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옹알이 하는 아기와 대화하고 싶다면?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3. 2. 16:25
옹알이 하는 아기와 대화하고 싶다면?
 
[[오마이뉴스 최은경 기자]지난해 보건소에서 마련한 임산부 교실을 듣던 때다. 그날의 수업 주제는 올바른 태교. 한 시간 동안 이런 저런 태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강사가 이젠 뱃속 아기와 대화할 시간이라며 조명을 낮추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었다. 순간, 30여명의 임산부로 가득 찬 강의실 안은 침묵이 흘렀다.

강사는 당황스런 눈치였다. "아니 곧 엄마가 될 사람들이 아이에게 할 말이 그렇게 없냐"면서 "이래 갖고 아이가 어떻게 똑똑하게 크길 바라느냐"고 강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농담조로. 그제야 예비엄마들은 세상에서 가장 닭살스러운 목소리로, 사랑스럽게 배를 어루만지며 아가에서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 "아가야 안녕"으로 시작해서 얼버무리더니 곧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는 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책이야 재밌게 읽어줄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이와 대화를 할라치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건 아이를 낳고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아이와 둘이 있는 집. 오로지 자고 먹기만 하는 이 아이와 무슨 대화를 나눈담. 답답했다. 하루 종일 심심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알지 못했다. 내가 답답한 것만큼이나, 이 아이도 답답했으리라는 것을.

옹알이 하는 아기도 대화하고 싶다

ⓒ 최은경
세상에 태어나 얼마나 궁금한 게 많았겠냔 말이다. 아이는 엄마가 그걸 다 설명해주길 기다리고 있는데 눈치 없는 엄마는 하루 종일 심심하다는 말만 하고 있으니, 그걸 보는 아이도 꽤 답답했지 싶다. <총명한 아이로 키우는 아기 대화법>,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런 내가 '문제' 있는 엄마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사실 '총명한 아이로 키우는'보다 '아기대화법'이라는 말에 마음이 갔다. 누구도 나에게 "아기와 '이렇게' 대화를 나눠봐"하고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아기는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한다면서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기저귀가 젖은 것은 아닌지, 실내가 너무 덥거나, 혹은 춥거나 하지 않은지 잘 살펴주라고만 했을 뿐이다. "아기랑 뭐하고 놀아?"하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백이면 백 "동요 틀어놓거나 노래 불러줘", "책 읽어줘"가 전부였다.

답답했다. '아아아 오오오'하는 아이의 옹알이 소리에 그저 "어어, 그랬어? 아꿍" 기타 등등 아이가 내뱉는 말보다 더 많은, 그러나 나 자신도 뭔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를 말을 주고받으면서, 뭔가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이 늘 고민스러웠던 나는, 우연히 눈에 띈 이 책이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기사 작성엔 육하원칙, 아기대화엔 5원칙

책의 내용은 요약하면 단순하다. 가능한 많은 말을 해주라는 것. 엄마 눈으로 보는 것들을 아이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묘사하고 들려주고 만지게 해주라는 것. 그것은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이든,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든 관계가 없다. 모든 아이들에게 엄마만큼 훌륭한 언어 지도사는 없다는 게 저자 도로시 더그허티의 지론이자, 육아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푸름이 아빠'로 더 유명한 이 책의 역자 최희수씨의 설명이다.

맞다. 너무나 막연하고 새로울 게 없는 '식상한' 이론이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내 주변의 엄마들도 알고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아!'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예를 들어보는 게 좋겠다.

아기와 외출 준비를 할 때, 난 이렇게 말한다. "우리 할머니네 집에 가자. 양말 신고, 아빠 빠방 타고, 슝 가자"고. 그리고 조용히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댁까지 간다. 반면 이 책은 이렇게 말하도록 권한다.

"양말과 신발을 신자. 흰 양말이 두 짝 있어. 네 발을 이리 내봐. 먼저 양말을 신자. 양말 한 짝은 신었고, 한 짝은 안 신었어. 이제 양말 두 짝을 다 신었다. 그 다음에는 신발을 신자. 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신발끈을 묶고 있어."

"닉, 우리는 빵집에 가고 있어. 톰을 위해서 생일 케이크를 살 거야. 우리 옆에 있는 차를 봐. 차 안에 큰 개가 있네. 머리를 차 밖으로 내밀고 있어. 저기 봐. 모퉁이에 빨간색 멈춤 표지판이 있어. 저기서 멈춘 후에 양쪽 방향을 볼 거야. 케이크가 그려진 간판 보이지? 저기가 빵집이야."

차이를 알겠는가? 이 책 속의 엄마라면 내가 아이라도 좋겠다. 저자는 아기와의 대화법으로 5원칙을 제시한다. 기사에도 육하원칙이 있는 것처럼, 저자는 아기대화법에도 5원칙이 있다는 것. 이름 알려주기, 묘사하기, 비교하기, 설명하기, 지시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위 지문들이 바로 이 5원칙을 적용한 대화의 예다.

ⓒ 최은경
이 원칙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 아이와 얼마든지 재미있게 대화할 수 있다. 심심하다는 말을 달고 살지 않아도 되겠다. 심심할 틈이 어디 있나. 입 아프게 설명해주기 바쁜데. 슈퍼마켓에서도, 차 안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집 주변에서도, 요리를 할 때도, 빨래를 할 때도 심지어 볼 일을 볼 때도 사용할 수 있는 요긴한 원칙이다. 감이 잘 안 온다고? 걱정 마시라. 친절한 이 책은 상황별로 정리해 거기에 맞는 아기대화법을 살뜰히 설명해준다. 그대로 한두 번 연습하다 보면, 수다쟁이 엄마가 될 듯.

수다쟁이 엄마가 되자

뭐든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한 질에 50만원씩 하는 전집을 턱턱 '지르는' 엄마들. 백화점문화센터에 등록을 해야 아이에게 뭔가 해준 것 같은 마음이 든다는 엄마들. 언어 특히 영어 교육도 빨리, 음악 교육도 빨리, 심지어 키도 빨리빨리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들.

이건, 좀 아쉽다
 

번역서이다 보니, 원작의 내용에 충실한 건 좋다. 해서 본문 중간중간 외국 아이의 사례를 언급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책 중간 팁으로, 우리 아이에게 적용해 볼 수 있는 동요라든가, 손가락놀이라든가 권장 도서 목록이 모두 미국중심적인 것은 다소 아쉽다.

미국도서관협회 어린이 권장도서 목록보다 연령대별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 동화책 목록을 적어놨으면 어땠을까.

반면 영어동화책에 관심있는 엄마라면 살펴봐도 좋을 내용일 듯.

이런 엄마들이 이런 습관, 아기와 대화하는 습관만 제대로 들여도 유아기 사교육비는 걱정 없겠다.

다양한 소재의 책, 다양한 경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아이와 얼마나 대화하려고 노력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말이다. 굳이 큰 돈 들이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언어학습은 엄마의 사랑이 담긴 대화에서 시작된다.

그 실마리를 '아이의 언어와 지성을 극대화 시키는 실천가이드'란 부제가 붙은 <총명한 아이로 키우는 아기대화법>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