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영어 공교육 성공을 위한 8가지 제언 * 1. 미래 사회에 영어로 의사소통 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부터 조망해본다. 2. 영어 교육의 목표부터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3. 영어에 대한 성취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4. 10년 이상 학교를 다니고도 왜 영어로 의사소통을 못하는지 그 이유를 바르게 알 필요가 있다. 5. 교사와 학습자가 언어 습득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6. 어휘와 문법 교육을 표현(말하기, 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7. 영어교과서 제도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8.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이 제 역할을 하도록 기획, 개발되어야 한다. |
Q.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이 문제가 많다면, 어떻게 해야 한국 영어 공교육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A. 인수위가 내놓은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은 방향성에서는 공감이 가는 것이 적지 않았으나, 이런 큰 혁신을 추진하면서 원칙과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던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혁신의 성공 제1원칙으로 혁신의 중심에 서야할 영어교사들의 의견, 그리고 영어 교육의 이해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까지 충분히 듣고,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제대로 거쳤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어 공교육은 혁신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혁신해야 할지에 대한 제 개인적인 의견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미래 사회에 영어로 의사소통 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부터 조망해본다.
이번 영어 몰입교육 도입이나 영어로 하는 수업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영어를 누구나 다 잘할 필요가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꼭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yes로 보느냐 no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영어교육정책이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와 관련해서 미래 사회의 큰 특징은 영어가 점점 더 세계 공용어로 되어 간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미래 사회는 국가 간 이동도 매우 많을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예측합니다. 더 좋은 교육기회를 찾거나,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주가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통신기술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으로 빠르게 통합되어가고 있습니다. 경제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의 신경망처럼 연결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젠 국경과 같은 물리적인 거리 개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영어 교사들도 한국의 영어 교사들끼리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전 세계 영어 교사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고민과 경험을 나누어야 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세계의 누구에게나 물어보고 의사소통을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미래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Google 검색엔진과 같은 지적 자산을 세계인들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Think globally, act locally 해야 합니다. Think globally 하려면 세계의 여러 나라 공무원들과도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상의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세계 시민이면 누구나 영어를 배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영어로 된 정보와 지식을 바로 이용할 수 있는 국가, 사회, 개인은 그렇지 못한 국가, 사회, 개인보다 매우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 개인이 지금 시점에서는 영어가 필요없다고 판단하더라도 5-10년 후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외국어는 그때 가서 배우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그래서 세계 공용어인 영어는 누구나 사회인이 되기 전에 배워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Future-ready를 위해 꼭 필요한 사항입니다. 그리고 통계에 의하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English-divide는 결국 Education-divide를 심화시키고, 나아가 소득 양극화를 악화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부의 양극화를 완화시키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대부분의 학습자들에게 영어 교육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2. 영어 교육의 목표부터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최근 영어 공교육 실천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을 때 '의사소통능력 = 회화능력'처럼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정말 잘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회화능력', 즉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영어 능력은 보통 BICS(basic interpersonal communication skill)와 CALP(cognitive academic language proficiency) 2가지로 나눠서 말하기도 합니다. 전자는 일상 생활영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학문적 내용까지 토론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정부가 말하는 '회화능력'은 전자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거나 모호하게 한 말일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활영어를 의미하는 '회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영어 교육을 반대합니다. 이는 나중에 심각한 문제를 낳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식기반 사회를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영어 독해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수많은 지식과,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영어로 된 책을 바로 읽을 수 없다면 국가는 물론 개인도 경쟁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얘기하려면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영어로 된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다보스 포럼에 가서 세계의 다양한 문제를 영어로 토론하려면 영어로 된 관련 내용을 평소에 엄청나게 읽어야 합니다. 대학에 가서는 어떻게 원서로 학습할 것인가요? 영어 리포트는 모두 구어체로 쓸 것인가요? 안 그래도 한국인의 영어 에세이에는 구어에 쓰는 표현과 단어가 너무 많은 것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회화의 스킬(how to say)과 말할 내용(what to say), 이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할 내용'은 말하는 사람의 인지수준에 걸맞은 것을 의미해야 합니다. 그저 외국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고, 길을 묻고,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정도는 대부분 여행사가 다 해결해줍니다. 굳이 공교육에서 영어로 하는 수업을 도입하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대학 입시에서 말하기 능력만 평가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앞으로 정부와 언론 모두 읽기(reading) 중심의 교육을 말하기 중심으로 바꾸어야 하는 듯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통은 영어 회화나 토론도 Reading 자료를 토대로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Reading과 회화/토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Reading과 Listening이 회화의 밑거름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다독(extensive reading)의 붐이 수 년째 일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많이 듣고 읽지 않으면 말할 수도 없고, 말할 내용(what to say)도 없습니다. 한국의 영어 교육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통합된 균형된 커리큘럼을 지향해야 합니다. 영어습득과 관련해서 유명한 가설 5가지를 발표한 Krashen 교수가 몇 년 전에 대만 영어교육학회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주장을 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회화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전국에 영어도서관을 지어 많이 읽게 하라. 그리고 나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 영어 회화가 필요하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영어 회화를 배우면 된다. 엄청난 양의 읽기를 한 사람은 회화를 배우기가 아주 쉽다. 영어 발음은 통하기만 하면 되지 영미인처럼 발음할 필요도 없다."
