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으로 화장한 학생 불이익 줄 것"
서강대 손병두,포스텍 백성기,
한양대 김종량 입학사정관제도를 말하다
면접에서 가려낼 수 있어 돈주고 컨설팅 왜 받나?
대학에선 무료상담해줘 대학은 공정성 확보하고
고교는 교과과정 바꿔야
◆“교과 성적, 여전히 중요하다”
◆사회=입학사정관제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일선 고교에선 혼란스러워한다. 대학들 준비가 돼 있는지, 또 믿어도 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김 총장=우리 대학에도 문의가 쇄도한다. 어떤 학생은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이냐’고 질문하기도 하는데, 오해다.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도 교과 성적은 여전히 중요하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얼마나 충실히 했는지 볼 것이다. 이후에 학생들의 잠재력과 문제해결능력 등을 본다.
◆백 총장=지난 15년간 대학들은 수능과 내신의 틀 속에서만 학생을 뽑았는데, 이게 문제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포스텍은 7~8년 전부터 심층면접을 도입했다. 그동안 면접기법에 대한 신뢰할 정도의 노하우가 축적됐다. 그래서 포스텍은 올해부터 신입생 300명 전원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다.
◆사회=대학이나 정부가 너무 서두른다는 지적이 많다.
◆손 총장=그 지적이 틀리지 않다고 본다. 현 정부는 공교육 정상화 목표에 따라 이 제도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대학들도 그에 따라 서두른 측면이 있다. 입학사정관 전형은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장기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제도가 처음부터 완벽하기는 힘들다. 1920년에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미국도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80년이 걸렸다. 우린 압축성장에 능하니 7~8년쯤 지나면 정착되지 않겠나.
◆사회=학교생활과 교실 수업에 충실하라고 했는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나.
◆백 총장= 사교육을 통해서 우리 대학 오겠다고 생각하는 수험생 있으면 이제 꿈을 접어라. 교과 영역뿐 아니라, 비(非)교과 영역도 보기 때문이다. 시험점수 1~2점 높다고 뽑지 않겠다. 학교 교육과정을 얼마나 충실히 마스터했고, 사고의 폭을 넓혔는지를 면접 과정을 통해 볼 것이다.
◆손 총장=서강대는 매년 300개 이상 고교를 돌아다니며 학교 정보를 축적했다. 이 자료가 앞으로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쓰인다.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고교교육과 대학교육의 연계가 중요하다. 그래야 공교육 정상화라는 제도의 취지가 살아나게 된다.
◆“사교육에 속지 마라”
◆사회=사교육 쪽은 벌써 이 제도를 향해 움직인다. 예를 들어 '○○대학 입학사정관 준비반’이 나오지 않을까.
◆손 총장=입시컨설팅에 의지한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다. 서강대에 지원하려는 학생은 서강대 입학사정관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사정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예비학생과의 상담과 컨설팅이다. 학부모와 학생이 찾아오면 언제든지 무료로 상담해준다. 학부모들이 왜 1시간당 몇십만원씩 주고 입시 컨설팅업체로 가나. 학부모들이 사교육업체의 광고에 현혹되는 것 같다. 절대 속지 마라.
◆김 총장=요즘 중1부터 고3까지 전 학습과정을 관리해 주는 학습 컨설팅이 생겼다고 하더라. 그런데 사교육 받은 학생은 우리가 면접 과정에서 가려낼 것이다.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는 자기추천서를 가지고 질문을 하는데, 사교육 도움을 받은 ‘정형화된 대답’이 나오면 오히려 감점이다. 어쩌다 사교육 도움받은 학생이 합격하는 수도 있겠지만, 떨어지는 사례가 계속 축적되면 사교육 받는 것이 불리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백 총장=대학은 잘 가공된 다이아몬드(학생)가 아닌 원석(原石) 상태를 원한다. 가공되지 않았지만 잠재력 있는 학생을 뽑는다는 것을 명심해 달라.
◆손 총장=나는 사교육 시장(市場) 자체가 형성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학마다 전형요소와 비율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사교육 업체들이 뛰어들기에는 시장이 너무 작다. 대학은 입학생의 옥석(玉石)을 가리는 게 큰 숙제이다. 사정관들이 전문성을 쌓으면 맞춤형 사교육을 받은 학생은 들통날 것이다.
