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교 교육과정 대학처럼 개편한다면…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3. 12. 13:14


고교 교육과정 대학처럼 개편한다면…

적성·능력 따라 과목 선택
자기능력 특화할 수 있도록

 

진석용 대전대학교 교수  3월 11일 조선일보

 

   새 정부 교육 정책의 주제는 '자율'이다. '대학 자율'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본고사 부활과 공교육의 붕괴, 사교육비 증가,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학입시 제도를 둘러싼 갈등은 교육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고, 사회계층 간 이해 대립에서 생기는 것도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이 갈등의 밑바탕에 교육주체들 간의 뿌리 깊은 불신(不信)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와 학생은 공교육을 믿지 못해 학원을 찾고, 대학들도 고등학교(의 내신평가)를 믿지 못해 논술이나 본고사를 보려 하고, 정부는 대학을 믿지 못해 입시를 규제하려 하고, 학부모도 대학의 공정한 입시관리를 믿지 못해 정부의 규제 필요성에 공감해 왔다.
   이러한 불신의 고리 속에서 아무도 '불신'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이른바 명문대 졸업장의 위력이다. 너나없이 '명문대' 졸업장을 원하는 이유는 그 졸업장 하나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이 옳든 그르든 입시 경쟁과 사교육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입시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해온 대입정책은 '평등'의 이름 아래 명문대 졸업장을 사회 전 계층에 골고루 나누어 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 소외 계층이나 저소득층 자녀가 명문대에 들어가도록 만들어 놓고, 소외 계층도 저소득층 자녀도 '출세'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증거로 삼으려 하는 것은 일종의 눈속임에 불과하다.
   필자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자체에 대한 반성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이과와 문과의 구별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거의 모든 학생들이 거의 모든 과목을, 그것도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배우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자기의 적성이나 능력과 관계없이 억지로 어려운 과목을 배우면서 날마다 새벽별을 보고 있다.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자율형 사립고교'는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현재 특목고의 '특수목적'이 '명문대 입학'으로 변질된 것처럼 자사고 역시 '자율적으로' 명문대 입학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것이 불을 보듯 빤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대안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대학처럼 최소한의 필수과목을 두고 나머지는 모두 선택과목으로 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면 학년 구분을 두지 말고 수학 I, 수학 II, 수학 III, 수학 IV 등 수준별로 과정을 개설하고 이 중 수학 I만 필수로 하는 것이다. 여타 과목들도 그와 같이 운영할 경우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자신의 '전공'이 생길 것이고, 대학은 이를 고려하여 학생을 선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수능과목을 축소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개선책이다. 현행 교육과정을 그대로 둔 채 수능과목만 축소하는 것은 또다시 대입제도와 공교육간의 괴리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이 제도의 장점 중 하나는 모든 고교에서 수준별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수준별 교육을 시도하는 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학생들 간의 위화감 문제가 있어서 드러내놓고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적성이나 능력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 이런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될 것이다.
   고교 교육과정에서 필수과목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분야별로 심화수업을 해가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루어질 경우 특목고나 자사고가 아니더라도 모든 학교에서 학생 스스로 어느 분야로든지 능력을 자율적으로 특화(特化)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의 연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