그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What to say를 먼저 해결해 두면 나중에 How to say에는 그리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많이 읽고 들을 때 살아있는 어휘와 문법 지식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책들은 오디오가 딸려 나옵니다. 따라서 Reading은 어휘, 문법, 회화, 쓰기 교육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독(extensive reading)을 공교육에 잘 접목하는 것은 영어 이머전 교육의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어교육정책을 다루는 분들이 읽기/듣기와 말하기/쓰기와의 관련성을 말하는 다음 내용을 잘 고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When they have done sufficient listening/reading, many such things pop up correctly in their speech and writing. So there is gradual general improvement in correctness of both speech and writing.
3. 영어에 대한 성취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영어를 EFL로 규정해 왔습니다. 이는 영어를 영미의 모국어로 보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이젠 영어는 지구촌 공용어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EFL 패러다임을 EIL(English as an international language)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는 많은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우선 EIL은 표준(standard)이 EFL의 표준과 매우 다릅니다. EFL을 표준으로 삼을 때는 발음만 하더라도 영미인의 표준 발음과 가장 가까운 발음을 가장 좋은 발음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이상 한국을 포함해 종전의 EFL환경의 국가들은 영미어에서 탈피해 중립적인 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세계적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의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할 때 왜 영미의 발음을 고집해야 하고, 왜 영미인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관용표현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영미인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그 수많은 관용표현만 쓰지 않아도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은 1/3 이상 줄어들 것이 자명합니다.
쉽고 간명한 표현만 쓰기로 하는 것이 공평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영미인들이 외국인과 영어로 말할 때는 아주 쉽고 간명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지구촌 시민의 기본 예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미를 포함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 사람들이 아시아 국가사람들과 영어로 말할 때는 아시아의 가치, 문화 그리고 아시아 각국의 모국어 영향을 받은 영어(Asian Englishes)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영어가 세계어가 되었고, 지구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20억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영미 영어는 세계의 수많은 영어(Korean English, Chinese English 등을 포함) 중 하나일 뿐이란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언어제국주의일 뿐입니다. 이런 주장은 세계의 수많은 영어교육학회에서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습니다. 이런 주장의 시발점은 영국의 학자들(David Crystal, David Gradol)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잘 모르는 분들은 이러한 주장이 제3세계적 주장 같이 들린다고 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하나둘씩 교과서에 world Englishes를 다루는 나라가 나타날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영어 표준, 특히 발음에 있어서 유연한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와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영어가 영미의 발음과 많이 차이나지만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이제 영어 발음은 이해 가능할(intelligible, understandable) 정도면 족합니다. 이런 세계적 추세를 한국의 영어 교육 학계가 과감히 받아들일 때, 조기 유학 다녀온 영어 발음이 좋은 아이들 때문에 영어로 수업하기가 겁이 난다는 한국인 영어 교사들도 떳떳이 영어 교육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영어 실력의 차이는 학생이 몇 학년인가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학생들 간의 수준 차이가 천차만별입니다. 지금은 대학생이나 영어 교사보다도 영어를 더 잘하는 초등학생이 다수 존재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개인마다 영어를 어느 정도 잘할 것인가에 대한 성취목표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현재와 같은 수준별 수업 정도로는 영어 교육의 문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영어 교육에 관한 한, 중장기적으로 아예 2가지 서로 다른 트랙(track)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봤으면 합니다. 장래 지식기반 사회에서 글로벌 리더가 될 꿈을 가진 학생들에게는 매우 심화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코스(BICS + CALP)를 만들어 주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서바이벌 수준의 일상 생활영어(basic BICS)를 목표로 하면 어떨까합니다. 일본에서 영어 이머전 교육을 1992년에 가장 일찍 시작한 가또학원(Katoh School)의 2중 언어교육 프로그램이 그렇습니다. 같은 학교지만 영어 이머전 프로그램과 일본어로 진행되는 일반 정규프로그램 두 가지를 동시에 운영합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게 합니다. 이런 형태의 학교 시스템이 21세기형 학교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런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때 기러기 아빠가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4. 10년 이상 학교를 다니고도 왜 영어로 의사소통을 못하는지 그 이유를 바르게 알 필요가 있다.
