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다가올 로봇시대에 로봇은 없다. 로봇화된 세상이 있을 뿐”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9. 5. 5. 10:43

 

흥미진진한 로봇의 세계
 
“다가올 로봇시대에 로봇은 없다. 로봇화된 세상이 있을 뿐”
 

   월간조선 2009년 5월호

吳俊鎬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휴머노이드로봇 연구센터 소장
⊙ 1954년 서울 출생.
⊙ 대광高·연세大 기계공학과 졸업. 美 캘리포니아 버클리大 기계공학 박사.
⊙ KAIST 기술이전 및 교류센터 소장·신기술창업지원단 단장, 국가 IT 홍보대사 역임.
    現 대덕특구본부 홍보대사, 산업자원부 로봇정책자문위원.
⊙ 이족보행로봇 KHR-1, KHR-2,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 안드로이드형 로봇 알버트 휴보,
    이족보행로봇, 인간탑승 이족보행로봇 Hubo FX-1 개발.
⊙ 수상: KAIST인상(2005), 올해의 10대 과학기술인(2005),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상(2007, 과학기술부).

 로봇은 현대과학기술이 급격한 산업화로 꽃피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수많은 공상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왔다. 하지만 로봇이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며 당장 내일이라도 로봇의 시대가 도래할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로봇공학자들이 과거 수십 년간 보다 편리하고 인간에 친숙한 로봇을 개발하고자 노력을 해왔으나, 일반인에게 로봇은 그저 실험실에서나 움직이는 신기한 기계뭉치 정도로만 여겨져 왔을 뿐이다.
 
  그러다가 2000년 일본의 혼다社(사)가 ‘아시모’라는 인간형 로봇을 발표하자 사람들은 로봇기술의 진보에 크게 놀랐다. 어떤 이는 이제 곧 인간의 능력을 넘보는 로봇이 출현하여 인류를 정체성의 혼돈 속으로 빠뜨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기대와 우려를 갖게 하는 로봇이란 과연 무엇이며, 현재의 로봇 기술은 어디까지 와있는 것일까? 본 원고에서는 이런 의문을 파헤쳐 보고, 앞으로 로봇이 실생활에 파고들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에 대해 지능형 서비스 로봇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인간을 닮은 기계
 
2005년 11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팀이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모델로 개발한 인간형 로봇 알버트 휴보. 알버트 휴보는 30여 개의 얼굴 근육을 움직여 표정을 짓는다.

  과거에는 로봇이 주로 산업현장에서 물건 製造用(제조용)으로 사용됐다. 물론 지금도 산업현장에서 이런 로봇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이들 산업용 로봇은 기계와 기계 사이의 또 다른 기계로 취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로봇은 산업현장을 벗어나 우리의 일상 속으로 다가오고 있다. 가령 일본 도요타社(사)에서 개발한 트럼펫 부는 로봇은 입 속에 마우스피스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바람을 불어서 트럼펫을 연주한다. 최근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로봇도 발표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는 사람처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스스로 감정을 배워나갈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 즉, 로봇의 다양한 표정들을 사람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로봇 스스로 표정들을 배워가면서 감정을 익히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로봇은 눈이라든가 눈썹, 입술 등을 이용해 여러 가지 감정을 나타낸다.
 
