿음을 전해주고 있다.”
부모님께 받은 교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틈날 때마다 내게 책을 읽어주셨다. 끊임없이 내 안의 성공 욕구를 일깨워주셨고 매사 잘할 수 있다며 격려해주셨다. 나는 ‘아이들은 기대만큼 자란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어릴 때 기억이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 한국은 높은 교육열로 인해 비대해진 사교육과 제 역할을 못하는 공교육 간 괴리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교육 전문가로서 이 문제에 대해 조언한다면.
“(공교육을 믿을 것인가, 사교육에 의존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전적으로 부모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교육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공교육 체계도 개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각자의 입장에서 학생을 위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새 교사 프로젝트’ 시절 당신은 “불합리한 교원 채용 계약 규정으로 인해 부적격 교사의 퇴출과 열정 있는 교사의 채용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교원평가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어떤 영역이건, 누구건 전문가라면 예외 없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잘한 사람은 보상을 받고 뒤처진 사람은 노력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한국의 교원평가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행되는지 잘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모든 교원을 대상으로 엄격한 평가가 이뤄진다. 평가 결과는 추후 좀 더 나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초 자료로도 활용된다.”
좋은 교사와 좋은 교육
학생에게 귀 기울이고 자기계발하는 고품질 교사 절실
“넌 할 수 있다”는 믿음 주면 학생 스스로 노력하게 돼
펜티 시장을 비롯, 각계 각층에서 당신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임기 중 꼭 이루고자 하는 청사진이 있다면.
“지역 학부모에게 교육과 관련된 광범위한 선택권을 줄 수 있도록 5개년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테면 엄격한 커리큘럼을 갖춘 테마 스쿨(themed schools)과 같은 것이 그 예다. 또한 대학 서비스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 지역인 만큼 성숙한 대학 문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새 교사 프로젝트’의 구성원은 120명에 불과했지만 지금 당신 아래에는 1만1500명에 달하는 직원이 있다. 대규모 조직의 리더로서 당신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조직의 각 부문이 서로를 얼마나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상관(senior staff)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결정된 내용은 즉각 조직원에게 이메일로 통보한다. 무엇보다 투명한 정보 소통 체계를 갖추려 노력하고 있다.”
‘새 교사 프로젝트’는 공립학교와 계약을 맺고 유능한 교사를 양성, 공급해왔다. 볼티모어 교사 시절 ‘좋은 교사가 학교를 발전시키는 핵심’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교사상은.
“매일 교실에서 학생에게 헌신할 줄 아는 교사, 학생의 가능성을 굳게 믿고 그 믿음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교사다. 우수한 교사는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동료들과 꾸준히 공동 작업을 진행하며 현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해 그 결과를 수업에 반영한다. 교육계의 난제들과 끊임없이 씨름하며 늘 학생들을 향해 한쪽 귀를 열어두었다가 그 결과를 다음 번 수업에 활용할 줄 안다. 결단이 빠르며 학생을 존경하고 깊이 믿는다. 이런 교사야말로 고품질 교사(high quality teacher)이고, 교사들이 이런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가장 시급한 목표다.”
그렇다면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
“좋은 교육은 이상적인 교사상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모든 분야에 걸쳐 전문가 수준의 자질을 갖춘 교사에 의해 제공되는 교육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나는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격려하는 교육 또한 좋은 교육이다.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교육행정가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최상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임기(5년)를 마친 후 계획은.
“내 신경은 온통 지금 해야 할 일에 쏠려 있다. 닥친 업무를 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퇴임 이후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미셸 리는?
재미동포 2세로 시민단체서 교육 운동
시장이 발탁… 미국의 첫 한인 교육감
1960년대 미국으로 이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오하이오주의 항만도시 톨레도에서 자랐다. 코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공공정책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중반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라는 시민단체에서 3년간 흑인 빈민 밀집지역인 볼티모어 할렘파크커뮤니티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며 교육 현실에 눈떴다. 1997년 교사 공급, 양성단체 ‘새 교사 프로젝트(New Teacher Project)’를 결성, 교사를 발탁하고 훈련시켜 각급 학교에 공급해왔다.
성과가 알려지며 규모가 점차 확대돼 20개 주 40개 프로그램으로 늘어났다. 이 단체를 거쳐간 교사만 1만여명에 이른다. 교사 자질 향상과 관련, 국회 감독위원으로도 활약했다. 2007년 6월 ‘바닥에 떨어진 공교육 수준을 혁신적으로 끌어올릴 인재’를 찾던 아드리안 펜티 시장의 눈에 띄어 DCPS(District of Columbia Public Schools) 교육감으로 전격 발탁됐다. 역시 교육운동가인 케빈 허프먼과 결혼했으나 이혼, 현재는 두 딸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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