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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곤 한글학회 회장 인터뷰 全文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8. 9. 4. 08:57
김승곤 한글학회 회장 인터뷰 全文
 
유석재  유석재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08.09.03 16:39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교육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말 교육을 더 철저히 하는 게 먼저지요. 어린이들에게 영어부터 가르친다면 사고방식 자체가 외래화될 수 있습니다."

8월 30일 한글학회 창립 100돌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열린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만난 김승곤(金昇坤·81) 한글학회 회장은 "한글 공용 63년을 맞은 지금이야말로 다시 우리 말글 살리기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글학회 50주년' 행사를 했던 것은 1971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글학회 100돌은 2021년이 돼야 할 텐데 왜 올해가 100돌이 됩니까?

"전에는 1921년 12월 3일 창립된 '조선어연구회'를 한글학회의 모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새로운 기록이 발견됐지요. 1908년 8월 31일 서대문 밖 봉원사에서 주시경(周時經) 선생의 주도로 '국어연구학회'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1911년의 '배달말글몯움'과 1913년의 '한글모'를 거쳐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학회로 계승됐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1949년 9월 25일 조선어학회가 '한글학회'로 명칭을 바꿔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사진=정경열기자 


―조선어학회와 한글학회라면 아무래도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1942년의 '조선어학회 사건', '조선말 큰사전' 편찬(1929~1957) 같은 일들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요.

"사전 편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극로(李克魯) 박사는 1920년대에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 가 그곳에서 조선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아직 맞춤법 통일안이 없던 때라 칠판에 단어를 쓸 때마다 받침이 달라졌어요. 이걸 본 학생들이 '선생님의 나라에는 사전도 없습니까'라고 물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선어학회가 일제시대에 맞춤법 통일안과 사전 편찬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광복 후 교육·행정·언론 같은 모든 방면에서 큰 혼란이 일어났을 겁니다. 나라는 빼앗겼어도 한글은 지켜냈던 것이지요. 조선일보 문화부장과 편집인으로서 한글 문맹 타파 운동에 앞장섰던 장지영(張志暎) 선생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광복 후 조선어학회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조선일보는 1939년 방종현·홍기문씨 등의 노력으로 철자법을 통일, 신문을 통해 조선어학회의 맞춤법 통일안을 보급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한글학회의 가장 큰 과제가 '사전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57년 '큰사전'이 완간되기까지 한글학회 회장과 이사는 물론, 편찬작업에 참여했던 분들이 밥을 굶어 가면서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원조받은 설탕을 아침마다 물에 타 마셔 허기를 면했다고도 할 정도니까요. 미국 록펠러재단에서 물자를 후원받아 간신히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옛말이나 방언 같은 어휘 수집이 완벽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말큰사전'이나 '표준국어대사전'은 3권짜리인데, 일본 국어대사전은 14권 분량입니다. 우리말 어휘가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어휘 수가 많을수록 문화민족으로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지금보다 권수가 2~3배 많은 사전이 꼭 필요합니다. 옛말사전, 방언사전, 유의어사전, 국어학사전 같은 다양한 사전 편찬도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민간 학술단체로서 그런 사업들을 추진할 만한 여건이 충분하지 않을 텐데요.

"그뿐이 아니라 한글 기념관과 박물관을 만들고 지금 전국에 하나도 없는 주시경 선생 동상도 세워야죠. 북한과의 언어 통일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힘만으론 해 나가기 벅찬 일들입니다. 지난 정부 이창동 문화부장관 때부터 연구비를 배분하는 권한을 국립국어원으로 넘기면서 한글학회로의 지원금도 크게 줄었습니다.

 

일제시대 사전 편찬 때는 부자들이 '내가 가진 돈을 나라를 위해 써야 되겠다'는 생각에 비밀 후원단체까지 조직했는데, 얼마전 100돌 기념사업 협찬을 요청했더니 국내 100대 기업 중 도와준 곳은 삼성전자 하나뿐이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 발표자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동경외국어대 교수는 "한글은 점토판이나 뼈에 새겨진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다른 문자와는 달리 문자를 만든 이유, 원리, 용법을 기술한 '훈민정음'이라는 서적의 형태로 등장했던 경이적인 문자"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무엇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읽기 쉽고,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점이지요. 또한 음소(音素) 글자이기 때문에 한 글자에 음이 하나밖에 없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영어를 예로 들면 'C'라는 글자만 볼 때 'ㅅ'과 'ㅋ' 중 무엇으로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세계 모든 나라의 언어를 다 적을 수 있을 정도로 모음의 수가 많은 것도 장점입니다. 우리나라 정보화의 속도가 빨랐던 것도 바로 한글의 우수성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한글 파괴와 우리말 오용현상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상천외한 말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거친 행동으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 나라가 혼란한 것이지요.