  하지만 여러 로봇 중 인간을 닮은 로봇(휴머노이드 로봇)은 직립보행을 하며 사람과 같은 동작과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로봇 중의 로봇이라 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일본의 ‘아시모’, 한국의 ‘휴보’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중동국가 등 세계 각국에서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휴머노이드 개발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로봇을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사람과 같은 유연한 동작을 하는 로봇이 사람과 더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완구용 로봇 파로. 노인이나 기타 환자들의 심리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로봇의 활용 영역 가운데 또 한 분야가 엔터테인먼트다. 영화나 테마파크에는 ‘애니메트로닉스’(애니메이션+일렉트로닉스)라는 다양한 로봇기술들이 적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공연이나 뮤지컬 등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최근 필자가 국내 모 인기가수의 의뢰로 개발한 ‘춤추는 무대’는 스튜어트 플랫폼(비행 시뮬레이터에 많이 사용되는 장치)이라는 특수형태의 로봇 기술을 공연에 응용한 것으로서 직선 및 곡선 이동, 회전 등에서 다양한 운동을 구현할 수 있으며, 공연자와 상호 작용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요즈음 거의 모든 움직이는 장난감(Toy)에는 로봇기술이 접목되어 있다. 이들 로봇 장난감은 집안의 PC와 무선으로 연결이 가능하고, 다른 전자기기들과 상호 작용이 가능하기도 하다. 이러한 로봇은 자연스럽게 홈 서비스 로봇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홈 서비스 로봇은 집안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외부에서 지령된 여러 명령을 수행하고 아이들과 놀아 주기도 한다. 안내용 로봇은 공공장소 등에서 길을 찾아주고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해 준다. 교육용 로봇은 로봇의 주요 응용 분야로 각광 받고 있다. 최근 ‘에듀테인먼트’(교육+오락) 시장에서 로봇과 로봇 기술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대표주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의료 및 복지로봇
 
수술용 로봇 다빈치의 모습. 로봇을 이용한 수술은 디스크나 위암, 전립선암, 심장병 등에 많이 이용되며 수술부위가 작고 초정밀 시술을 하기 때문에 효과도 좋다.

  단순한 애완용이나 오락용을 넘어 사람을 돌보고 치유하는 의료 및 복지 기능 로봇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에서 개발된 로봇 중에 물개 모습을 한 로봇이 있다. 이 물개로봇은 심장박동도 하고 쓰다듬어주면 감정표현도 하는데, ‘꾸룩꾸룩’ 하면서 여러 가지 몸짓을 표현한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자폐증 환자나 치매 환자들에게 치유용으로 좋은 친구가 되는 로봇이다.
 
  실제 애완동물이 치유용으로 더 적합하지 않으냐 반문할지 모르지만, 동물은 환자에게 병을 감염시킬 수도 있고, 대소변을 가려 주어야 하는 등 위생적인 문제가 있다. 하지만 로봇은 충전만 해주면 되기 때문에 실제 동물보다 훨씬 안전하게 치유효과를 거둘 수 있다.
 
  노약자나 장애인을 돕는 로봇은 앞으로 다가올 고령화 사회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주요한 기술로 평가 받고 있다. 어찌 보면 로봇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도움이 필요 없는 非(비)장애인이 아니라 노약자나 장애인들이 아닐까.
 
  최근 우리나라 몇 개 종합병원에도 의료용 로봇의 실용화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수술용 로봇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수술용 로봇은 여러 분야에서 응용되지만 그 가운데 전립선염 수술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하고 있다.
 
  전립선염은 수술 부위가 몸 속 깊은 곳이라 환자는 거의 거꾸로 된 자세를 취해야 하는 등 고통이 심하고, 수술을 하는 의사도 불편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수술 로봇을 이용하면 환자와 의사 모두 편한 자세에서 시술할 수 있으며, 기존 방법의 수술보다 훨씬 豫後(예후)가 좋아 회복도 빠르다고 한다. 사람 손으로 하는 수술보다 로봇에 의한 수술이 훨씬 정교하기 때문이다.
 
 
  사이보그
 
영화 아이언맨에서 나오는 ‘입는 로봇’은 머지않아 현실화될 전망이다.

  최근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한 연구팀에서는 원숭이에게 로봇팔을 이식하고 뇌에 전극을 꽂아서 원숭이의 뇌파 신호를 이용해 로봇팔을 움직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원숭이가 좋아하는 마시멜로 과자를 가까이 가져가면 원숭이가 냄새를 맡고 뇌파를 이용해 팔을 움직여 마시멜로를 받아 먹는다.
 
  生體(생체)와 로봇기술의 결합, 이것이 바로 사이보그다. 예전에 한창 인기를 끌었던 TV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나 영화 <로보캅>의 주인공이 사이보그인데, 신체 일부를 로봇이나 전자장비로 대체한 사람들이다.
 