- ▲ 사진=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고3, 동요 말라”
◆사회= 당장 고3 학생들은 입학사정관 전형을 위해 뭘 준비해야 하나.
◆김 총장=너무 동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입학사정관제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제도는 아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충실히 공부한 학생은 누구나 시도해 볼만한 입시다. 최선을 다한 학생들 다 합격할 수 있다.
◆손 총장=자기소개서나 추천서 쓸 때 자신의 솔직한 모습과 희망과 계획, 그리고 장단점을 그대로 담아라. 추천서가 장점만 나열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추천서가 아니면 앞으로 대학은 그 고교 출신 추천서를 안 믿게 된다. 면접에서는 학원에서 배운 것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에 있을 때 신입사원 면접해보면 ‘이 사람이 정직한가’ ‘정말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가’가 보이더라. 대학입시도 마찬가지다.
◆백 총장=입학사정관 전형으로 기회가 더 많이 열렸다고 생각하라. 자기가 목표로 하는 대학에 대해 알아보고, 입학사정관을 직접 만나봐라. 고교 교사들도 각 대학 입학사정관을 초청해 학생들에게 입시안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이제는 점수만으로 대학을 가는 시대는 끝났다. 밤새 이 학원 저 학원 돌아다녀야 대학 간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손 총장=그런데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로만 학생을 뽑는 게 아니다. 대학입시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고 입학사정관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점에서 학생들은 동요 말라.
◆입시 사후관리 하겠다
◆사회=이 제도의 최대 숙제는 어떻게 학생과 학부모가 믿게 하느냐다. 어떻게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것인가.
◆손 총장=주관적·정성적(定性的) 평가이기 때문에 불만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학부모와 학생들은 대학의 판단을 신뢰해달라. 몇년 전 미국 하버드대 입시에서 SAT(한국의 수능에 해당) 만점을 받고 떨어진 학생이 이의 제기하자, 대학측은 “우리가 그렇게 결정했다”고만 답변했고 그 답변이 사회적으로 인정됐다. 대학의 입학사정위에서 결정하면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대학과 고교 간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
◆백 총장=대학은 수험생들이 이 제도를 신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그런데 이 제도가 잘 정착되려면 대학에 학생을 평가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전형 시기가 9월부터 시작되는 것은 너무 시일이 촉박하다. 1학기부터 연중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김 총장=이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가장 필요하다. 학생·학부모, 고교는 대학의 결정을 믿고, 대학은 고교 학생부를 신뢰해야 한다.
◆손 총장=대학의 전문성과 공정성 확보가 관건이다. 전문성을 쌓기 위해 외국에 가서 배우고, 입학사정관 양성기관을 정부 차원에서 운영해야 한다.
◆백 총장=입시의 사후관리가 중요하다. 특히 정부가 나서 이 제도를 잘못 운영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감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손 총장=나는 정부보다 대학이 스스로 이 입시에 대해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대학·고교 간 신사협정을 맺고, 대학이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
◆고교 교과도 함께 변해야
◆김 총장=조금 다른 얘기지만 대학입시뿐 아니라 공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대학입시가 바뀌면 공교육이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중·고교 교육에 있다. 지금 우리 학생들, 너무 많은 교과목을 배운다.
◆손 총장= 정확한 지적이다. 고교교육과 대학입시는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이 너무 많은 교과목을 배우니 주요 과목 공부를 사교육에 의지하는 것이다. 고교 이수 과목수를 줄이는 대신 주요 과목의 수업시간을 늘려야 한다. 공교육을 통해 국·영·수를 충분히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사교육이 준다.
◆김 총장= 선진국은 중등교육에서 6~7개 과목을 배우는데 한국 학생들은 13~15개 과목을 배운다. 이 많은 것을 배우고 수능을 쳐야 하니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는 해도 대학에서 원하는 수준의 학력을 연마하지 못하는 것이다.
◆손 총장=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자고 했지만, 쓰기·읽기·수학·과학 등 주요 과목의 공부시간을 늘리는 정책은 우리가 미국에서 배워야 한다. 주요 교과에 투입되는 시간을 더 늘려 심층적인 학습을 학교에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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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일 서강대 손병두,포스텍(포항공대) 백성기,한양대 김종량총장이 조선일보에 모여 대학 입학사정관제도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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