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나눔 덕분에 좋은 선생님 얻게 됐어요"
김시현 기자 shyun@chosun.com
이신영 기자 foryou@chosun.com
캠페인 결실 맺기 시작 2120건 중 94건이 연결
9일 만에 첫 봉사 시작 "힘 닿는데까지 가르칠것"
15일 오후 5시 서울 강동구 천호1동 강동아동지역복지센터 4층 프로그램실에 짧은 머리의 한정훈(22·중앙대 영어학과 1학년)씨가 들어섰다. 초등학교 3~4학년 아이 10명이 환호했다.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 닮았다!"
한씨는 아이들과 반갑게 첫 인사를 한 뒤 곧바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한씨가 칠판에 'apple'이라고 쓰자 아이들이 "애플"이라고 큰 소리로 읽었다. 이어 한씨가 'I like an apple'이라고 적고 "뜻이 뭐냐"고 묻자 시끄러웠던 아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한씨는 "이 문장은 '나는 사과를 좋아해'라는 뜻이야. 앞으로 선생님이 단어뿐만 아니라 영어 문장도 읽을 수 있게 가르쳐줄게"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1층 상담실에서는 이예실(21·공주교대 초등교육과 1년)씨가 초등학교 6학년 김모(12)양에게 중1 수학의 집합 단원을 가르쳤다. 100점 만점에 항상 50점 정도 받아 수학 문제만 보면 얼굴을 찌푸리던 김양 표정이 밝다. "와, 풀었다! 선생님, 수학도 은근히 재미있네요!"
한씨와 이씨는 '재능을 나눕시다' 캠페인을 통해 이곳 아이들과 만나게 됐다. 복지센터에서는 저소득층 가정 아이들 45명이 방과 후 자원봉사자들의 학습지도를 받고 있다. 이 중 3~4학년 15명은 작년 한 해 강동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원어민 강사의 영어 수업을 받아 왔다. 사회복지사 정경애(30)씨는 "원어민 교사가 우리말을 할 줄 몰라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어려웠다"며 "그나마 있던 원어민 강사 지원 사업이 끊겨 3주 동안 영어 수업을 못했는데 '재능을 나눕시다' 캠페인 덕분에 좋은 선생님을 얻게 됐다"고 했다. 지난 5일 제대한 한씨는 "봉사를 해본 적은 없지만 신문 기사를 보고 나도 돕고 싶어 신청하게 됐다"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장 즐거운 과목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이씨도 "4학년 때까지 빠지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 ▲ 15일 오후 서울 강동아동복지센터에서 대학생 한정훈씨가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재능을 나눕시다’캠페인에 참여한 한씨는 앞으로 이곳에 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영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조선일보·한국자원봉사협의회·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펼치는 '재능을 나눕시다' 캠페인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캠페인을 시작한 지 9일 만인 15일 재능 신청자와 맺어진 재능 기부자가 첫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영어 강습에서부터 미용 교육·스키 강좌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이 재능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됐다.
시각장애인 특수학교 인천해광학교는 2월 8~10일로 예정된 스키캠프의 강사를 구했다. 스키 장비 수입업체 사장 김정우(38)씨가 재능을 기부하겠다고 신청했다. 김씨는 대학 2곳에 출강하며 스키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용 안전장비도 챙겼다"며 "스키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씻겨주고 싶다"고 했다.
충북 청주시 충북육아원에서는 '바이올린 선생님'이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 2명을 가르칠 예정이다. 러시아 차이콥스키음악원에 3년간 유학을 다녀온 김단비(18)씨는 "나도 바이올린을 늦게 배웠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 유학까지 갔다 올 수 있었다"며 "아이들 꿈을 키워주기 위해 힘닿는 데까지 가르치겠다"고 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할머니·동생과 셋이 사는 전모(12)양은 어릴 때 성대에 문제가 생겨 쉰 목소리가 났지만 병원 갈 돈이 없어 진단조차 못 했다. 전양의 목은 부산 수영구 임은주가정의학과의원 임은주(44) 원장이 치료해주기로 했다.
지적장애 청소년 20명이 모인 서울시립지적장애인복지관 소속 '다함께 청소년합창단'은 새 지휘자를 구했다. 12년 동안 중·고교에서 근무했던 김선옥(51·서울 구로구)씨가 지휘를 맡기로 했다. 이 합창단은 작년 말 지휘자가 그만둔 뒤 올해부터 외부 지원금도 끊겨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김씨는 "2년 전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여성중창단을 지휘했는데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공연을 가졌다"며 "환자들이 노래를 통해 밝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장애 아동도 지도해보자'는 생각에서 신청했다"고 했다.
캠페인 10일째인 15일까지 "재능을 나누고 싶다"는 신청은 2120건 접수됐다. 이 중 재능 나눔이 연결된 경우는 94건이다. 한국자원봉사협의회 홍만희 과장은 "봉사자 자격과 재능을 나눠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요구사항, 봉사자와 수혜자가 살고 있는 지역 간 거리, 봉사 횟수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예상보다 연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고 했다. 한국자원봉사협의회 봉사와나눔 운동본부는 앞으로 각 지역 사회복지시설이나 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해 봉사자와 수혜자를 원활히 연결하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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