  최근에는 <아이언맨>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는데, 그 영화의 컨셉은 ‘입는 로봇’이다. 인간이 입는 로봇 시스템을 착용하면 힘을 배가시키는 것으로, 말하자면 ‘로봇 옷’을 입음으로써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이보그 시스템이나 입는 로봇 시스템은 단지 스트롱맨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시스템의 적용분야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는 데 있다. 신체가 멀쩡한 사람에게 사이보그가 되라고 하거나 로봇 옷을 입으라고 하면 반감을 가질 것이다. 사이보그가 되거나 로봇 옷을 입으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 등으로 신체 일부가 절단된 사람들은 로봇 팔이나 로봇 다리를 착용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를 무리 없이 수용할 것이다. 재래식 義手(의수)나 義足(의족)의 경우 몸의 다른 근육을 복잡하게 사용하여 움직이지만 로봇 팔이나 로봇 다리의 경우 뇌파 신호를 통해 사용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 마치 자신의 팔다리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근육마비증을 앓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가 대표적인 예다.
 
  호킹 박사는 얼굴 근육만 일부 사용할 수 있는데, 얼굴 근육의 미세한 신호를 이용해 말도 할 수 있고(물론 음성합성장치를 쓰고 있지만),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프레젠테이션 강의도 할 수 있다. 호킹의 휠체어는 그 자체가 로봇이다.
 
 
  지능로봇이 되기 위한 3대 요소
 
  우리는 왜 로봇을 만드는 것일까. 인간이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첫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해, 둘째 사람이 하기에는 위험한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해, 셋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 시키기 위해서다.
 
  화성탐사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인간이 우주선을 타고 화성까지 날아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직은 불가능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로봇은 이와 같이 인간이 수행할 수 없는 과제를 대신한다.
 
  군사용 로봇을 만드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전쟁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목숨을 담보로 하여 싸우는데, 사람 대신 로봇을 위험한 전장에 내보내려는 것이다. 청소용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청소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꺼리고 싫어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로봇이 필요한 것이다. 서비스 로봇을 만드는 것도 사람은 서비스를 하는 것보다는 서비스를 받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로봇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능로봇’이라고 할 때는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수반된다.
 
  첫째는 자율성(autonomy)이다. 이를 갖도록 하는 것이 인공지능 기술이다. 여기에는 음성인식, 비전을 통한 인식, 자율주행, 감정인식 및 표현 등이 포함된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의도를 파악하고 인간의 명령이 있기 전에 그에 따른 적절한 행동을 로봇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능동적 행위’까지 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둘째는 이동성 혹은 운동성(movability)이다. 로봇이 단순히 ‘똑똑한’ 컴퓨터와 다른 점은 스스로 움직이거나 주변의 사물을 움직여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산업용 로봇은 제한된 환경에서 반복적인 단순운동을 수행하는 반면, 지능로봇은 로봇이 주변상황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생활공간에서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세 번째는 유용성(usefulness)이다. 아무리 스스로 잘 움직이는 로봇이라도 유용성이 없으면 단순히 값비싸고 복잡한 장난감에 불과하다. 밥 해주는 로봇, 빨래하는 로봇, 집 지키는 로봇, 안내 로봇, 아기 보는 로봇,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로봇 등 우리 주변에 인간의 수고를 대신할 수많은 일들이 앞으로 로봇이 해 주어야 할 과제들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특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 청소 로봇이다. 청소 로봇은 대개 원반같이 생긴 몸통으로 집안의 거실과 방을 ‘스스로(autonomy)’ ‘돌아다니며(mobility)’ ‘청소(usefulness)’를 한다. 이와 같이 청소 로봇은 지능로봇으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청소기도 집안을 청소하는 데 사용되지만 우리가 그것을 로봇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자율성과 운동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성에 대한 딜레마
 
국내 한 백화점에서 학습 도우미 로봇(사진 왼쪽)과 청소로봇 등이 소개되고 있다. 위치안내 로봇, 보안로봇, 학습로봇, 오락용 로봇 등은 이미 우리의 실생활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자율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그 유닛이 일종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상통한다. 즉, 지능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자율성을 갖는 것이다. 인간이 로봇에게 자율성을 주면 로봇은 스스로 알아서 움직인다. 스스로 알아서 움직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자율성이다.
 
