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수능 개편으로 '國史 교육' 끝장나나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10. 8. 29. 20:44

 

수능 개편으로 '國史 교육' 끝장나나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지금도 국사로 시험 보는 학생 10%에 불과한데…
사탐 1과목만 선택하게 돼 '안보는 게 나은 과목' 전락
"독도·동북공정 문제도 무슨 얘긴지 모르게 될 것"

"앞으로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5%도 채 되지 않을 겁니다."(서울의 한 사립대 역사학과 A교수)

2014년도 수능 개편안이 발표된 다음 날인 20일, 상당수의 교육 전문가들이 이 같은 예상을 내놓으며 "역사 공부가 위기를 맞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터넷 수험생 사이트에서는 "수능에서 한국사 같은 거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라는 학생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동안 인문계 학생들이 수능에서 국사(한국사) 과목이 속한 사회탐구영역 11과목 중 4과목을 선택해서 시험을 보던 것이, 2014학년도부터는 6과목 중 1과목만 보도록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어려운 한국사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은 거의 사라지게 되고, 수능 위주로 진행되는 고교 현장의 교육 역시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제 나라 역사를 소홀히 공부한 채 졸업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10명 중 9명은 이미 국사공부 손 놔

2004학년도 입시까지 국사는 수능에서 인문·자연계의 공통필수 과목이었다. 그러나 2005학년도부터 '선택 중심'으로 제도가 바뀌면서 국사 역시 '선택과목'으로 전락했다. 자연계 학생은 아예 보지 않고 인문계 학생은 '안 봐도 되는 과목'이 됐다.

이후 수능에서 국사 과목의 응시자 수는 급락(急落)했다. 2005학년도 수능에서는 인문계 학생의 46.8%가 국사를 선택했지만 2007학년도에는 22%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의 2010학년도 수능에서는 국사 선택자가 6만9704명으로, 사탐을 치른 응시자의 18.7%에 불과했다. 수능을 치른 전체 인원 중에서는 10.9%다. 이미 수험생 열 명 중 아홉 명은 국사 공부를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2014학년도부터 수능 체제가 바뀌면 이 수치는 또다시 절반 이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수험생들은 국사가 다른 과목보다 분량이 많을뿐더러 내용이 어렵고 생소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서울대가 국사를 필수로 정한 뒤로 우수한 학생들이 국사를 선택하자, 다른 학생들은 표준점수에서 불리하다고 여겨 더욱 국사를 멀리하게 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교사는 이미 일선 학교의 국사 교육이 파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학교에서 수능 중심으로 가르치다 보니 비중이 줄어든 국사는 찬밥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안연근 서울 잠실여고 진학지원부장은 "국사는 1학년 때만 필수과목으로 수업이 있을 뿐, 2·3학년에서는 인문계와 자연계 대부분 정규 과목으로 배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전면 시행되는 2014년부터는 필수과목이 아니라 '사회과목 중 하나'인 선택과목이 된다.

'안창호 의사'가 이토를 쐈다고?

고교 과정의 '국사 무지(無知)' 현상은 그대로 대학 교육 현장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역사학과 B교수는 "최근 5~6년 동안 대학 신입생의 역사 지식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안중근 의사와 안창호 선생을 구별하지 못하고, 김유신 장군과 이순신 장군 중 누가 앞 시대의 인물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C교수는 "역사학과 신입생이라면 최소한 영조·정조가 18세기의 군주라는 것 정도는 알아야 대학에서 뭘 가르칠 수 있을 것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고조선-삼국시대-통일신라(남북국시대)-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왕조사의 기본적인 흐름조차 통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는 것이다. 한 지방대의 D교수는 "이제 교과서가 아니라 사실(史實)과 어긋나는 TV의 '엉터리 사극'들이 국민을 교육할 판"이라고 푸념했다.

한철호 한국근현대사학회장(동국대 교수)은 "이대로 가다가는 동북공정이나 독도 문제가 왜 일어나는지조차 모르게 될 것"이라며 "역사교육을 더 강화해야 할 판에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포기하려는 것이냐"고 말했다.

일부 학자들은 지난달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과 함께 행동에 나서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개정안은 34조 7항에 '대학은 수능시험을 입학전형자료로 활용하는 경우 한국사 과목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수능 개편안의 '사탐 1과목 선택'과는 양립할 수 없는 조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