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식을 가졌다. 이 대통령의 공약은 당선인 시절부터 이미 한국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747 경제 계획’이나 ‘한반도 대운하 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안이 많지만 아마도 가장 혁신적인 정책은 영어 수업을 영어로 하는 것을 포함, 한국 교육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재구성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아이디어 때문에(이미 영어 수업이 충분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학생들 사이에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일선 학교가 새로운 영어 교육을 어떻게 실시할 것인지를 놓고 교육계 또한 시끌시끌하다. 영어를 어떻게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도무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공교롭게도 나와 같은 외국인의 눈에 한국 사람들의 ‘영어 교육열’은 유난히 낯설게 느껴진다. 그 동안 한국인이 영어를 대하는 자세, 영어를 배우는 방법은 그다지 좋지 않은 인상을 풍겨 왔기 때문이다. 토익 점수를 좀 더 잘 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한국말도 간신히 하는 아이들에게 원어민 교사를 붙이는 한국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정말 잘하고 싶은 언어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가? 그 언어를 배우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사실 많은 한국인들은 모든 유럽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영어 역시 라틴어에서부터 마법처럼 생겨났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이야기도 진실이 아니다. 로마인이 오늘날 영국 영토를 정복했다고는 하지만 그곳을 개척한 것은 서기 4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서 지낸 시간은 반세기 정도에 불과하므로 라틴어를 배울 겨를이 전혀 없었다. 라틴어는 식민지의 지배층과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귀족들을 위해 보존된 것이다. 영국에 살았던 평범한 로마인은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영국에 커다란 희망을 가졌고 도로, 오수처리 시스템, 공공건물 등과 같은 국가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그러나 로마제국이 쇠락하며 410년 로마인들은 영국을 떠났다. 흥미로운 신흥 부자 나라였던 영국은 순식간에 로마에서 온 지도자와 보호자를 잃었다. 동시에 유럽, 특히 북유럽 국가들의 부족 팽창을 위한 손쉽고 매력적인 표적이 됐다.
당시 영국에는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앵글로와 색슨, 주트 등 세 개 종족이 정착해 세력 다툼을 벌였지만 결국 함께 정착했다. 바야흐로 앵글로-색슨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언어, 즉 초기 독일어와 옛 스칸디나비아어는 이곳에 뿌리 내리지 못했다. 영국인을 위한 새로운 언어가 생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이 새로운 나라를 ‘Angleterre’라고 불렀다. 이는 문자 그대로 Angle Land, 즉 ‘앵글족의 땅’이라는 말이다. 훗날 영어가 된 새로운 언어는 ‘Anglish’로 불렸다.
여기서 이야기는 일단락된다. 만약 이게 끝이라면 한국 학생들이 지금처럼 혼란스러워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후 역사는 약간 꼬였다. 1066년 노르만족이 프랑스에 침공, 식민지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사건은 기존 영어 체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법원과 행정부를 포함, 모든 공식 업무는 당시 라틴어와 거의 비슷한 구조를 지녔던 프랑스어로 처리됐다. 하지만 관료의 언어가 라틴-프랑스어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 업무와 관련 없는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직장에서, 거리에서 예전과 다름없이 앵글로색슨어를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영어의 두 갈래가 생겨났다. 일반인이 구어체로 사용하는 앵글로색슨어와 문어체 형태의 공식 언어인 ‘영어화된 라틴어’가 그것이다. 이런 경향은 현대 영어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예를 들어 ‘cow’라는 단어의 기원은 고대 북유럽이지만 ‘document’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혹자는 의아해할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왜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지?’ 그러나 영어의 유래에 얽힌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인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한국인들은 문어체 형태의 공식에 치우친 토익(TOEIC)을 중요시한다. 학교 교육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영어의 형식성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앵글로색슨어를 배우고 익혀야 할 시간에조차 라틴 영어를 가르치는 데 주력한다.
물론 원어민들도 라틴 영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 영역은 형식적 쓰기 활동에 한정되며 일상 대화에서의 사용 빈도는 매우 낮다. BBC에 따르면 영어에 사용되는 단어의 90~95%가 독일어나 스칸디나비아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형식적인 라틴 영어를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한국 학생들은 문어체 영어에는 뛰어나지만 대화 능력은 매우 부족하다.
또한 한국은 6ㆍ25 전쟁 이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주둔 미군 병력 수가 많은 나라였다. 이로 인해 빠르게 진행된 미국화(Americanization) 현상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다. 미군 병사들은 조잡한 비속어들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고 미국 드라마와 팝송에는 공식석상에서 처음 만나는 경우가 일반적인 외국인과의 대화에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표현이 많았다.
요컨대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영어와 과도하게 구어적인 영어가 마구 혼재돼 있다.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영어의 틀을 이루고 있는 양극단을 동시에 강하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구어체와 문어체가 뒤섞인 문장이 종종 아무렇잖게 사용되는데, 이런 현상은 외국인의 눈에 분명 이상하게 비친다. “Hey guys, I will be absent tomorrow!”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이 문장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전형적인 앵글로색슨 구어체 영어인 ‘guys’와 ‘absent’라는 라틴 문어체 영어의 조합은 원어민의 입장에선 어색할 뿐 아니라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교육자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어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가르쳐 학생에게까지 전파하면 된다. 사실 문어체 영어와 구어체 영어는 우열 관계에 있지 않다. 비밀은 중도(middle way)를 택하는 데 있다. 즉 회의석상에서나 친구를 만났을 때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세계 어디서든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최적의 영어 의사소통 체계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토익 점수에 의존해 누군가의 영어 실력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보다 간편하게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토익에 대한 강박관념을 내버려둔다면 앞으로도 구어체 영어를 희생해가며 라틴 영어를 배우는 데 시간을 쏟아 붓는 행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어 역시 영어와 마찬가지로 문어체와 구어체가 엄연히 존재한다. 양자 간 차이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범주의 언어다. 그러나 영어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한국인 학생의 경우 영어 단어 하나를 배울 때에도 구어체 영어와 문어체 영어의 기본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만약 이 과정을 무시한 채 기계적으로 단어를 익힌다면 이후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될 것이다.
“Hey guys, I will be absent tomorrow”를 “Sorry, I can’t come tomorrow”로 바꾸는 것은 그렇게 큰 혁명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의 영어 교육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극단적인 구어체와 문어체가 뒤섞여 있는 현행 영어 교육 체계에 중립성(neutrality)을 부여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중도가 최선인 법이다. 그것이 언어 문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 팀 알퍼(Tim Alper) |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로 현재 코리아IT타임스(ittimes.co.kr) 에디터. 영자지 코리아헤럴드·코리아타임스·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칼럼 기고. 파고다어학원 영어 강사역임.
- 극단적 구어체와 문어체 뒤섞인 이상한 한국 영어 해결을 위한 몇가지 제안
- ①토익영어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
②영어의 뿌리부터 알아야 발전
③구어체도 제대로 된 구어체를
④먼저 교육자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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