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봐줄 순 없나요"
언론들 항상 나쁜 보도만… 극히 일부의 얘기일 뿐
부정적 시선에 속상하지만 알고 나면 오해 풀릴 것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6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서울어학원(서울 강남구 대치4동)은 ‘국내 최초의 영어테스트 전문기관’을 표방한다. 1988년 개원, 올해로 21년째를 맞는 이곳은 현재 대치동 본원을 포함해 총 8개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학원 측 설명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원어민강사를 제일 먼저, 체계적으로 채용한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원어민강사를 둘러싼 갑론을박과 관련, 강사들 본인의 입장을 듣기 위해 서울어학원 쪽과 접촉한 건 그래서였다. ‘안정된 시스템에서 제대로 훈련 받은 원어민강사들은 자신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여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컸다.
당초 예상했던 참가자는 3명이었다. 그런데 실제 좌담회장엔 6명이 나왔다. 남자가 넷, 여자가 둘이었다. 이경로 본원 원장은 “좌담 일정을 알려주고 관심 있으면 오라고 했더니 자원자가 생각보다 많더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여름방학 시즌은 이곳 강사들이 1년 중 가장 바쁜 시간. 수업시간을 피하다 보니 좌담이 이뤄진 시각은 금요일이었던 지난 7월 24일 밤 10시였다. 현장엔 이경로 원장도 배석했다. 이 원장은 강사들의 답변 사이사이 꼭 필요한 부연설명(< > 처리한 부분 참조)을 곁들이며 이해를 도왔다.
- ▲ (왼쪽부터) 멜리사 피트먼, 매튜 웨스트, 줄리언 무어, 캐서린 후아마니, 알렉산더 살시오, 흔 웡. photo 정복남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사회자 한국엔 어떻게 오게 됐나.
피트먼 나는 한국에서 입양됐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나라’ 한국에 대해 많은 얘길 들었고 한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을 좀 더 많이 알고 싶은 맘에 한국행을 선택했다.
웨스트 내 경우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한국에 친척도 많다. 학교 다닐 때 한국에서 원어민강사 수요가 많다는 얘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고 때마침 서울어학원의 원어민강사 모집광고를 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명확한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이 많았다. 1년쯤 미국을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오늘 함께 참석한 캐서린은 내 여자친구다. 나보다 일찍 졸업한 캐서린이 한국으로 가기에 따라왔다.(웃음) 그리고 내가 켄트 스쿨이란 기숙학교 출신인데 그곳에 한국인 친구가 많았다. 그들과 어울려 지내며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직해 대도시에 갇혀 사는 인생은 별로 매력 없지 않나. 워낙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한국에 온 셈이다.
후아마니 대학에서 교육학과 정치학을 복수전공했다. 어느 쪽으로 특화해 취직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험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전까지 한번도 미국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어 혼자 낯선 곳에서 생활해보는 것도 뜻깊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살시오 로스쿨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대학 졸업 후 곧장 공부를 시작하는 것보다 1~2년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한국에 왔다. 여기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로스쿨 시험 준비에도 꽤 도움이 된다. 얼마 전 1년 더 한국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웡 나는 좀 사연이 복잡하다. 대학 졸업 직후 뉴욕에서 일자리를 구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발령이 취소됐다. 새 직장을 구하려고 알아보던 중 한국에서 원어민강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하버드대에서 한국인 친구가 많았던 터라 관심이 있었고 뭣보다 내가 좋아하는 비보이(B-boy) 문화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한국은 비보이 분야 최고의 나라니까.(웃음)
사회자 원어민강사를 부정적으로 다룬 한국 언론보도를 접한 적이 있나.
무어 한국어 실력이 부족해 한국어로 된 뉴스를 이해할 수준은 안 된다. 다만 외국인을 위해 한국 뉴스를 번역해 소개해주는 사이트가 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비판하나.
사회자 다양하다. 마약 중독·성폭행·수업 전 음주·욕설·가짜 학위 소지… 등등.
