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다잡기

한국 선수 금메달에 나는 왜 눈물을 흘리나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8. 14. 21:20

[정부수립 60주년]

한국 선수 금메달에 나는 왜 눈물을 흘리나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08.14 19:11

 

ㆍ한국인의 전통적 국가 인식

박태환은 왼쪽 가슴에 손을 얹지 않았다 최근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과 여자 양궁대표팀(아래). 국기 게양 때 가슴에 손을 얹은 매우 익숙한 장면을 연출한 양궁대표팀과 가슴에 손을 얹는 대신 양손으로 꽃다발을 든 낯선 박태환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최근 베이징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의 시상식 장면을 두고 작은 논란이 일었다. 박 선수가 시상식장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양손으로 꽃다발을 든 채 웃으며 서 있었던 것을 두고서다. 네티즌들은 그가 왼쪽 가슴에 손을 얹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똑같이 금메달을 딴 유도의 최민호 선수도, 여자 양궁 선수들도 모두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는데, 왜 박 선수는 그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선수가 다른 나라 선수들처럼 그냥 꽃다발을 들고 서 있어 더 보기 좋았다는 네티즌도 있었다.

박 선수는 1989년생이다.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은 96년. 많은 현장 교사들 사이에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확산돼 있던 때였다.

하지만 그 이전 세대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는 오후 5시 또는 6시만 되면 길을 걷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일시 멈춤' 상태로 서서 어딘가에 있을 태극기를 향한 채 가슴에 손을 얹고 암송해야 하는 주문이었으며, 어떤 자리에서건 '애국가'에 앞서 읊는 레퍼토리였다.

경향신문의 '한국인의 국가 정체성' 여론조사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강한 국가주의다. 국가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68.7%로 그렇지 않다고 한 사람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세대별로는 50세 이상의 81.9%, 40대의 70.6%, 30대의 58.3%, 19~29세의 56.8%가 국가를 우선시했다. 국가주의 성향은 박태환 선수가 속한 10대, 20대로 갈수록 약해지고 있고, 지난해의 비슷한 조사(개인 이익보다 공동체 이익 우선이 85%, KSOI 2007년 5월 조사)보다 완화됐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60·70대를 제외한 기성세대는 정규교육 시작과 함께 '국가에 대한 충성'을 훈육 받은 세대다. 6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초·중등 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은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했으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노라'고 수없이 맹세해야 했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나'가 아닌 '국가'를 위해 살 것을 강요받았다. 내가 잘 되는 것은 국가가 잘 되기 위한 것이며, 국가가 잘되는 것은 내가 잘되는 것이라는 '국가 속의 나' '국가 일부로서의 나'에 너무 익숙해 있다. 독립된 자아 혹은 주체로서의 나에 대한 인식은 억압되었다.

이 때문에 누군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면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금메달이 나의 인생 및 나의 성취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금메달- > 국가의 영광- > 나의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수십년간 습득된 문화와 학습의 결과이다.

일제시대 또는 광복 즈음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60·70대에게 국가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내 국가가 없었던 때를 경험한 세대에게 국가는 또다시 잃을 수 없는, 지켜야 하는 그 무엇이다. 이 세대에게도 국가는 여전히 위로부터 주어진 그 무엇이었다. 국가가 허리띠 졸라매고 산업화에 매진하자고 하면 기꺼이 나섰고, 조국의 이익을 위해 남의 나라 전쟁터에 나가라고 해도 순순히 나가야 했다.

한국인을 국가에 충성하도록 훈육시킨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의 모태가 된 일제의 '교육칙어'와 '황국신민서사'가 정작 일본에서는 48년 사라진 뒤에도 한국인들은 반세기 가까이 국가의 주술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는 정부 수립 초기부터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자유주의의 가치가 뿌리내리지 못한 현실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자유주의'는 자유진영, 공산진영이라고 할 때의 '진영 논리'에서 비롯된 반공 수사였을 뿐 개인의 양심, 사상의 자유, 시장 경쟁의 자유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반공과 산업화 구호 속에 본래 의미의 자유주의는 폐기됐다.

또한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제국주의 국가의 잘 발달된 국가기구를 조선에 이식한 결과, 조선 독립 이후에도 경제적 토대나 사회적 기반보다 과도하게 강한 국가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과대성장국가론'으로도 설명된다. 이는 식민지배를 당한 다른 사회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의 경우 더욱 두드러졌다.

국가 우위의 경향은 헌법 조항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의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헌법 첫 머리에 정체(政體=민주제)와 국체(國體=공화제)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독일 헌법의 1조 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불가침이다'로 시작한다. 국가 이전에 개인(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한 것이다. 독일에 유학했던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정치체가 공화정이 됐든, 왕정이 됐든, 입헌군주제가 됐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헌법의 첫 머리에 나오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언젠가부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인도 국가에 먼저 무언가를 바라야 한다"고. 어쩌면 국가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고 설문조사에 응답한 사람들 중에는 국가가 맡아야 하는 공공적 역할에 대한 기대를 담은 목소리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국가에 무엇을 바라건, 국가에 충성을 하건 국가를 전제한 개인을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개인 역시 덩달아 어려움을 겪는다는 전제, 국가를 상정하지 않는 개인을 상상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아직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