  청소기와 청소 로봇의 예를 다시 들면, 청소기는 단지 먼지를 빨아들이는 능력밖에 없다. 청소를 하려면 사람이 직접 청소기를 들고 먼지가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청소 로봇은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면서 청소를 한다. 즉, 청소기에는 자율성이 없지만 청소 로봇에는 자율성이 있다.
 
  이 자율성이라는 말 속에는 또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다. 자율성이라는 말에는 사실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로봇에게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로봇 마음대로 하라는 말인가?
 
  우리가 흔히 ‘네가 알아서 공부해라’라는 이야기를 할 때는 ‘마음 내키는 대로 적당히 공부하라’는 뜻이 아니라 ‘능력껏 알아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인간관계의 사회적 기대치가 그 말 속에 숨어 있다. 마찬가지로 청소 로봇에게 자율성을 줄 때도 그 속에는 인간의 기대치가 담겨 있다. 마음대로 가구를 다 때려부숴 가며 청소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청소를 하는 데 있어서 자율적이되 내 마음에 들도록 하라는 뜻이다.
 
  로봇이 사용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면 그 로봇은 똑똑한 로봇이다. 반대로 사용자의 의도에 맞는 서비스를 제대로 못하면 그 로봇은 멍청한 로봇이다. 이와 같이 ‘사용자 의도파악(intention reading)’은 로봇의 자율성 문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특히 ‘스마트홈’과 같은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현하기 위한 로봇 개발에서 필수적이다.
 
  여기서 연구자들은 로봇에게 자율성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자율성을 높이면 로봇은 똑똑해지지만 ‘딴짓’을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로봇이 사용자의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짓을 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즉 로봇이 사용자의 의도와 어긋나는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율성을 낮추면 단지 버튼 누르는 데 따라 움직이는 멍청한 로봇이 되어버린다. 이런 멍청한 로봇은 우리가 ‘로봇’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로봇의 자율성에 대한 딜레마다.
 
  로봇의 두 번째 특징은 움직임이다. 만약 로봇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은 모니터상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다를 바 없다.
 
  물리적으로 사람과 접촉할 수 있고 움직일 때 비로소 로봇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로봇의 움직임이라는 문제에도 딜레마가 숨어 있다. 비단 로봇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움직이는 물체에는 위험성이 담겨 있다. 자전거도 위험하고 자동차도 위험하다. 빨리 움직이는 물체일수록 위험하고, 거기에 힘을 가진 물체라면 한층 더 위험하다.
 
  로봇은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로봇이 큰 힘으로 빨리 움직이면 훨씬 효율적으로 일하니까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그만큼 잠재적인 위험이 커진다.
 
  그래서 로봇을 설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로봇에게 어느 정도의 힘과 어느 정도 빠르기의 움직임을 부여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요즘 서울역이나 인천공항에 가면 안내 로봇을 볼 수 있는데, 이들 안내 로봇들의 움직임이 어린아이들 걷는 속도보다 느리다.
 
  어떻게 보면 답답할 지경인데,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빨리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도를 낮춘 것이다. 즉 로봇의 움직임은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빠르기와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 그 경계선에서 대중화될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속에서 보아온 로봇은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자유자재로 춤도 추지만 현실 속에서의 로봇은 그러지 못한다. 갑갑하기도 하고 멍청이 같기도 한데, 현실 속에서의 로봇으로부터 우리가 그런 인상을 받는 것은 이러한 경계선 혹은 딜레마 속에서 이루어진 개발 결과이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온 로봇의 ‘문화적 충격’
 
미국의 하이테크 로봇업체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사가 개발한 군사용 로봇 빅독(Big dog). 犬馬(견마)형 군 수송로봇으로 차량이 다닐 수 없는 험한 지형이나 위험한 지역에서 군수품을 수송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로봇은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하면서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오고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최초의 로봇은 공장에서 쓰이는 산업용 로봇이었다. 산업용 로봇은 단순 반복작업을 하면서 공장자동화를 이루었다.
 