무어 아, 들어본 적 있다. 그런데 극히 일부분의 문제 아닌가. 내가 일하는 직장이나 자주 어울리는 동료들에겐 전혀 해당사항 없는 얘기들이다.
웨스트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 어머니께 그 비슷한 얘길 편지로 전해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원어민강사 십수명이 마약 흡입하고 도박하다가 문제가 됐다는 뉴스를 보신 모양이었다. 그런 일에 휘말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더라.
<모든 원어민강사가 문제를 일으킨다기보다는 강사 개인의 자질 문제라고 보는 게 맞다. 여기 참석자의 경우 미국으로 돌아가면 최고의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청년들이다. 단순히 돈 벌기 위해 한국을 찾은 사람들이 아니란 얘기다. 우리도 물의를 일으키는 원어민강사 관련 보도가 나오면 강사들에게 주의를 당부하지만 실제로 우리 어학원 소속 강사가 그런 일로 말썽을 부린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사회자 한국에 온 후 기대와 달라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웨스트 체류 경험이 오래지 않아 그런지 아직까진 다 좋았다. ‘강남’이란 지역적 특수성 덕분이겠지만 이 주변에선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다. 다들 친절해 어딜 가든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사회자 한국인 중 원어민강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알고 있나.
무어 물론이다. 한국 언론은 항상 우리에 대해 나쁜 보도만 내보낸다. 원어민강사에 대해 호의적 관점으로 접근한 한국 뉴스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뭐, 전혀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몇몇 사람에게 해당하는 얘기이긴 하지만 나쁜 짓을 하는 강사들이 존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사회자 그런 보도를 접할 땐 기분이 어떤가.
무어 속상하고 안타깝다. 그러나 크게 문제 삼고 싶진 않다. 뉴스를 보고 원어민강사를 비난하는 사람도 나나 내 동료들을 알게 되면 태도가 달라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뉴스에 자주 언급되는 ‘문제 있는 원어민강사’의 유형을 잘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단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다루는 강사가 많다. 영어실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강사들이다. 그 경우 외모가 중요하다. 학습자에게 호감을 줄 수 있으니까. ‘날씬하고 금발에 백인’이면 금상첨화다. 다른 조건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소규모 학원이나 지방 학원의 경우도 비슷하다. 실력 없는 강사가 와도 학습자나 학원 운영자가 걸러내지 못하니 2~3년은 그냥 흘러간다. 그런데 학습자 실력이 우수하면 어림없다. 강사의 무능함이 금세 드러나고 학생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학원 운영자는 기를 쓰고 우수한 강사를 유치하려고 노력한다. 요즘 학부모 중엔 유학파 출신이 많아서 자신이 직접 원어민강사를 만나 영어로 이것저것 물어본 후 학원을 결정하기도 한다. 요컨대 교육환경에 따라 원어민강사의 수준도 달라진다고 보면 정확하다.>
사회자 몇 년 전부터 공교육 부문에서도 원어민강사 도입이 활발하다. 학교에 투입된 원어민강사가 제몫을 다하려면 어떤 환경이 갖춰져야 할까.
무어 일반론을 말하자면 중요한 건 시스템이다. 강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구조인지, 학교는 강사의 수업계획을 충분히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지, 함께 일하는 동료는 어떤 사람들인지 등등의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 흔히 ‘돈 많이 주고 데려온 강사’가 최고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돈은 그 다음 문제다. 강사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수많은 나라 다 놔두고 굳이 한국을 찾은 이유가 뭐겠나. 오로지 돈이 목적이라면 꼭 한국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사회자 한국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기 위한 E2 비자를 발급 받으려면 꽤 많은 검사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겪은 불편이나 불만은 없었나.
후아마니 이런 생각은 해봤다. ‘한국인도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이런 검사들을 다 받을까?’
