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솔(TESOL)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는 교육과정
‘Teaching 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 사용자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쯤 된다.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은 수십개에 이르며 그 구분 기준은 둘로 나뉜다. 학습자가 영어권 국가 내에 거주하는지의 여부가 첫째, 교육 내용이 ‘영어’냐 ‘영어교육’이냐 하는 것이 둘째다. 이 분류법에 따르면 테솔은 영어권 국가 내에 거주하는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교육 방법론에 해당한다. 수많은 영어 교수법 중 하나일 뿐, 전체를 대표하는 고유명사는 아니다.
지난 2월 한국외국어대 테솔 연구과정 주임을 맡고 있는 김해동 교수는 한 방송사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기자는 김 교수에게 “한국외대 테솔(TESOL) 연구과정 반별 정원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15명 내외의 정원을 지켜 분반까지 마친 상황에서 받은 질문에 해명을 마친 후 김 교수가 들은 사연은 이랬다. 한국외대는 올 초 2008학년도 전기 테솔 연구과정 신입생을 추가 모집했다. 지원자가 120명 안팎일 것으로 예측했던 학교 측은 뚜껑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 학기에 비해 3배 이상 지원자가 몰린 것. 부랴부랴 방학 중이던 다른 과 교수들에게 지원을 요청해 면접을 치르고 최종 선발된 인원은 299명. 경쟁률은 1.5 대 1 이었다. 방송사에 제보 전화를 한 이는 이번 전형에서 탈락한 지원자였다. “갑자기 사람이 몰렸는데 교실이나 교수 수를 늘릴 수 없을 테니 아마 무리하게 한 반에 몰아 수업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 최근 불어닥친 ‘테솔 열풍’을 보여주는 사례다.
- ▲ 테솔 과정을 수강하려면 이론 수업에 치우친 커리큘럼보다 수업시연 등 현장실습을 강조한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photo 조선일보 DB)
거센 테솔 열풍
“영어전용교사로 활용 가능” 인수위 발표가 불 댕겨
“테솔 이수자만 특혜 주나” 반발 여론도 거세
“영어공교육 강화를 위해 현재 초·중·고교에 배치된 영어 교사 3만3000명 이외에 2013년까지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전용교사(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를 2만3000명 추가 채용하겠다.”
“영어전용교사 자격은 영어권 국가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와 전직 외교관, 상사 주재원, 그리고 테솔 이수자 등에게 우선권을 주겠다.”
지난 1월 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영어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내놓은 지 한 달여가 흘렀다.
영어 이외의 과목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 몰입교육 계획’이나 무능한 교사 퇴출을 위한 ‘영어교사 삼진아웃제’ 등은 발표 단계에서 한 차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영어전용교사 문제는 여전히 논란에 휩싸여 있다. 특히 영어전용교사 선발 자격 중 하나로 이경숙 당시 인수위원장에 의해 직접 언급된 테솔은 ‘이경숙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낳으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테솔 붐을 타고 올 초 학생 모집에 나선 국내 테솔 과정 개설 대학들은 밀려드는 지원자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 전 위원장이 총장이던 숙명여대가 국내 최초로 테솔 과정을 개설했다는 점 때문에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인수위 발표 직후 이주호 사회교육문화수석 비서관(당시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이 “테솔 자격증만 가졌다고 영어전용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어떻게 시작됐나
북미서 이민자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
숙대 1997년 첫 도입…10여개 대학서 5~6개월 과정 운영
- 테솔은 이민자 인구가 많은 북미 지역에서 이들에게 체계적인 영어교육을 시키기 위해 생겨난 프로그램이라는 게 정설이다. 테솔 과정이 발달된 곳 역시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 즉 미국과 캐나다, 영국, 호주 등이다. 우리나라에는 1997년 숙명여대가 미국 메릴랜드대학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처음으로 등장해 올해로 도입 11년째를 맞는다. 이후 성균관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이 앞다투어 테솔 과정을 개설, 현재 국내 10여개 대학이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표 참조> 대학 이외에 사설 학원 등에서도 테솔 단기과정을 개설해 자격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각 대학이 마련한 테솔 과정은 대개 6개월 전후면 수료가 가능하다. 수업료는 350만~400만원 선. 선택과정인 해외 인턴십 등은 추가 비용이 든다. 숙명여대와 부산외국어대, 성균관대 등에는 단기과정과 별도로 테솔 특수대학원 과정이 마련돼 있다. 대학별 커리큘럼은 비슷비슷한 편. 한국외대의 경우 테솔 연구과정에 개설된 교과목은 영어, 테솔 방법론Ⅰ(듣기·말하기·발음)·Ⅱ(읽기·쓰기·문법), 문화연구 및 활용론, 교재 개발론, 제2언어 습득론, 테솔 미디어론, 평가도구 개발론 등 모두 8가지다.
문제점은 뭔가
“한국인이 배워 한국인을 가르치기엔 부적절
원어민 수준 영어구사력 없으면 효과 의문”
“테솔 이수자에게 영어교사 자격을 주자는 사람 중 테솔의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이화여대 언어교육원장을 지낸 오석봉 JC링구아 언어연구소장은 테솔 열풍을 운운하기 전에 테솔에 대한 이해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테솔은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에게 자국의 언어를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how to teach)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한국인이 배워 한국인을 가르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학문이다. 설사 배운다 해도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사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현직 교사, 그중에서도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교사가 테솔 이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다. ‘한국형 테솔’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행 지식 없이 테솔 단기과정을 이수한다면 제대로 된 영어수업을 위해 영어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 소장은 테솔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교육부 조사 결과를 보니 현행 영어교사 중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교사가 50% 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테솔의 1차 적용 대상입니다. 나머지 교사들에게는 교수법을 가르치기 전에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게 먼저입니다. 테솔은 그 이후 단계죠. 2단계 훈련을 거쳐 영어도, 수업도 안 되는 교사들은 퇴출시키면 됩니다.”
제재 없이 남발되는 테솔 관련 자격증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가 허술하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는 각 대학 및 사설 교육기관이 자체적으로 테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출석률과 학점 등 내부 규칙에 따라 소정의 절차를 마치면 이수증을 발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관리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도, 검증 절차도 없는 상태다. 다행히 최근 영어공교육 정책과 관련, 테솔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정부 측에서도 대안 마련에 착수했다. 실제로 테솔 과정을 운영 중인 대학들은 올 초 한승수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프로그램 관련 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테솔을 둘러싼 최근 논란은 정책 결정에 있어 면밀한 검토 과정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시간적 제약 등 다른 조건이 앞섰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영어공교육을 왜 개혁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며, 효과적인 실행 방법은 무엇인지 좀 더 찬찬히 연구했더라면 논란이 뻔히 예상되는 정책을 발표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외대는 교육인적자원부에 테솔 전문대학원 설립 신청서를 냈다가 거절 당했다. 테솔 전문대학원이란 법학 전문대학원(로스쿨)과 마찬가지로 학부 없이 대학원 과정만으로 해당 학문을 공부하는 학제다. 이를 위해 한국외대는 잘나가던 사범대 영어교육과와 교육대학원 영어교육전공을 없애는 결정을 하면서까지 전문대학원에 의욕을 보였지만 고배를 마셨다.
당시 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했던 한 교수는 테솔을 둘러싼 최근 과열 현상을 두고 “우리가 한 학기만 행동이 느렸어도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