  이제 로봇은 공장을 벗어나 인간의 생활공간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장을 벗어난 로봇이 우리 생활공간 속으로 들어왔을 때 과연 어떤 문제가 생겨날까?
 
  가령 서울 한복판의 문명세계에 살고 있던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준비도 없이 아마존 밀림 속에 뚝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존의 덤불은 우리 몸을 휘감아 보행을 방해할 것이며, 설령 움직인다 해도 곳곳에 함정이나 낭떠러지가 숨어 있어 우리를 위협할 것이다. 먹을거리를 찾는 것도 문제고 정글 속 毒蟲(독충)들은 수시로 우리를 공격해올 것이다. 문명세계라면 목마르거나 배고프면 아무 때나 냉장고를 열면 되고, 나다닐 때도 잘 포장된 안전한 길을 따라 다닐 수 있는데 말이다.
 
  로봇이 인간의 생활공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인간이 아마존 정글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로봇이 공장에 있을 때는 이동을 할 필요가 없거나, 이동하더라도 로봇이 다니는 길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또 항상 전기가 공급되어 에너지원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로봇이 공장을 벗어나면 문제는 달라진다.
 
  로봇이 밖으로 나오려면 이동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우선 쉽게 구현할 수 있어서 채택된 것이 ‘바퀴’다. 하지만 바퀴 달린 로봇은 이동에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다. 평탄한 도로뿐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도처에 있는 계단이다. 바퀴로는 계단을 오를 수 없다. 바퀴 달린 로봇은 계단을 만나면 꼼짝 못한다. 문턱도 넘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굉장히 위험한 생명체가 로봇을 괴롭힌다. 로봇을 괴롭히는 생명체는 사람이다. 전시회나 관람장에서 로봇을 試演(시연)할 때 늘 목격되는 장면이 있다. 관람객들에게 “로봇을 한번 만져보라”고 하면 그들은 로봇의 팔을 비튼다. 로봇과 팔씨름이라도 할 듯이 있는 힘껏 팔을 비틀거나 밀어서 쓰러뜨리는 사람도 있다.
 
  주문한 청소 로봇이 배달되어 오면 그것이 얼마나 튼튼한지 시험하려고 그러는지 발로 밟아보는 사람도 있다. 어린아이들은 로봇 장난감을 주면 팔을 잡아 빼거나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로봇을 보면 매우 공격적이 된다.
 
  거기까지만 해도 로봇은 참을 수 있다. 로봇 스스로 그냥 당하고 있으면 되니까. 문제는 로봇이 실수로 사람을 툭 쳤을 때 벌어질 상황이다. 로봇의 실수에 의한 것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맞은 사람은 “아프다”느니 “넘어져서 다쳤다”느니 하면서 손해배상문제를 꺼낼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진다.
 
 
  로봇시대에는 로봇이 없다
 
  필자는 우리가 이미 로봇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더욱 본격적인 로봇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지금이 로봇시대의 시작이라고 본다면 10년, 20년 후의 본격적인 로봇시대에는 어떤 로봇이 우리 주위에서 돌아다니고 있을까.
 
  역설적이지만 그 시대가 오면 우리 주위에서 로봇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 시대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당신 집에는 컴퓨터가 몇 대나 있습니까?”하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대” 혹은 “두 대”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여러분의 집에는 50대 이상의 컴퓨터가 있다. 어떤 집에는 100대가 넘을 수도 있다. 다만 눈에 띄지 않을 뿐, 여러분의 집에는 곳곳에 컴퓨터가 숨어 있는 것이다.
 
  TV를 작동하는 리모컨이 컴퓨터라고 하면 좀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리모컨은 분명 컴퓨터다. 컴퓨터는 입력장치와 연산처리장치, 기억장치와 출력장치로 이루어진 기계다. 리모컨을 살펴보자. TV 채널을 바꾸는 데 사용되는 버튼은 컴퓨터의 키보드에 해당하는 입력장치다. 리모컨의 LCD 창은 컴퓨터의 모니터처럼 글씨나 아이콘을 보여준다. 리모컨 안에는 작은 칩이 들어 있어 연산과 메모리를 담당한다. 게다가 리모컨은 통신장치도 갖추고 있어 적외선으로 TV에 신호를 보낸다. 이 정도라면 완벽한 컴퓨터다.
 
