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입학사정관제, 스펙이냐, 포트폴리오냐?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9. 12. 28. 19:14

 

스펙이냐, 포트폴리오냐?
신진상 | 2009-12-25

 

“토플·토익 성적이나 경시대회 수상경력 등은 고교 수준을 넘어가는 학습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 과도한 사교육을 유발한다. 입시에 이를 반영하는 대학에 예산지원 등에서 불이익을 주겠다. 이는 수학·과학을 비롯한 각종 경시대회가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워 주기보다는 입시를 위한 ‘상장 제조기’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22일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열린 교육 포럼에서

 

이번 글이 2009년 마지막 칼럼이 될 것 같습니다. 입학사정관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부입니다. 이 전형 자체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교 생활에 충실한 학생들을 뽑고자 하는 제도니까 당연히 학생부가 중요하지요. 학생부에는 교과 성적과 동아리 봉사활동 등의 비교과가 함께 포함돼 있습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수능일까요? 수능 성적은 상당수 대학에서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논술은 대학별 지필 고사이기 때문에 별도의 지필 고사 없이 학생의 잠재력을 보고 선발한다는 취지에 맞지 않아 적어도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논술 시험을 보는 대학들은 갈수록 줄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바로 자신의 학업 능력, 지적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는 스펙(인증 시험과 각종 경시대회 성적)과 자신의 열정과 호기심, 전공 소양, 그리고 성실성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포트폴리오입니다. 포트폴리오는 독서 NIE, 일기장, 보고서 등의 형식을 갖출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학업보다는 비교과, 교양에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방과후학교나 학교 수업 중 수행 평가를 통해서 학교에서 대비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정부의 이런 결정은 학업은 시험을 통해서 증명이 될 수밖에 없고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는 힘들기 때문에 스펙은 규제하고 포트폴리오는 허용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대학들은 어떨까요? 여기서 상위권 대학들과 기타 대학들의 입장이 갈립니다. 상위권 대학들은 포트폴리오보다는 스펙입니다. 이들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성적 좋은 학생들인데다 이들은 공부하느라 포트폴리오 만들 시간이 없죠. 소위 스펙이라고 불리는 iBT, 텝스, 국사 인증, 경제 경시, AP 등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수능과 내신을 준비하면서 별도로 준비하려면 포트폴리오 이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상위권 대학들이 자신들이 다른 대학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여전히 성적으로 생각하는 한 소위 스펙이나 학습 비교과로 우수 학생들을 뽑고자 하는 의지를 꺾기는 힘들 겁니다. 반면에 중하위권 대학들은 스펙이 좋은 학생들을 뽑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더 비중을 두겠지요. 실제로 외고생이나 각 학교 최상위권 학생들 외에 대다수의 학생은 3년 동안 노력한다고 인증 시험이나 경시 대회 스펙을 갖추기가 쉬운 게 아니거든요. 수능과 부족한 내신 따라잡기도 버겁지요. 실제로 스펙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외고생이나 일반고(그것도 강남이나 교육 특구 일반고 정도)외에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상위권 대학들에게 스펙을 보지말라고 주문하면 어떤 현상이 생길까요? 이들 학교들도 초등학교 때부터 썼던 일기장, 감동의 봉사 수기, 고등학교 3학년 동안 모아 놓은 기사 스크랩 이런 것들로 학생들을 선발하려고 할까요? 여기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뉩니다. 입학사정관 전형 중에 상당 인원은 외고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글로벌 전형이나 국제 학부에서 뽑고 있는데 서유와 면접 중심의 이 전형에서는 스펙이 당락을 가르는 기준이 될 전망입니다. 논술 시험을 치르는 일반 전형(고대)과 학생부 중심의 전형에서도 입학사정관들이 서류를 평가할 텐데 이들 전형에서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반영하지 말라고 했지, 외고 입시처럼 감점을 주라고는 안 했으니까 제출할 경우 어느 정도 가산점을 주는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들 전형에는 워낙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니까 이 전형에서도 스펙이 통했다는 소문이 돌면 틀림없이 여론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과부가 분명히 스펙을 반영하지 말라고 했는데 상위권 대학들이 이를 어기고 스펙 대로 뽑았고 언론이 이를 문제 삼을 경우 교과부의 위신도 서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입학사정관제 존립 자체에 문제 제기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입학사정관제가 스펙을 요구하는 전형과 학생부와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전형으로 양분될지 모르지요. 외고생들이나 어학에 아주 뛰어난 일반고생들이 지원하는 글로벌 계열은 스펙, 다수의 일반고생들이 지원하는 학생부나 일반 전형에서는 스펙보다는 포트폴리오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입학사정관제를 고려중이시라면 어떤 전형에 유리한지를 빨리 결정하고 그에 따라 스펙과 포트폴리오 중에서 하나를 골라 올인하시는 게 좋은 전략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독자 여러분 미리 새해 인사 드립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