살시오 마약검사라든가 범죄경력증명서 제출 같은 건 아무렇지 않다. 교육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그 정도 자질은 검증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라도 내 아이가 마약중독자나 범죄자에게 교육 받는 건 싫을 테니까. 다만 에이즈검사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좋은 강사는?
개개인 수준 정확히 파악해 흥미 잃지 않게 하는 게 중요
수업 전념할 시스템 갖춰져야 우리도 제 몫할 수 있어
사회자 어떤 부모든 자녀가 좋은 원어민강사에게 영어교육을 받길 원한다. 어떤 강사가 좋은 강사인가. 학부모가 원어민강사의 옥석을 가려낼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해달라.
살시오 자신이 담당하는 과목에 관한 한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강사!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나만의 무기’ 한두 개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 자기 혼자 떠들면 아무 소용 없다. 되도록 많은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
웡 학생과의 교감(interaction)이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학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보살피는 자세야말로 교감의 핵심이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개념도 학생의 눈높이에서 쉽게 풀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주변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상 상황을 수업에 끌어들일 수 있는 지혜도 요구된다.
후아마니 좋은 교육자가 되려면 인내심(patience)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수없이 겪게 되기 때문이다. 실력이 다른 학생이 모여 있는 학급에서 적절한 수준을 찾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다. 그걸 발견하지 못하면 자칫 ‘아무도 듣지 않는 수업’이 돼버릴 공산이 크다.
무어 캐서린과 같은 입장이다. 정말 좋은 수업은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할 때 나온다. 너무 쉬우면 지겨워하고 너무 어려우면 흥미를 잃고 낙오하는 게 요즘 학생들이니까.
웨스트 모든 학생에게 ‘잘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도 교사에게 꼭 필요한 자질 아닐까.
피트먼 어떤 돌발상황이 터질지 알 수 없는 게 수업현장이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꼼꼼하게 준비한 수업과 그렇지 않은 수업은 효과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물론 잘 가르치는 건 기본이다.
이렇게 봐줬으면…
한국인에 도움 주는 존재, 존경 받는 사람으로 비쳐지길
‘돈만 밝힌다’는 편견 섭섭… 한국 궁금한 젊은이들일 뿐
사회자 한국인의 눈에 원어민강사들이 어떻게 비쳐졌으면 좋겠나.
살시오 존경 받는 사람. 너무 거창한가.(웃음)
웡 딱히 그런 바람은 없다. 맡은 일만 묵묵히 하면 언젠간 나를 있는 그대로 평가해줄 거라고 믿는다.
후아마니 한국인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 봐주면 좋겠다.
무어 나는 한국에 오기 전 한국 혹은 한국인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었다. 한국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알고 싶고 그들이 내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모든 것들을 좋아한다. 한국말은 못하지만 한국의 모든 것에 매혹됐다. 잘 모르는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고 싶다. 한국인들도 날 선입견 없이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내가 그들을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웨스트 ‘저 사람 돈 벌려고 한국 온 거 아냐?’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난 그저 아이들 가르치는 걸 좋아하고 한국이 궁금해서 온 평범한 청년일 뿐이다.
피트먼 외모 때문인지 ‘한국 사람처럼 생겼는데 왜 한국말 못하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 온 후 한국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한국인이 우리 나름의 개성(personality)을 좀 더 존중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참석자
· 매튜 웨스트(Mattew West) 2008년 프린스턴대 졸업, 미국사 전공
· 흔 웡(Heun Wong) 2008년 하버드대 졸업·심리학 전공
· 알렉산더 살시오(Alexander Salzillo) 2008년 애머스트 칼리지 졸업, 독일학 전공
· 줄리언 무어(Julian Moore) 2007년 스와스모어 칼리지 졸업, 역사학 전공
· 캐서린 후아마니(Katherine Huamani) 2007년 스와스모어 칼리지 졸업, 교육학·정치학 전공
· 멜리사 피트먼(Melissa Pitman) 2003년 브라운대 졸업, 신경과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