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입학사정관제는 외고생을 위한 제도?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9. 12. 28. 19:48
입학사정관제는 외고생을 위한 제도?
신진상 | 2009-10-25
 

요즘 외고 문제로 시끄럽지요. 이 블로그가 특목고 입시가 아니라 입학사정관제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지만 입학사정관제와 외고 문제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외고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입학사정관제=고교등급제?

논술을 가르치다보니 아무래도 외고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내신에서 불리한 걸 만회하기 위해 외고생들이 주로 논술 학원에 많이 다닙니다. 수시 시즌이 아닌 평시에 논술 사교육은 강남 일반고 최상위권 학생들과 외고생들이 받는 프리미엄 상품이지요. 저는 1년 간 용인 외고 학생들을 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옆에서 지켜 본 그들의 학교 생활은 초인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내신 기간은 물론 평소에도 그들의 생활은 학과 공부, 전공어 공부, 수능 공부, 경시대회, 봉사 준비까지 정말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용인외고는 프리젠테이션 수업이 많은데 발표를 위해서는 많은 걸 준비해야 합니다. 공부하면서 틈틈이 자료 준비까지 챙기는 그들을 보고 정말 독종이 아니면 외고에서 버티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수업, 오전에 수행 평가가 있는 날에 수행 평가 준비를 위해 모든 학생이 날 밤을 샌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업 시간에 졸지 않았고 정말 졸음이 오는 학생들은 뒤에서 서서 듣기도 했지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외고생들이 대입시에서 거둔 성과는 이런 노력의 결과지, 대학들이 어떤 특혜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외고들을 보면 수시에 강한 학교, 정시에 강한 학교, 수시와 정시에 모두 강한 학교 등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대원외고와 용인외고는 수시와 정시가 모두 강한 학교이고 이과가 강한 몇몇 경기권 외고들은 정시보다 수시에서 실적이 좋습니다. 이들 학교들은 수시 대학별 고사 준비(특히 자연계 논술)를 잘 해주는 편입니다. 대원을 제외한 나머지 서울권 외고들은 수시보다 정시 실적이 좋은 편이지요.

 

입학사정관제는 정시보다 수시 전형, 그중에서도 수시 1차에 몰려 있는데 수시 전형은 수능 전에 치러지기 때문에 대학들은 1차적으로 학생부 성적을 주요 전형 요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내신이 유리한 일반고 학생들이 유리하겠지요. 용인외고의 예를 들면 전교 1등이 2등급 후반이고 3등급 초반이면 반에서 1~2 등 정도입니다. 그리고 중간인 5등급대에 가장 많은 학생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일반고는 소위 밑에서 깔아주는 학생들이 많아 상위권 학생들이 1등급 초반과 후반에 집중돼 있습니다. 만약에 입학사정관 전형이 1차에서 학생부 성적으로 판가름한다면(연대와 고대가 그렇습니다) 현실적으로 서울 경기 지역의 상위권 외고생들은 1차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입학사정관 전형은 외고생들에게 오히려 불리한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통계 조사를 보면 외고생들은 75%가, 일반고생들은 그보다 20%보다 낮은 55%가 입학사정관제는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강남, 분당, 목동, 부천 등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입학사정관 설명회에서 연사로 나선 적이 있는데 대다수 학부모가 입학사정관제는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인식하고 있더군요. 일반고 학부모들이 특목고, 그중에서도 외고에 대해 얼마나 많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상당수 학부모들은 고교등급제를 입학사정관제에서 대학들이 어떤 식으로든 적용할 것이라는 경험적 확신 같은 걸 갖고 있더군요. 이런 불신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을까요?

 

입학사정관제에서 영어 인증 점수가 있는 한…

바로 그 이유는 영어 때문입니다. 내신도 중요하지만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는 국제화 지수와 공인 인증 시험 점수도 중요합니다, 아니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입학사정관 평가 요소를 보면 내신(학업 능력)-봉사-리더십-전공소양(포트폴리오)와 함께 글로벌 시대에 맞는 국제화 지수가 들어 있습니다. 국제화 지수란 현실적으로 영어 실력일 수밖에 없지요. 대학들은 다른 방법으로 학생들의 국제화 지수를 측정할 수 없고 학생들도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국제화 지수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영어에 투자해서 영어를 잘 하는 학생들만이 국제화 지수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연세대를 비롯해 서울 주요 대학 중 글로벌 전형, 국제학부, 특례 입학 등 외고생들이나 텝스 900이나 iBT 110 점 정도 이상의 실력을 갖춘 일반고생(외국에서 살다오지 않으면 이런 점수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지요)들만이 지원할 수 있는 전형 숫자가 5000명을 훨씬 넘습니다. 이들 전형에는 대부분 수능 최저 등급도 적용하지 않습니다. 연대만 하더라도 똑같은 논술 시험을 치르면서 일반고 학생들이 치르는 일반 전형에서는 언-수-외 1등급인 학생 중에서 60%를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세 개 영역 이상 2등급이어야 논술 성적에서 1등을 해도 최종 합격을 인정합니다. 반면 외고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글로벌 전형에서는 아예 수능 최저 등급 자격도 없앴습니다. 전 영역 수능 9등급을 받거나 0점을 받아도 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너무나 노골적으로 외고생들을 우대하니 일반고 학부모들이 대학들이 자기네들이 마음대로 뽑을 수 있는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는 외고생들을 대놓고 우대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외고가 설립 목적을 벗어나 명문대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주장은 명백히 진실입니다. 사실 외고들이 설명회에서 자신들의 특별한 교육 과정보다는 SKY 진학률만 내세우고 진학 실적이 좋은 학교로 포장했다는 점에서 최근의 외고 폐지 논쟁은 자승자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고 폐지 논쟁과는 별도로 주요 대학들도 사회적 책무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수시 전형에서 정말 외고생들에게 특혜를 주어 온 것은 아닌지 밝히고, 입학사정관제가 공교육을 살리는 제도이며 외고생들을 위한 전형이 아니라는 점을 일반고 학부모와 대중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납득시킬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러기 위해서 수시 각 전형별로 일반고와 특목고, 지역별 합격자 수 정도는 반드시 공개해야 할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