  냉장고, 세탁기, TV, 휴대폰 등 우리 주변에 널린 가전제품들은 모두 컴퓨터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제품들을 컴퓨터로 인식하지 못한다. 컴퓨터의 기능이 제품들 속에 내장(임베디드)되어 있으니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미래는 ‘로봇화’된 사회
 
2008년 5월 13일, 혼다가 만든 로봇 아시모가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임파서블 드림” 공연에서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본격적인 로봇시대에는 로봇이 없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로봇의 기능들이 기존의 장치나 제품 속에 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로봇화’라고 한다.
 
  집 지키는 로봇을 생각해보자. 헤라클레스 같은 문지기 로봇이 현관을 지키고 있다가 도둑이 들어오면 도둑을 체포하거나 주먹을 휘둘러 도둑을 제압할까? 진짜 주인이 오면 헤라클레스 문지기 로봇이 “주인님, 어서 오십시오!”하면서 현관문을 열어주는 그런 방식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상상하기 쉽지만 사실은 현관문 자체가 똑똑해질 것이다. 즉, 현관문이 로봇화되는 것이다. 현관문이 스스로 주인을 알아보고 문을 열어주는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열쇠도 필요 없다. 우리가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밖에서 들어오는 자녀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현관문을 열어준다. 비밀번호 누르게 하고, 암호를 확인하고, 지문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어머니는 현관 밖에 있는 사람이 가족임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로봇화된 현관문은 “비밀번호를 확인하자” “암호를 입력해라”는 식으로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주인임을 스스로 알아서 확인하고 열어줄 것이며, 낯선 사람이 침입하려 하면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현관 앞에 문지기 로봇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문 스스로가 로봇화되는 것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운전을 대신 해주는 로봇이 있어서 목적지까지 알아서 운전해주고 주차도 로봇이 대신 해주면 좋겠다고 상상하는 사람이 있는데, 미래 로봇시대에는 자동차 자체가 로봇화된다.
 
 
  로봇화 시대를 맞기 위해
 
美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가전 전자쇼 2007 CES에서 일본 혼다의 휴먼로봇인 아시모가 시속 4km의 속도로 걷고 있다.

  인류의 기술발전은 18~19세기 산업혁명 시대의 ‘기계화’를 통해 20세기에는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를 이루었다. 21세기는 자동화를 뛰어 넘어 ‘자율화’로 나가고 있다. 로봇 역시 단순한 기계장치로 시작하여 완전 자동화된 산업용 로봇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제 이 로봇이 지능과 유연한 운동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화된 로봇이 되어 인간 생활공간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독립적인 기능을 갖는 지능형 로봇부터 로봇화된 생활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로봇이 우리 일상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과학기술은 인간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완벽한 기능의 로봇을 창조하기에는 더 많은 발전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아직까지 인류의 지능로봇 기술은 연구실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개발 초기단계에 불과하다. 지능로봇 기술은 아직 세계의 어느 기술 선진국도 이루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로봇 기술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경쟁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 국민들은 새로 출현하는 기기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가지고 있음이 지난 10여 년간의 IT산업 발전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지능로봇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적극 지원할 자세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국민 의식은 우리의 지능로봇 기술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능로봇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감이 지나치면 자칫 큰 실망감을 맛볼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은 종종 더디고 인내심을 요구할 때가 많다. 연구실의 성과가 하루 아침에 로또처럼 대박을 가져오는 경우가 드문 것 또한 현실이다.
 
  본격적인 로봇화 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기술적 난관이 많다. ‘인간과 정반대의 특성을 가진 로봇이 사람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바로 이 話頭(화두)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며 우리가 고민해야 할 내용이다. 진정한 로봇세상을 이루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