최근 영어 교육 관련, 인수위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가 영어에 접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맞는 판단입니다. 영어 교육 관련 세계적인 슈퍼스타 가운데는 아시아 국가들의 영어 교육 해법은 영어 이머전 교육이라고 한국에 와서 강연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영어 이머전 교육이야말로 영어에의 노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어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것도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긴 합니다.
그런데 정말 영어 이머전 교육을 도입하고,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면 한국의 영어 학습자들이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고교만 졸업해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게 될까요?
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한국인들이 학교 공교육에서 받는 영어교육의 절대 시간이 적은 것도 사실이지만, 고교까지 영어를 배웠는데도 영어로 기초적인 의사소통도 못하는 데는 더 큰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영어로 하는 수업을 하더라도 여전히 말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1) 정확성 위주의 교육을 유창성 위주로 바꾸어야 한다.
정확성 위주의 한국 영어 교육은 '영어로 말하거나 쓸 때는 반드시 정확해야 한다'란 잘못된 생각을 수십 년 동안 주입시켰습니다. 외국어를 처음부터 정확히 사용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며,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언어를 배우는 능력과 정면 배치되는 사고입니다. 한국적 영문법 교육이 정확성 위주 교육의 주범입니다. 그 다음이 문법 번역식 수업입니다. 영어 교육 학자들은 '모호성에 대한 관용적 태도(the tolerance of ambiguity)'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국의 영어 교육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대충 대의만 짐작하면 될 것도 문장의 구성요소를 따지고 용법에 따라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하며 모든 문장의 의미를 모국어로 정확히 옮기는 수업이 은연중에 외국어 학습은 처음부터 정확해야 한다고 주입을 시킨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 영어 교육이 유창성을 우선시하도록 과감히 바꾸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입시와 내신 평가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영문법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의 지나치게 정확성 위주인 학습문화를 깨야 합니다. 학습자들이 영어로 하는 수업시간에 말문을 열게 하려면 어휘 지식과 모국어 지식, 그리고 지금까지 영어에 노출되면서 간접적으로 익힌 영어에 대한 '감'만으로 영어를 말하게 해야 합니다. 유창성이 향상되고 초급 수준의 영어 학습자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 정확성을 보완하도록 하면 됩니다. 한국은 너무 지나치게 정확성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정확성은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향상되며 아주 나중에 갖춰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외국어 습득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누구나 처음부터 문장 단위로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단어(word stage) → 구(lexical stage) → 문장(sentence stage)' 순으로 말을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회화를 적극 허용해야 합니다.
(예 1)
T: Minwoo, your weekend? Tell me.
S: Oh, nice. Very nice.
T: Where? Your friend's house?
S: No. My grandmother's house in Suwon.
T: By subway?
S: Yes.
T: And at night?
S: Computer games.
T: How long?
S: 2 hours. My limit.
(예 2)
[Version 1]
"Yesterday I visit my grandmother. She very very ill. She in hospital two months."
[Version 2]
"I visited my grandmother yesterday. She's seriously ill. She's been in hospital for the past two months."
[주] 예2의 version 2는 오랜 세월 영어를 생활화하면서 조금씩 여기에 가까워질 수 있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 수준이다.
이러한 학습 문화가 정착되면 한국인 영어 교사도 학생도 두려움 없이 가르치고 배우며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영어 실력이 뛰어난 학생은 완전한 문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겠지요.