 

존댓말을 잘못 쓰는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 어디 가요'라고 하는데, 이것은 예전에 서울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잘 했어요' '또 와요'라는 식으로 부드럽게 쓰던 말투입니다. 어른에게는 '어디 가세요' '어디 가십니까'가 바른 말이지요. '얼짱' 같은 이상한 신조어는 쓰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대 한국인은 호칭문제에서도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우선 '오빠'라는 호칭이 분별없이 쓰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 남편에게 '오빠'라는 말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오누이 사이에서나 쓰는 말입니다. 아마도 일본에서 젊은 여성들이 자기보다 조금 나이 많은 남성에게 '미짱'이라는 친근한 호칭을 사용하는 걸 본뜬 것 같습니다. 같은 과 남자 선배에게 '오빠'라 부르는 것도 안 되는 일입니다. 이름 뒤에 '씨'를 붙여 부르는 게 맞습니다.

 

3인칭 대명사인 '자기'를 2인칭으로 쓰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국문과 학생들도 이러는데, 대학이 학부제가 되다 보니 국문학을 배우는 학생들도 문법 과목을 안 듣고도 졸업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6·25 이후부터 형부가 처제에게 반말을 쓰는 일이 일어났는데 이것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처제에게 '해라'체를 쓰는 것은 원래 '쌍놈들'이나 쓰던 어법입니다. 예전에는 장가를 갈 때 시집가지 않은 처녀는 인사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자기 부모에게 '아버님' '어머님'이라 해도 안 됩니다. '님'이나 '어른'이란 말을 붙이면 '당신과 나는 혈연관계가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인어른' '장모님'이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장인 장모에게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는 것 역시 잘못됐습니다.

 

부부 사이의 반말은 원래 시부모 앞에서나 쓰는 것이고, 양반 집안 부부는 서로 존대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 어디서나 예사로 반말을 쓰고 있어요.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을 조심하고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친한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동생을 '숙부'라 하면 이것은 관계를 나타내는 '걸림말'입니다. '삼촌'이라 하면 촌수를 나타내는 '촌수말'이지요. 하지만 숙부를 부를 때 '숙부'나 '삼촌', 심지어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한자로 부르면 고상한 건가요? 2인칭 '입말'인 '아저씨'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한글학회는 줄곧 '한글 전용론'을 주장해 사실상 사회적으로 관철시켰습니다. 하지만 최근 다시 한자(漢字)를 혼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註: 사실 기자는 한자 혼용론자 쪽이지만, 인터뷰 기사란 인터뷰어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큰일 날 일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한글밖에 모릅니다. 우리 민족이 우리 땅에서 난 채소와 김치와 고추장을 먹고 자라나듯이, 우리말을 써야 우리 고유한 정서와 문화와 애국심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말이란 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겠습니까?

"세계 몇 나라에 있는 한국문화원을 지금보다 훨씬 더 확대하고 증설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외국 대학의 한국어학과들도 더 많이 생기도록 노력을 기울여야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들 자신이 바른말과 우리의 토박이말(고유어)을 쓰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한자어 '징조(徵兆)'와 같은 뜻으로 '느지'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지무리다'는 말을 아는 사람은 드문데 이것은 요즘 함부로 쓰는 '왕따한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것들을 자꾸 살려내 많이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아이스크림' '원피스' '텔레비전' '햄버거'처럼 이미 굳어진 외래어야 어쩔 수 없겠지요."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김승곤 회장


1927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서 우리말의 기원과 토씨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65년부터 한글학회 회원이었으며, 한말연구학회 회장과 외솔회 이사를 지냈다. 현재 건국대 명예교수다. 지난해 3월 고 최현배·허웅 선생 등을 계승한 한글학회 1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가장 아끼는 물건은 '큰사전' 편찬을 주도했던 한글학자 정인승(鄭寅承) 선생에게서 받은 병풍이며, 존경하는 인물은 세종대왕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