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면 좋은 이유(2)

아이미래디자인연구소 2006. 10. 17. 00:51
세상에 물음을 던지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3月부터 어린이 철학교실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았냐며 상담 선생님을 들볶기 시작한지 1년이 넘었었다.


기대하던 첫 수업에 주현이는 한마디도 못하고 빙그레 웃으며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듣기만 했다. 멍석을 깔아줘도 못한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났다.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까지 또 시간이 필요했다. 누나가 어렵게 철학 수업을 받게 되어 동생은 7살부터 철학 수업을 했다.


궁금증 찾기를 시켜 보면 어린 아이일수록 겁내지 않고 잘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큰 아이도 좀 더 일찍 시켜주었다면 철학 수업에 일찍 적응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엄마, 머리 속에서 생각이 자꾸 떠올라요!"


큰 딸이 철학수업을 들은 지 6개월이 지난 후에 내뱉은 말이다. 너무 감격스러워 그 당시 상황도 기억하고 있다. 세상에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동안 아이 손잡고 다니며 세상을 보는 나의 생각을 말해주기만 했는데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며 거리를 걸었다. 이때쯤 딸아이는 수업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조금 씩 하기 시작했다. 가끔 철학수업을 하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난다고 했다. 벌써 굳어진 사고의 틀을 깨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7살 막내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쉬지 않고 말한다고 했다. 조금씩 천천히 철학수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 보따리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어린이철학교실의 교육


아이들이 5년째 어린이철학교실에 다니고 있다. 한번쯤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었지만 하나씩 둘 씩 변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계속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초반 시절에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다른 아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듣느라 1년을 보냈다. 엄마도 아빠도 아이의 궁금증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장단을 맞추어 주어야 했다. 그러면 더 신이 나서 생각을 더 많이 얘기하곤 했다. 이 시기에 배운 듣기 훈련이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습관도 생겼다.


발전반 처음 1년 동안에 자기주장의 이유를 밝히는 훈련을 했다. 그 시기에 일기장을 보면 온통 '왜냐하면' 투성이 이다. 너무 단조로운 글이 되기도 해서 조심하라고 경고를 주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수업이 생활 전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신기했다. 국어 교과서에서도 자기주장에 이유를 적도록 하는 교육이 이루어져 더욱 효과가 컸던 것 같다. 물론 부모의 말에 따져 묻기 시작해서 피곤할 때도 있었다.


발전반 2년차가 되면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대는 훈련을 시작했다. 나의 생각을 얘기하고 왜 그런지도 얘기하지만 얘기를 듣는 상대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면 무언가 예를 들어 가며 상대가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주장에 알맞은 근거를 대지 못하다가 조금씩 정확한 근거를 대기 시작했다. 특히 상대를 설득할 정도의 근거를 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발전반 3년차가 되면 설전이 펼쳐진다고 보아야 한다. 각자의 의견이 더 맞았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자신의 주장만 강조하다 보면 다른 아이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듯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또 자신의 주장에서 약점을 발견하게 되는 시기이다. 상대가 지적한 부분에 대해 답을 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다.


심화반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정교하게 다듬는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라고 본다. 심화반에서 역사와 문학을 다루는 것은 총체적인 사고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아이들은 기초반에서 발전반을 거치는 동안 수리철학, 과학철학, 시사, 논리 등의 주제를 다루며 세상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도록 자극받아 왔다. 그리고 아이들은 세상의 이치에 나름의 답을 찾기 시작한다.


어린이 철학교실에서 시작한 5년간의 철학수업을 통해 주현이는 가끔 부모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생각이 깊어졌다. 7살에 시작한 막내는 "인간은 왜 사는가?" 라는 형이상학적인 질문까지 던져가며 부모를 겁주고 있다. 아이들의 생각이 커가는 동안 어린 철학자들과 파트너인 부모도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좀 더 깊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어느덧 우리 가족은 모두 철학자가 되어있다.


아직 철학교육이 논리논술교육이나 글짓기교실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는 부모가 많다. 부모들이 철학교육을 받은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철학을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직 충분히 연구 되지 않는 논리논술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획일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글짓기 교실에서 자신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훈련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지 못한다. 그리고 대학 입학시험에서 왜 논리논술 분야를 넣게 되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제 세상은 문제 해결력이 있는 사람을 원하고 있다. 문제를 현실성 있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인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가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남을 배려할 줄 알고 타인과 함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어린이철학연구소 20주년 수기 공모에 낸 내용 중 일부이다. 철학이라면 철학관을 떠올리고 위대한 철학자들의 소유물인 것처럼 생각되던 시절을 살아 온 우리들에게 철학은 생소한 영역일 수 있다. 자신도 가끔 인생을 돌이켜보던 꿈많던 시절 부터 지금까지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말이다.