2) 실수(mistake)와 오류(error)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정확한 영어를 하기까지 학습자는 수많은 실수를 합니다. 모국어를 배울 때조차 그렇습니다. 언어든 사업이든 성공을 하려면 그 전에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거치도록 조물주가 그렇게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것은 자전거 타기와 비슷합니다. 수없이 넘어져봐야 비로소 넘어지지 않고 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실수는 귀중한 자산(valuable asset)이지 기피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래서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도 종전의 PPP(present → practice → produce)를 지양하고, 바로 말하고 써보게 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 the learn → perform sequence
(○) the mistake-occurrence → corrective action → retrial sequence
이 부분에 대해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인식을 바꾸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5. 교사와 학습자가 언어 습득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한국 영어학습 및 교육 중에서 가장 잘못된 인식의 하나가 'input → output'의 패러다임입니다. 책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어, 구, 문장을 암기하면(input)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서 쓸 수 있다(output)는 착각입니다. 암기해두었다가 그대로 쓸 수 있는 표현은 제한적입니다. 가령 'How are you?', 'Nice talking to you', 'May I speak with Tom?' 같은 것들은 하나의 어휘(lexis)와 같은 성격의 문장이라서 암기했다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실제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만날 때마다 상황이 다르고 관심사가 달라 말하는 사람이 새롭게 대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말을 사용할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교사와 학습자는 영어로 말하거나 쓸 때 가장 기초적인 밑천이 되는 것(building blocks)을 우선적으로 습득해야 합니다. 이것은 코퍼스 언어학에 의하여 각 단어들이 만드는 수많은 의미 덩어리(lexical chunks)임이 밝혀졌습니다. 위의 [예1]에서 교사와 학생과의 대화가 lexical chunks로만 이루어진 좋은 예입니다. 영어의 유창성과 정확성 향상을 위해서는 lexical chunks에 대한 습득이 우선입니다. 이런 chunk들을 문법을 이용해서 이으면 문장이 만들어 집니다. 이는 '문법이란 틀에 어휘란 벽돌(building block)을 쌓아 문장을 만든다'는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을 폐기해야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lexical chunk를 하나의 확대된 어휘 개념으로 볼 때, 영어교육에서 어휘 교육이 대폭 강화되어야 합니다.
6. 어휘와 문법 교육을 표현(말하기, 쓰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어휘와 문법 교육 및 학습 방식은 말하기, 쓰기에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말하기, 쓰기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어휘와 문법을 교육하는 방식을 교사들에게 교육해야 합니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교사들이 연수를 받게 해야 합니다.
7. 영어교과서 제도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집필 가이드라인을 세밀하게 내려주면, 거의 붕어빵 같은 교과서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거의 비슷한 수준의 교과서를 외국어고등학교도 쓰라고 하고, 지방 농어촌의 실업고등학교에서도 쓰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됩니까? 21세기를 살면서 19세기적 발상과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꼴입니다. 미국에서는 기존 교과서에 대한 불만이 많아, 맞춤 교과서를 만들어 주는 사이트에 접속하는 교사의 수가 한 달에 2,0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래학자들의 귀띔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Knowledge Garden'이 만들어져 전통적인 교과서가 없어지고, 이 사이트에 접속을 하여 다양한 학습자료를 다운로드 받거나 접속하여 수업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열린다고 합니다.
기존의 교과서 제도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어야 합니다. 이번에도 교육 지자체별로 다양한 영어 교재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교육을 책임지는 학교가 커리큘럼을 짜고 교재를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합니다. 학습자 중심 교육(learner-centered learning)의 진정한 뜻은 배우는 교과서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의 주제 선택권까지도 학생에게 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8.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이 제 역할을 하도록 기획, 개발되어야 한다.
지금 국가가 개발 중인 이 시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말하기, 쓰기의 경우 pass or fail로 한다면 '일찌감치 pass를 한 학생은 영어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부터, '대학입시에 변별력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은 또 다른 어려운 영어시험을 면접을 통해서든 논술지문을 통해서든 도입하려고 할 것이다'까지 다양합니다. 2월 12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최되었던 전교조의 '새 정부 영어교육정책 해부와 대안'이란 제목의 토론회에서도 같은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앞으로 도입 예정인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이 수능시험뿐만 아니라 고교입시 사정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해서 학교에서의 영어교육과 고입, 대입을 위한 영어과목 준비가 따로 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pass or fail이란 방식으로 가능할까요? 스웨덴의 현 grading 방식을 참고해봄직합니다. 스웨덴의 경우는 G(pass)-VG(pass with distinction)-MVG(pass with special distinction)처럼 grading system이 3-point scale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도입하려는 pass or fail 방식보다 세분화된 방식이지요. 이럴 경우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이 좀 더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사교육비 증가 걱정을 하실 텐데 만일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이 고입, 대입에 충분한 변별력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없다면 또 다른 영어시험 준비를 위해 사교육비가 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평가가 모든 수업형태를 결정하는 현실을 고려해서 교육과정, 국가영어능력인증시험, 내신평가, 고입 및 대학 입시에서의 영어평가들이 따로따로 놀지 않는 그런 평가 시스템이 개발되고 정착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영어 등대 이찬승 http://www.leechanseung.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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